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지 않은 세상에서 뛰어놀고 싶어요”…‘아기들’이 기후소송 나선 이유 [주말엔]

입력 2024.09.22 (10:06) 수정 2024.09.2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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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을 내고 '탄소중립법'이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밝혔습니다.

소송이 제기된 지 4년 5개월 만의 판결입니다.

아시아 최초였던 이번 판결, 세계 최연소 기후소송으로도 다시 화제가 됐습니다.

바로 태아가 포함된 '아기 기후소송단'이 헌법소원 청구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딱따구리'라는 태명을 가진 태아가 대표 청구인으로 등록된 이 소송.

아기들이 직접 나선 이유를 알아봤습니다.


■ '딱따구리 외 61명'

2022년 6월, 기자회견을 연 ‘아기 기후소송단’2022년 6월, 기자회견을 연 ‘아기 기후소송단’

2020년 3월 청소년 환경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을 시작으로, 시민 단체와 아기 기후소송단 등이 차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총 4건의 소송들을 병합해 심리 절차를 밟아왔습니다.

아기 기후소송단은 2017년 이후 태어난 아기 39명과 어린이 22명 등 62명으로 이루어졌는데, 대표 청구인 '딱따구리'는 당시 20주 차였던 태아의 태명입니다.

딱따구리 외 '61명' 중의 한 명인 초등학교 6학년 한제아 양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소송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습니다.

"2022년 소송을 시작할 당시, 사촌 동생이 태어난 지 3개월밖에 안 됐었어요.
햇빛에서 나오는 열이 땅에 계속 가해져서 올라오는 열기가 뜨거운데, 사촌 동생은 아직 키가 작아서 더 더울 것 같았어요.
이런 힘든 세상에서 10년을 더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서 참여하게 됐어요."

10살 어린이가 갓난아기의 미래를 걱정하며 목소리를 낸 겁니다.

또 다른 청구인 초등학교 3학년 김한나 양은 "어른들이 기후위기 숙제를 안 하고 온실가스를 안 줄여서 어린이들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 어른들이 밀린 숙제를 하는 거라고 봐도 될까요?


■ 기후위기라는 '위험상황'

헌재는 결정문의 '심사기준'에 다음과 같이 명시했습니다.

현재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불충분하면 그만큼 미래의 부담이 가중된다.
이것은 기후위기라는 위험상황의 중요한 특성이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인정했지만, 결과는 '일부 승소'였습니다.

아기 기후소송단을 담당한 김영희 변호사는 헌법소원 청구 내용을 3가지로 정리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 중에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제1항인 '2030년부터 50년까지의 감축 목표가 존재하지 않는다'만을 헌법에 위배된다고 봤습니다.

2018년,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1.5도 보고서'에서 전 세계가 2050년까지 넷제로(Net Zero) 선언을 해야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2030년부터 2050년까지의 구체적 목표가 없었던 겁니다.

김 변호사는 "'일부 승소'가 나긴 했지만, 기념비적 판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기각이 된 부분도 위헌은 아니지만, 최선도 아니라는 취지로 헌법재판소가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 "어린애가 뭘 알아"

소송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함께 이끌어낸 아기 기후소송단.

손꼽아 기다리던 소식에 가족들과 기쁨을 나눴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로서 힘든 점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른들이 나쁜 말 할 때, 어린애가 뭘 아냐고 했을 때 속상했다"고 김한나 양은 말합니다.

한제아 양은 "사람들은 기후소송 뭐 시위다, 이런 생각만 한다"며 "악플도 많이 달렸지만,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는 건 우리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직접 나서야 진심이 닿았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아이들의 참여를 이렇게 바라봤습니다.

"미래세대일수록 민주적 정치과정에 대한 참여에 제약이 있으므로, 이러한 영역에서의 입법의무 이행에 대해서는 사법적 심사의 강도가 보다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한제아 양의 변론을 결정문에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 어른들의 '약속'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냐'는 질문에 김한나 양은 "너무 덥지 않아서 실컷 뛰어놀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고 대답했습니다.

한제아 양은 "우리를 미래세대라고 부르지만, 내일 살고 싶어 하고 1분 뒤에도 살고 싶어 하는 건 모두가 같다"며 "그럼 모두 미래세대인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면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 공정한 세상을 바라고, 어른들이 약속을 잘 지켰으면 좋겠다"며 미소를 지었는데요.

헌법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헌법 제35조]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서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잃는 건 미래의 어린이들입니다.

더 늦기 전에, 이제는 정말 어른들이 약속을 지켜야 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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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덥지 않은 세상에서 뛰어놀고 싶어요”…‘아기들’이 기후소송 나선 이유 [주말엔]
    • 입력 2024-09-22 10:06:26
    • 수정2024-09-22 10:07:07
    주말엔

지난 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을 내고 '탄소중립법'이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밝혔습니다.

소송이 제기된 지 4년 5개월 만의 판결입니다.

아시아 최초였던 이번 판결, 세계 최연소 기후소송으로도 다시 화제가 됐습니다.

바로 태아가 포함된 '아기 기후소송단'이 헌법소원 청구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딱따구리'라는 태명을 가진 태아가 대표 청구인으로 등록된 이 소송.

아기들이 직접 나선 이유를 알아봤습니다.


■ '딱따구리 외 61명'

2022년 6월, 기자회견을 연 ‘아기 기후소송단’
2020년 3월 청소년 환경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을 시작으로, 시민 단체와 아기 기후소송단 등이 차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총 4건의 소송들을 병합해 심리 절차를 밟아왔습니다.

아기 기후소송단은 2017년 이후 태어난 아기 39명과 어린이 22명 등 62명으로 이루어졌는데, 대표 청구인 '딱따구리'는 당시 20주 차였던 태아의 태명입니다.

딱따구리 외 '61명' 중의 한 명인 초등학교 6학년 한제아 양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소송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습니다.

"2022년 소송을 시작할 당시, 사촌 동생이 태어난 지 3개월밖에 안 됐었어요.
햇빛에서 나오는 열이 땅에 계속 가해져서 올라오는 열기가 뜨거운데, 사촌 동생은 아직 키가 작아서 더 더울 것 같았어요.
이런 힘든 세상에서 10년을 더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서 참여하게 됐어요."

10살 어린이가 갓난아기의 미래를 걱정하며 목소리를 낸 겁니다.

또 다른 청구인 초등학교 3학년 김한나 양은 "어른들이 기후위기 숙제를 안 하고 온실가스를 안 줄여서 어린이들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 어른들이 밀린 숙제를 하는 거라고 봐도 될까요?


■ 기후위기라는 '위험상황'

헌재는 결정문의 '심사기준'에 다음과 같이 명시했습니다.

현재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불충분하면 그만큼 미래의 부담이 가중된다.
이것은 기후위기라는 위험상황의 중요한 특성이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인정했지만, 결과는 '일부 승소'였습니다.

아기 기후소송단을 담당한 김영희 변호사는 헌법소원 청구 내용을 3가지로 정리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 중에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제1항인 '2030년부터 50년까지의 감축 목표가 존재하지 않는다'만을 헌법에 위배된다고 봤습니다.

2018년,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1.5도 보고서'에서 전 세계가 2050년까지 넷제로(Net Zero) 선언을 해야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2030년부터 2050년까지의 구체적 목표가 없었던 겁니다.

김 변호사는 "'일부 승소'가 나긴 했지만, 기념비적 판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기각이 된 부분도 위헌은 아니지만, 최선도 아니라는 취지로 헌법재판소가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 "어린애가 뭘 알아"

소송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함께 이끌어낸 아기 기후소송단.

손꼽아 기다리던 소식에 가족들과 기쁨을 나눴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로서 힘든 점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른들이 나쁜 말 할 때, 어린애가 뭘 아냐고 했을 때 속상했다"고 김한나 양은 말합니다.

한제아 양은 "사람들은 기후소송 뭐 시위다, 이런 생각만 한다"며 "악플도 많이 달렸지만,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는 건 우리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직접 나서야 진심이 닿았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아이들의 참여를 이렇게 바라봤습니다.

"미래세대일수록 민주적 정치과정에 대한 참여에 제약이 있으므로, 이러한 영역에서의 입법의무 이행에 대해서는 사법적 심사의 강도가 보다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한제아 양의 변론을 결정문에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 어른들의 '약속'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냐'는 질문에 김한나 양은 "너무 덥지 않아서 실컷 뛰어놀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고 대답했습니다.

한제아 양은 "우리를 미래세대라고 부르지만, 내일 살고 싶어 하고 1분 뒤에도 살고 싶어 하는 건 모두가 같다"며 "그럼 모두 미래세대인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면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 공정한 세상을 바라고, 어른들이 약속을 잘 지켰으면 좋겠다"며 미소를 지었는데요.

헌법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헌법 제35조]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서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잃는 건 미래의 어린이들입니다.

더 늦기 전에, 이제는 정말 어른들이 약속을 지켜야 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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