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함께 주목받는 한강 작가의 시(feat. 한강 낭독) [이런뉴스]

입력 2024.10.14 (16:27) 수정 2024.10.1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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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 이후 한강 작가의 소설뿐 아니라 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는 소설보다 먼저 시로 등단했습니다. 1993년 계간 문예지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등 시 4편을 실었습니다. 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냈습니다.

KBS 아카이브에서 한강 시인이 낭독한 자신의 시 '효에게 2002. 겨울', 독자가 낭독한 '괜찮아'를 소개합니다. 이 두 작품은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 실려있습니다.

한강 시인은 '효에게. 2002. 겨울'에 대해, "아들이 3살 때 바다에 갔었는데 하얀 돌과 조개 껍데기만 보면 줍고 싶어했다, 오전에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서 돌아와서 썼던 시"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한강 작가가 낭독한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중 '다시, 인사: 새벽의 노래소설', 소설 '어깨뼈' 중 일부도 영상으로 전해드립니다.

프로그램 보기
KBS TV문화지대 낭독의 발견(2005.9.21)
https://www.youtube.com/watch?v=LpTGTEZ7mvM&list=PLFSI5HpHGdTDDPiEXPH-nWs4AQ9VL-E5k&index=13

효에게. 2002. 겨울 - 한강

바다가 나한테 오지 않았어.
겁먹은 얼굴로
아이가 말했다
밀려오길래, 먼 데서부터
밀려오길래
우리를 덮고도
계속 차오르기만 할 줄 알았나 보다

바다가 너한테 오지 않았니
하지만 다시 밀려들기 시작할 땐
다시 끝없을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다리를 끌어안고 다시 뒤로 숨겠지
마치 내가
그 어떤 것,
바다로부터조차 널
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기침이 깊어
먹은 것을 토해내며
눈물을 흘리며
엄마, 엄마를 부르던 것처럼
마치 나에게
그걸 멈춰줄 힘이 있는 듯이

하지만 곧
너도 알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이란 걸
저 번쩍이는 거대한 흐름과
시간과 성장,
집요하게 사라지고
새로 태어나는 것들 앞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걸

색색의 알 같은 순간들을
함께 품었던 시절의 은밀함을
처음부터 모래로 지은
이 몸에 새겨두는 일뿐인 걸

괜찮아
아직 바다는 우리에게 오지 않으니까
우리를 쓸어 가기 전까지
우린 이렇게 나란히 서 있을 테니까
흰 돌과 조개껍질을 더 주울 테니까
파도에 젖은 신발을 말릴 테니까
까끌거리는 모래를 털며
때로는
주저앉아 더러운 손으로
눈을 훔치기도 하며

괜찮아 - 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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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괜찮아” 함께 주목받는 한강 작가의 시(feat. 한강 낭독) [이런뉴스]
    • 입력 2024-10-14 16:27:45
    • 수정2024-10-14 16: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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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 이후 한강 작가의 소설뿐 아니라 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는 소설보다 먼저 시로 등단했습니다. 1993년 계간 문예지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등 시 4편을 실었습니다. 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냈습니다.

KBS 아카이브에서 한강 시인이 낭독한 자신의 시 '효에게 2002. 겨울', 독자가 낭독한 '괜찮아'를 소개합니다. 이 두 작품은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 실려있습니다.

한강 시인은 '효에게. 2002. 겨울'에 대해, "아들이 3살 때 바다에 갔었는데 하얀 돌과 조개 껍데기만 보면 줍고 싶어했다, 오전에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서 돌아와서 썼던 시"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한강 작가가 낭독한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중 '다시, 인사: 새벽의 노래소설', 소설 '어깨뼈' 중 일부도 영상으로 전해드립니다.

프로그램 보기
KBS TV문화지대 낭독의 발견(2005.9.21)
https://www.youtube.com/watch?v=LpTGTEZ7mvM&list=PLFSI5HpHGdTDDPiEXPH-nWs4AQ9VL-E5k&index=13

효에게. 2002. 겨울 - 한강

바다가 나한테 오지 않았어.
겁먹은 얼굴로
아이가 말했다
밀려오길래, 먼 데서부터
밀려오길래
우리를 덮고도
계속 차오르기만 할 줄 알았나 보다

바다가 너한테 오지 않았니
하지만 다시 밀려들기 시작할 땐
다시 끝없을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다리를 끌어안고 다시 뒤로 숨겠지
마치 내가
그 어떤 것,
바다로부터조차 널
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기침이 깊어
먹은 것을 토해내며
눈물을 흘리며
엄마, 엄마를 부르던 것처럼
마치 나에게
그걸 멈춰줄 힘이 있는 듯이

하지만 곧
너도 알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이란 걸
저 번쩍이는 거대한 흐름과
시간과 성장,
집요하게 사라지고
새로 태어나는 것들 앞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걸

색색의 알 같은 순간들을
함께 품었던 시절의 은밀함을
처음부터 모래로 지은
이 몸에 새겨두는 일뿐인 걸

괜찮아
아직 바다는 우리에게 오지 않으니까
우리를 쓸어 가기 전까지
우린 이렇게 나란히 서 있을 테니까
흰 돌과 조개껍질을 더 주울 테니까
파도에 젖은 신발을 말릴 테니까
까끌거리는 모래를 털며
때로는
주저앉아 더러운 손으로
눈을 훔치기도 하며

괜찮아 - 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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