데이팅 앱에서 말 걸어온 여성, 사실은 남자 직원?

입력 2025.06.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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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팅 앱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말을 걸어온다면? 외모도 내 스타일이라면! 아마 답해보겠죠. 앱이 달라는 온갖 결제 요구를 들어주면서라도 말이죠.

그런데 이렇게 내게 호감을 표하고 대화를 걸었던 사람, 알고 보니 앱 직원이 만든 가짜 계정이었습니다.

2014년 출시해 가짜 여성 계정을 만들다 적발된, 누적 가입자 700만 명을 넘긴 데이팅앱 '아만다'가 3-4년 전 이렇게 했습니다.

대체 어떤 앱이고, 어떤 점을 노린 건지 한 번 가입부터 해 봤습니다.

■ 소금빵 사진엔 '계정 정지'…까다로운 가입 절차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아만다)'라는 광고 문구처럼, 가입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안 나온 사진으로는 앱을 쓸 수조차 없습니다. 회원 가입이 안 돼섭니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당일 아침에 찍은 소금빵 사진으로 가입을 신청해 봤는데요. 아만다에서는 단칼에 '사진을 바꾸라'는 공지 문자가 왔고, 같은 운영사가 만든 '너랑나랑' 앱에서는 아예 계정 정지를 당했습니다.

‘소금빵 사진’ 가입은 받아주지 않는 데이팅 앱 ‘너랑나랑’.‘소금빵 사진’ 가입은 받아주지 않는 데이팅 앱 ‘너랑나랑’.

결국 시키는 대로 상반신과 얼굴이 잘 나오는 사진을 등록하고 나서야, '심사'를 거쳐 아만다에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한 차례 거절 뒤 ‘심사’를 거쳐 가입을 승인한 데이팅앱 ‘아만다’.한 차례 거절 뒤 ‘심사’를 거쳐 가입을 승인한 데이팅앱 ‘아만다’.

이 외에 휴대전화 인증부터 나이, 키, 성격, 이상형 등 정보도 필수로 받아 갑니다.

■ 호감 표시부터 대화 신청까지 단계마다 '결제, 또 결제'

공짜는 여기까지입니다. 이후부터는 뭘 하든 돈이 듭니다.

아만다의 사이버머니인 '리본'을 미리 결제해 두고 차감하는 식입니다. 100개 단위로 파는데, 리본 100개에 만 3천 원입니다.

짧은 글과 함께 친구 요청을 보내는 '스페셜 친구 요청' 기능에는 리본 20개, 돈으로는 2천600원이 듭니다.

스페셜 친구를 신청하기 전에 미리 개인정보를 확인하는 게 좋겠죠. 이러면 또 리본을 써야 합니다. 이와 별개로 호감을 표시하는 데도 리본 10개가 필요합니다.

한 사람에게 대화를 걸려고 해도 5천 원은 그냥 쓰게 되는 겁니다. 나에게 대화를 걸거나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이 없으면 자연스레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 '도용' 사진으로 만든 수백 개 '가짜 계정'

반대로 호감을 표시하고 대화를 걸어오는 상대방이 많다면, 계속 돈을 쓰는 구조겠죠. 아만다도 이걸 노렸습니다.

2021년 10월 회의에서 " 남성 회원의 소극적인 참여를 개선하기 위해 남성 케어가 필요하다", "성비 불균형이 심하다" 등의 논의가 오간 직후 아만다는 직원들을 시켜 '가짜 계정' 수백 개를 만들었습니다.

타이완 데이팅 앱에 올라온 여성 회원들의 사진을 도용하고, 키와 학력, 직업 등 개인정보는 꾸며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짜 계정은 270여 개.

이 계정들의 임무, 남성 회원들의 앱 알람이 쉴 새 없이 울리게 하고 궁극적으로 돈을 쓰게 만드는 거였습니다.

남성 회원들의 프로필을 계속 열람하고, 높은 점수를 주고, 호감 표시 기능을 썼습니다. 계정 하나당 하루에 대략 30명 치 남성 회원의 프로필을 열람했습니다.

그때마다 남성 회원 계정으로는 '00님이 프로필을 열람했습니다'라는 알람이 갔을 테고, 알람을 받은 남성이 '00님'을 마음에 들어 했다면 유료 기능을 사용해 대화를 시도했을 겁니다.

남성 회원들이 게시판에 글을 쓰면 댓글 작전도 벌였는데, 가짜 계정들이 단 댓글은 5천 개 가까이 됩니다.

■ "업무 올 중지하고 게시판 작성하세요"

가짜 계정들은 퇴근도 못 했습니다. 남성 회원들이 퇴근해 앱을 보는 시간인 저녁 8시부터 밤 12시 사이가 '피크' 시간대였기 때문입니다.

가짜 계정을 돌리는 직원들에겐 '지금 심각한 '남탕'이니 12시까지만 달려보자', ' 주말 푸욱 쉬면서 시간날 때마다 화력을 올려달라'는 공지가 내려갔습니다.

당시 아만다 운영사 ‘테크랩스’ 사내 메신저.당시 아만다 운영사 ‘테크랩스’ 사내 메신저.

원래 주어진 업무를 하는 중에도 '지금부터 업무 올 중지하고 게시판 작성해달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당시 아만다 운영사 테크랩스에 다녔던 A 씨는 "매일 1명당 30번, 60명에게 '하트'를 보내라는 요구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A 씨/당시 아만다 운영사 테크랩스 직원
"회사 차원에서는 남녀 비율을 맞추는 게 매출 상승에 기여가 되니까 비율을 어떻게든 맞춰야 합니다. 근데 여자 회원들을 끌어오기가 되게 힘들었어요. 마케팅 비용도 다 떨어져 가고 있었고. 그래서 고안해 낸 게, 어떻게 보면 되게 멍청한 방법이죠. 직원들에게 슈퍼 계정 아이디를 주고 이 아이디로 접속해서 남성 회원들이 활동할 수 있게, 우리에게 돈을 쓸 수 있게끔 유도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주작질'이라고 하는 행위가 펼쳐졌어요."

■ 테크 기업들의 '소비자 기만' 반복되지만…

공정위는 이런 행위를 소비자를 기만적인 방법으로 유인한 불법으로 규정했습니다. 당시 아만다 운영사였던 테크랩스에 과징금 5천200만 원을 물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가짜 계정', 아만다가 일부 남성 회원을 등친 문제만은 아닙니다.

국내 대표 게임 개발사인 엔씨소프트도 이런 가짜 계정을 만들어온 혐의로 공정위 제재 심의를 앞두고 있습니다.

모바일 게임 리니지 시리즈를 운영하면서, '슈퍼 계정'을 만들었다는 의혹 등입니다.

슈퍼 계정은 일반 회원들은 얻기 어려운 '고성능 아이템'으로 중무장한 계정인데, 이런 계정을 투입해 일반 회원들이 아이템 구매에 돈을 더 쓰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처럼 테크 기업들의 크고 작은 소비자 기만이 이어지고 있지만, 제재 수단은 무려 23년 전에 만들어진 전자상거래법 정도 뿐입니다.

플랫폼을 규제하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온라인플랫폼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소비자 보호보다는 플랫폼의 '독점'과 '갑질'을 규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 있습니다.

지금도 어떤 앱과 플랫폼들이 소비자 모르게 어떤 조작을 하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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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팅 앱에서 말 걸어온 여성, 사실은 남자 직원?
    • 입력 2025-06-01 07:00:49
    심층K

데이팅 앱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말을 걸어온다면? 외모도 내 스타일이라면! 아마 답해보겠죠. 앱이 달라는 온갖 결제 요구를 들어주면서라도 말이죠.

그런데 이렇게 내게 호감을 표하고 대화를 걸었던 사람, 알고 보니 앱 직원이 만든 가짜 계정이었습니다.

2014년 출시해 가짜 여성 계정을 만들다 적발된, 누적 가입자 700만 명을 넘긴 데이팅앱 '아만다'가 3-4년 전 이렇게 했습니다.

대체 어떤 앱이고, 어떤 점을 노린 건지 한 번 가입부터 해 봤습니다.

■ 소금빵 사진엔 '계정 정지'…까다로운 가입 절차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아만다)'라는 광고 문구처럼, 가입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안 나온 사진으로는 앱을 쓸 수조차 없습니다. 회원 가입이 안 돼섭니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당일 아침에 찍은 소금빵 사진으로 가입을 신청해 봤는데요. 아만다에서는 단칼에 '사진을 바꾸라'는 공지 문자가 왔고, 같은 운영사가 만든 '너랑나랑' 앱에서는 아예 계정 정지를 당했습니다.

‘소금빵 사진’ 가입은 받아주지 않는 데이팅 앱 ‘너랑나랑’.
결국 시키는 대로 상반신과 얼굴이 잘 나오는 사진을 등록하고 나서야, '심사'를 거쳐 아만다에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한 차례 거절 뒤 ‘심사’를 거쳐 가입을 승인한 데이팅앱 ‘아만다’.
이 외에 휴대전화 인증부터 나이, 키, 성격, 이상형 등 정보도 필수로 받아 갑니다.

■ 호감 표시부터 대화 신청까지 단계마다 '결제, 또 결제'

공짜는 여기까지입니다. 이후부터는 뭘 하든 돈이 듭니다.

아만다의 사이버머니인 '리본'을 미리 결제해 두고 차감하는 식입니다. 100개 단위로 파는데, 리본 100개에 만 3천 원입니다.

짧은 글과 함께 친구 요청을 보내는 '스페셜 친구 요청' 기능에는 리본 20개, 돈으로는 2천600원이 듭니다.

스페셜 친구를 신청하기 전에 미리 개인정보를 확인하는 게 좋겠죠. 이러면 또 리본을 써야 합니다. 이와 별개로 호감을 표시하는 데도 리본 10개가 필요합니다.

한 사람에게 대화를 걸려고 해도 5천 원은 그냥 쓰게 되는 겁니다. 나에게 대화를 걸거나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이 없으면 자연스레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 '도용' 사진으로 만든 수백 개 '가짜 계정'

반대로 호감을 표시하고 대화를 걸어오는 상대방이 많다면, 계속 돈을 쓰는 구조겠죠. 아만다도 이걸 노렸습니다.

2021년 10월 회의에서 " 남성 회원의 소극적인 참여를 개선하기 위해 남성 케어가 필요하다", "성비 불균형이 심하다" 등의 논의가 오간 직후 아만다는 직원들을 시켜 '가짜 계정' 수백 개를 만들었습니다.

타이완 데이팅 앱에 올라온 여성 회원들의 사진을 도용하고, 키와 학력, 직업 등 개인정보는 꾸며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짜 계정은 270여 개.

이 계정들의 임무, 남성 회원들의 앱 알람이 쉴 새 없이 울리게 하고 궁극적으로 돈을 쓰게 만드는 거였습니다.

남성 회원들의 프로필을 계속 열람하고, 높은 점수를 주고, 호감 표시 기능을 썼습니다. 계정 하나당 하루에 대략 30명 치 남성 회원의 프로필을 열람했습니다.

그때마다 남성 회원 계정으로는 '00님이 프로필을 열람했습니다'라는 알람이 갔을 테고, 알람을 받은 남성이 '00님'을 마음에 들어 했다면 유료 기능을 사용해 대화를 시도했을 겁니다.

남성 회원들이 게시판에 글을 쓰면 댓글 작전도 벌였는데, 가짜 계정들이 단 댓글은 5천 개 가까이 됩니다.

■ "업무 올 중지하고 게시판 작성하세요"

가짜 계정들은 퇴근도 못 했습니다. 남성 회원들이 퇴근해 앱을 보는 시간인 저녁 8시부터 밤 12시 사이가 '피크' 시간대였기 때문입니다.

가짜 계정을 돌리는 직원들에겐 '지금 심각한 '남탕'이니 12시까지만 달려보자', ' 주말 푸욱 쉬면서 시간날 때마다 화력을 올려달라'는 공지가 내려갔습니다.

당시 아만다 운영사 ‘테크랩스’ 사내 메신저.
원래 주어진 업무를 하는 중에도 '지금부터 업무 올 중지하고 게시판 작성해달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당시 아만다 운영사 테크랩스에 다녔던 A 씨는 "매일 1명당 30번, 60명에게 '하트'를 보내라는 요구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A 씨/당시 아만다 운영사 테크랩스 직원
"회사 차원에서는 남녀 비율을 맞추는 게 매출 상승에 기여가 되니까 비율을 어떻게든 맞춰야 합니다. 근데 여자 회원들을 끌어오기가 되게 힘들었어요. 마케팅 비용도 다 떨어져 가고 있었고. 그래서 고안해 낸 게, 어떻게 보면 되게 멍청한 방법이죠. 직원들에게 슈퍼 계정 아이디를 주고 이 아이디로 접속해서 남성 회원들이 활동할 수 있게, 우리에게 돈을 쓸 수 있게끔 유도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주작질'이라고 하는 행위가 펼쳐졌어요."

■ 테크 기업들의 '소비자 기만' 반복되지만…

공정위는 이런 행위를 소비자를 기만적인 방법으로 유인한 불법으로 규정했습니다. 당시 아만다 운영사였던 테크랩스에 과징금 5천200만 원을 물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가짜 계정', 아만다가 일부 남성 회원을 등친 문제만은 아닙니다.

국내 대표 게임 개발사인 엔씨소프트도 이런 가짜 계정을 만들어온 혐의로 공정위 제재 심의를 앞두고 있습니다.

모바일 게임 리니지 시리즈를 운영하면서, '슈퍼 계정'을 만들었다는 의혹 등입니다.

슈퍼 계정은 일반 회원들은 얻기 어려운 '고성능 아이템'으로 중무장한 계정인데, 이런 계정을 투입해 일반 회원들이 아이템 구매에 돈을 더 쓰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처럼 테크 기업들의 크고 작은 소비자 기만이 이어지고 있지만, 제재 수단은 무려 23년 전에 만들어진 전자상거래법 정도 뿐입니다.

플랫폼을 규제하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온라인플랫폼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소비자 보호보다는 플랫폼의 '독점'과 '갑질'을 규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 있습니다.

지금도 어떤 앱과 플랫폼들이 소비자 모르게 어떤 조작을 하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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