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왜 팔레스타인 편이 됐나…바이든의 ‘중동의 늪’ [이정민의 워싱턴정치K]

입력 2024.05.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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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국무부 정치군사국 과장의 사표…'나는 왜 국무부를 떠났나'

조시 폴 미국 국무부 정치군사국 과장은 지난해 10월, 11년 동안 근무했던 국무부를 떠났습니다. 정치군사국은 한국에 무기 지원을 승인하는 걸 포함해 우방국에 대한 안보 지원을 결정하는 국무부의 핵심 부서입니다. 국무부의 요직을 스스로 걷어차고 나온 폴 과장의 사임은 미국에서 큰 뉴스가 됐습니다. 그가 밝힌 사임의 이유가 이스라엘에 대한 '묻지마 무기 지원'에 반대해서였기 때문입니다.

KBS와 지난달 인터뷰를 한 폴 과장은 사임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미국이 우방에 제공하는 무기가 민간인 수천 명을 죽이는 데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며, "이에 대한 우려를 제기할 때마다 내가 마주한 건 무기 이전을 더 빨리 진행하라는 지시뿐이었고, 토론이나 논쟁에는 관심조차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어떤 분쟁에서도 미국 정부가 이런 적은 없었다는 겁니다. 법률을 위반해 이스라엘에 무기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데도, 그간 인권과 관련해 불미스러웠던 국가에 대한 지원을 막아왔던 의회마저 이스라엘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압박했다는 게 폴 과장의 주장입니다. 그러면서 "민간인 살상에 대한 우려가 공개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사임했다"고 밝혔습니다.

조시 폴 미국 국무부 정치군사국 과장이 지난달 KBS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KBS)조시 폴 미국 국무부 정치군사국 과장이 지난달 KBS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KBS)

■ 갈 수록 불붙는 반전시위…청년 세대는 왜 팔레스타인 편이 됐나

폴 과장의 생각은 지금 미국 대학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전·친(親)팔레스타인 시위와 궤를 같이합니다. 미국의 30개 넘는 대학이 격해진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위는 갑작스런 게 아닙니다. 중동 전쟁 직후부터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들이 잇따라 일어났고, 그 주역은 2~30대 젊은 층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계뿐 아니라 각기 다른 인종의 미국인들도 고루 섞여 참여했습니다.

유대계 영향력이 강하고, 이스라엘과 친밀한 미국이지만, 최근의 여론조사는 청년층에선 정서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팔레스타인보단 이스라엘에 공감하는 사람이 4~5배는 많은 50대 이상과 비교하면 20대는 팔레스타인에 공감한다는 인원이 두 배 이상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요? UCLA 대학 이스라엘 연구센터의 도브 왁스만 소장은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인의 감정이 세대별로 다르다는 점을 짚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에 민감한 미국의 기성 세대는 이스라엘을 유대인들의 피난처로 보며 이스라엘에 공감하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2000년 이후 중동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핵으로 무장한 이스라엘과 이에 상반된 박해당하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보도를 중점적으로 접한 세대라는 겁니다. 왁스만 소장은 연령대가 높을수록 종교가 기독교인 경우가 높은 점도 작용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젊은 층이 글로벌 이슈에 대한 정보를 주로 접하는 곳이 기성언론이 아닌 소셜미디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영국의 시사잡지 스펙테이터월드 대학연구소의 후안 빌라밀 편집위원은 '더힐' 기고에서 "사용자 절반이 30세 미만인 소셜미디어 '틱톡'에서 '이스라엘 지지(#standwithisrael)'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5억 9천만 개였던 반면, '자유 팔레스타인(#freepalestine)' 해시태그의 게시물은 310억 개로 50배 이상 많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일어난 친팔레스타인 시위(위), UCLA에는 경찰이 투입돼 시위대 천막에서 시위대원들을 끌어내고 있다(아래).   (사진=AP)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일어난 친팔레스타인 시위(위), UCLA에는 경찰이 투입돼 시위대 천막에서 시위대원들을 끌어내고 있다(아래). (사진=AP)

토머스 자이조프 아메리칸대학 부교수는 미국 내에서 있었던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젊은 층에 미친 영향을 지적합니다. BLM은 2020년 백인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가 숨지자 미국 각지에서 일어난 인종차별 운동입니다. 퀴니피액대 여론조사에서 2019년 3월만 해도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는 47% 여론에 반해 팔레스타인 지지는 16%였지만,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이후인 2021년 5월에는 여론이 41%대 30%로 바뀌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자이조프 교수는 실제 미국 내 활동가들이 미국 내 유색인종과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이 받는 처우의 공통점을 지적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약자에 공감하는 청년층이 팔레스타인에 더 마음을 주게 된 거라고 분석했습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잇따른 강경 정책으로 가자 지구의 참상이 이어지고, 그럼에도 전쟁 초기 이스라엘을 비난했던 대학생들의 명단을 작성해 '취업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미국 대기업의 친유대주의적 처사도 시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2020년 미국 전역에서 일어났던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2020년 미국 전역에서 일어났던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

■ "21세기 최대 학생운동"…바이든이 빠진 '중동의 늪'

시위대는 전쟁 반대뿐 아니라 대학 당국이 이스라엘과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합니다. 대학이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하는 회사와 거래를 중단하고, 이스라엘에서 받는 자금도 공개해야 한다는 겁니다. 미국 30여 개 대학으로 번진 반전 시위는 이제 1968년 베트남전 반전 시위와 비교되며 '21세기 최대 규모 학생운동'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대응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던 바이든 정부는 최근에야 입장을 냈습니다. "표현 자유는 존중하지만, 폭력 시위는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일부 대학에선 섬광탄과 고무탄, 총기까지 동원된 경찰의 강경 진압이 이뤄졌습니다. 체포 인원은 2천 명이 넘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위가 대이스라엘 정책에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고도 공언했지만, 시위가 올 대선에 미칠 영향에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지난 민주당 경선에서는 사실상 단일 후보였던 바이든 대통령을 두고 '지지후보 없음(uncommitted)'에 일부러 투표한 사람이 10~20%가 넘은 주들도 있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친이스라엘 정책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지난 3월 미국 민주당 경선을 치른 미시간(좌)과 조지아(우)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투표하는 대신 ‘지지후보 없음’에 투표하자는 운동이 벌어졌다.  (사진=AP)지난 3월 미국 민주당 경선을 치른 미시간(좌)과 조지아(우)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투표하는 대신 ‘지지후보 없음’에 투표하자는 운동이 벌어졌다. (사진=AP)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하던 젊은 층이 트럼프로 지지를 바꿀 가능성은 적지만 아예 투표를 포기할 경우 경합지 득표에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미국 공영방송 NPR이 1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18~29세 응답자들의 지지율은 31%로 전체 지지율인 41%보다 무려 10%p가 낮았습니다.

진보 성향인 무소속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베트남 반전 시위에 발목을 잡혔던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사람들은 이번 시위가 '바이든의 베트남'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고 꼬집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전쟁 초기 드러나게 이스라엘 편을 들었던 기조를 일부 접고, 휴전 협상에 힘을 쏟으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라파 공격을 뜯어말리는 것도 국내 지지층의 이탈을 더는 두고 볼 수는 없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 등을 돌릴 수도, 그렇다고 마냥 이스라엘 편을 들 수도 없는 바이든 대통령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전쟁을 끝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해결책은 군사 지원 아닌 정치적 해법"…미국도 기로에

미국은 확전 반대에 총력을 기울이면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 의사를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조시 폴 전 미국 국무부 과장은 "각종 압력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대이스라엘 정책 방향이 어느 정도는 변했다. 하지만 무기 이전에 대한 결정은 아직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미국은 이스라엘이 요청한 무기를 제공하는 데 계속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번지고 있는 시위가 매우 중요하며, 시위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바이든 정부가 상당한 압력을 느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기조를 바꿀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가자 지구 (사진=AP)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가자 지구 (사진=AP)

폴 과장은 그러면서 결국 전쟁을 멈추게 하는 방법만이 해법이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하마스는 단순한 무장 조직이 아닌 정치 조직이기 때문에 군사 지원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하마스는 근본적인 정치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이스라엘에 저항할 사람들을 계속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해결책은 군사적이 아닌 정치적 측면에서 제시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전쟁이 지속될 경우 이스라엘과 미국에 미칠 영향도 언급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지역과 전 세계에서 고립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함께하고 싶지 않은 또 다른 세대의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신뢰하지 않게 될 것"이라면서, "이는 미국의 국익에도 피해를 준다. 중동과의 관계를 해치고 미국의 신뢰성을 약화시키고, 러시아나 중국 같은 나라가 중동에 진입할 기회를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라고 폴 과장은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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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은 왜 팔레스타인 편이 됐나…바이든의 ‘중동의 늪’ [이정민의 워싱턴정치K]
    • 입력 2024-05-07 07: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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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국무부 정치군사국 과장의 사표…'나는 왜 국무부를 떠났나'

조시 폴 미국 국무부 정치군사국 과장은 지난해 10월, 11년 동안 근무했던 국무부를 떠났습니다. 정치군사국은 한국에 무기 지원을 승인하는 걸 포함해 우방국에 대한 안보 지원을 결정하는 국무부의 핵심 부서입니다. 국무부의 요직을 스스로 걷어차고 나온 폴 과장의 사임은 미국에서 큰 뉴스가 됐습니다. 그가 밝힌 사임의 이유가 이스라엘에 대한 '묻지마 무기 지원'에 반대해서였기 때문입니다.

KBS와 지난달 인터뷰를 한 폴 과장은 사임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미국이 우방에 제공하는 무기가 민간인 수천 명을 죽이는 데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며, "이에 대한 우려를 제기할 때마다 내가 마주한 건 무기 이전을 더 빨리 진행하라는 지시뿐이었고, 토론이나 논쟁에는 관심조차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어떤 분쟁에서도 미국 정부가 이런 적은 없었다는 겁니다. 법률을 위반해 이스라엘에 무기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데도, 그간 인권과 관련해 불미스러웠던 국가에 대한 지원을 막아왔던 의회마저 이스라엘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압박했다는 게 폴 과장의 주장입니다. 그러면서 "민간인 살상에 대한 우려가 공개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사임했다"고 밝혔습니다.

조시 폴 미국 국무부 정치군사국 과장이 지난달 KBS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KBS)
■ 갈 수록 불붙는 반전시위…청년 세대는 왜 팔레스타인 편이 됐나

폴 과장의 생각은 지금 미국 대학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전·친(親)팔레스타인 시위와 궤를 같이합니다. 미국의 30개 넘는 대학이 격해진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위는 갑작스런 게 아닙니다. 중동 전쟁 직후부터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들이 잇따라 일어났고, 그 주역은 2~30대 젊은 층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계뿐 아니라 각기 다른 인종의 미국인들도 고루 섞여 참여했습니다.

유대계 영향력이 강하고, 이스라엘과 친밀한 미국이지만, 최근의 여론조사는 청년층에선 정서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팔레스타인보단 이스라엘에 공감하는 사람이 4~5배는 많은 50대 이상과 비교하면 20대는 팔레스타인에 공감한다는 인원이 두 배 이상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요? UCLA 대학 이스라엘 연구센터의 도브 왁스만 소장은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인의 감정이 세대별로 다르다는 점을 짚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에 민감한 미국의 기성 세대는 이스라엘을 유대인들의 피난처로 보며 이스라엘에 공감하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2000년 이후 중동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핵으로 무장한 이스라엘과 이에 상반된 박해당하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보도를 중점적으로 접한 세대라는 겁니다. 왁스만 소장은 연령대가 높을수록 종교가 기독교인 경우가 높은 점도 작용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젊은 층이 글로벌 이슈에 대한 정보를 주로 접하는 곳이 기성언론이 아닌 소셜미디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영국의 시사잡지 스펙테이터월드 대학연구소의 후안 빌라밀 편집위원은 '더힐' 기고에서 "사용자 절반이 30세 미만인 소셜미디어 '틱톡'에서 '이스라엘 지지(#standwithisrael)'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5억 9천만 개였던 반면, '자유 팔레스타인(#freepalestine)' 해시태그의 게시물은 310억 개로 50배 이상 많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일어난 친팔레스타인 시위(위), UCLA에는 경찰이 투입돼 시위대 천막에서 시위대원들을 끌어내고 있다(아래).   (사진=AP)
토머스 자이조프 아메리칸대학 부교수는 미국 내에서 있었던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젊은 층에 미친 영향을 지적합니다. BLM은 2020년 백인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가 숨지자 미국 각지에서 일어난 인종차별 운동입니다. 퀴니피액대 여론조사에서 2019년 3월만 해도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는 47% 여론에 반해 팔레스타인 지지는 16%였지만,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이후인 2021년 5월에는 여론이 41%대 30%로 바뀌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자이조프 교수는 실제 미국 내 활동가들이 미국 내 유색인종과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이 받는 처우의 공통점을 지적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약자에 공감하는 청년층이 팔레스타인에 더 마음을 주게 된 거라고 분석했습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잇따른 강경 정책으로 가자 지구의 참상이 이어지고, 그럼에도 전쟁 초기 이스라엘을 비난했던 대학생들의 명단을 작성해 '취업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미국 대기업의 친유대주의적 처사도 시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2020년 미국 전역에서 일어났던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
■ "21세기 최대 학생운동"…바이든이 빠진 '중동의 늪'

시위대는 전쟁 반대뿐 아니라 대학 당국이 이스라엘과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합니다. 대학이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하는 회사와 거래를 중단하고, 이스라엘에서 받는 자금도 공개해야 한다는 겁니다. 미국 30여 개 대학으로 번진 반전 시위는 이제 1968년 베트남전 반전 시위와 비교되며 '21세기 최대 규모 학생운동'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대응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던 바이든 정부는 최근에야 입장을 냈습니다. "표현 자유는 존중하지만, 폭력 시위는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일부 대학에선 섬광탄과 고무탄, 총기까지 동원된 경찰의 강경 진압이 이뤄졌습니다. 체포 인원은 2천 명이 넘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위가 대이스라엘 정책에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고도 공언했지만, 시위가 올 대선에 미칠 영향에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지난 민주당 경선에서는 사실상 단일 후보였던 바이든 대통령을 두고 '지지후보 없음(uncommitted)'에 일부러 투표한 사람이 10~20%가 넘은 주들도 있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친이스라엘 정책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지난 3월 미국 민주당 경선을 치른 미시간(좌)과 조지아(우)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투표하는 대신 ‘지지후보 없음’에 투표하자는 운동이 벌어졌다.  (사진=AP)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하던 젊은 층이 트럼프로 지지를 바꿀 가능성은 적지만 아예 투표를 포기할 경우 경합지 득표에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미국 공영방송 NPR이 1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18~29세 응답자들의 지지율은 31%로 전체 지지율인 41%보다 무려 10%p가 낮았습니다.

진보 성향인 무소속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베트남 반전 시위에 발목을 잡혔던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사람들은 이번 시위가 '바이든의 베트남'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고 꼬집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전쟁 초기 드러나게 이스라엘 편을 들었던 기조를 일부 접고, 휴전 협상에 힘을 쏟으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라파 공격을 뜯어말리는 것도 국내 지지층의 이탈을 더는 두고 볼 수는 없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 등을 돌릴 수도, 그렇다고 마냥 이스라엘 편을 들 수도 없는 바이든 대통령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전쟁을 끝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해결책은 군사 지원 아닌 정치적 해법"…미국도 기로에

미국은 확전 반대에 총력을 기울이면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 의사를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조시 폴 전 미국 국무부 과장은 "각종 압력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대이스라엘 정책 방향이 어느 정도는 변했다. 하지만 무기 이전에 대한 결정은 아직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미국은 이스라엘이 요청한 무기를 제공하는 데 계속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번지고 있는 시위가 매우 중요하며, 시위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바이든 정부가 상당한 압력을 느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기조를 바꿀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가자 지구 (사진=AP)
폴 과장은 그러면서 결국 전쟁을 멈추게 하는 방법만이 해법이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하마스는 단순한 무장 조직이 아닌 정치 조직이기 때문에 군사 지원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하마스는 근본적인 정치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이스라엘에 저항할 사람들을 계속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해결책은 군사적이 아닌 정치적 측면에서 제시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전쟁이 지속될 경우 이스라엘과 미국에 미칠 영향도 언급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지역과 전 세계에서 고립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함께하고 싶지 않은 또 다른 세대의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신뢰하지 않게 될 것"이라면서, "이는 미국의 국익에도 피해를 준다. 중동과의 관계를 해치고 미국의 신뢰성을 약화시키고, 러시아나 중국 같은 나라가 중동에 진입할 기회를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라고 폴 과장은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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