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헬기 사고 65% ‘조종사 과실’”…속사정은?

입력 2021.05.13 (08:02) 수정 2021.05.1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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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충북 청주시 문의면 대청호에 산불진화용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습니다.

헬기가 추락한 당일과 인양된 이틀 뒤, 언론사들은 앞다퉈 사고 발생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이런 헬기 추락 사고가 주로 어떤 이유에서 발생하는 지, 왜 근절되지 않는 건지, KBS는 조금 더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 '헬기 추락 사고 원인의 65%가 조종사 과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최근 10년 동안 발생한 헬기 사고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10건 가운데 6건을, 단순히 조종사 과실 때문으로만 볼 수 있을까요?

KBS는 헬기 업체의 조종사와 직원, 지방항공청 관계자 등에게 그 실상과 원인을 들어봤습니다.

지난달 21일, 충북 청주 대청호에 추락한 산불진화용 헬기가 사고 이틀 만에 인양되고 있다.지난달 21일, 충북 청주 대청호에 추락한 산불진화용 헬기가 사고 이틀 만에 인양되고 있다.

■ "항공 사고는 복합적"… 안전감독관은 무경험자?

현재 산불 진화를 위해 자치단체에 파견돼 상시 대기하고 있는 현직 임차 헬기 기장 A 씨.

"우리는 연중 6개월 산불 진화를 위해 거의 쉬지 않고 일한다. 여름철에는 철탑의 송전선을 설 하고, 국립공원 등산로에 자재도 올리고, 응급환자를 수송 하는 등 복잡하고 다양한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회사는 가급적 수익 창출을 위해 적은 인원으로 일을 해야 하는 구조다, 교대할 헬기 조종사도 부족하다, 산불 대기 기간에는 늘 피로가 누적돼 있다"고도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 취재진에게 "안전 감독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1년에 4차례, 관할 지방항공청의 안전 감독관이 조종사들이 파견된 현장으로 직접 나와 안전 평가를 하는데 ' 형식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안전감독관들이 서류상, 규정에 나와 있는 내용만 국한해 감독하고 평가한다"면서 "실질적인 조종사의 비행 숙련 상태나, 임무에 맞는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산불 진화, 담수, 화물 운송, 송전선 설치 등 다양한 항공 업무를 수행하는 헬기 조종사들의 운항 능력을 제대로 안전 감독하려면, 감독관도 그 업무를 경험 했어야 한다"는 겁니다.

한 헬기 업체의 노조지부장은 "숙련도가 다른 조종사들끼리 모여 헬기 사고에 대한 의견도 공유하고, 항공 업무별 주의 사항도 숙지하는 등 제대로 된 집체 안전 교육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습니다. "항공 사고는 복합적인 요인으로 일어나는데, 단순 조종 실수로 치부할 수 없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조종사 과실을 조종사 개인의 문제로 국한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 "헬기 조종사 출신 안전감독관, 단 1명"

취재진은 헬기 분야의 안전감독관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안전 감독은 크게 조종 능력을 평가하는 '운항', 기체의 정비 상태를 평가 '감항'으로 나뉩니다.

이런 관리 감독을 하는 지방항공청은 우리나라에 3곳, 서울과 부산, 제주에 있습니다.

서울지방항공청이 관리하는 민간 헬기 업체는 17곳, 조종사는 171명, 헬기는 103대입니다. 이 항공청에 소속된 안전감독관 17명 가운데 6명이 운항 분야를 감독하는데, 감독관 1명이 조종사 28명을 관리 감독하는 셈입니다.

부산지방항공청의 관리 대상 업체는 3곳, 조종사는 6명, 헬기는 3대입니다. 안전감독관 8명 가운데 3명이 운항 분야를 감독합니다. 감독관 1명이 조종사 2명을 관리 감독하는 꼴입니다.

제주지방항공청은 관리 대상 헬기가 없어 자격을 갖춘 감독관이 아직 없습니다.

서울지방항공청에 감독 대상 업체와 조종사들이 몰리는 건, 관할을 나누는 기준이 업체의 본사 위치가 어디있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헬기 조종사 출신의 운항 분야 안전감독관이 전국적으로 서울지방항공청에 딱 1명 뿐이라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먼 장소까지 파견돼 늘 헬기를 띄울 준비를 하고 있는 조종사를 상대로 제때, 그리고 시간을 할애해 꼼꼼하게 안전 감독을 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지난 2013년, 경북 안동 임화호에 헬기가 추락해 소방 당국이 인명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지난 2013년, 경북 안동 임화호에 헬기가 추락해 소방 당국이 인명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 "안전 평가 질 떨어져"… 내부 비판의 목소리도

지방항공청을 관리하는 국토교통부 내부에서도 헬기 전문 담당 공무원과 안전감독관이 없어, " 안전 평가의 질이 떨어진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의 항공 안전 감독 시스템은 대형 여객기를 보유한 항공사 위주로 맞춰져 있습니다.

최연철 한서대학교 항공학부 교수는 "헬기 분야의 안전감독관을 늘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지적합니다. "정부가 헬기 사고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며, " 국가 차원의 헬기 안전감독시스템을 보완해야 하고, 우리나라의 영세한 헬기 업체에 대한 전반적인 안전 진단이 시급하다"고 강조합니다.

각종 재난 재해와 응급 이송 등으로 헬기의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안전 감독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

헬기 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조종사 과실'을 '부실한 안전 감독'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겁니다.

더 이상의 사고 피해와 비극을 막으려면 목숨을 걸고 헬기를 모는 조종사들이 당장 무엇을 원하는 지, 어떤 안전 대책이 절실하다고 호소하는지 귀 기울여 듣고, 서둘러 개선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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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헬기 사고 65% ‘조종사 과실’”…속사정은?
    • 입력 2021-05-13 08:02:41
    • 수정2021-05-13 15:29:42
    취재후·사건후
지난달 21일, 충북 청주시 문의면 대청호에 산불진화용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습니다.

헬기가 추락한 당일과 인양된 이틀 뒤, 언론사들은 앞다퉈 사고 발생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이런 헬기 추락 사고가 주로 어떤 이유에서 발생하는 지, 왜 근절되지 않는 건지, KBS는 조금 더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 '헬기 추락 사고 원인의 65%가 조종사 과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최근 10년 동안 발생한 헬기 사고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10건 가운데 6건을, 단순히 조종사 과실 때문으로만 볼 수 있을까요?

KBS는 헬기 업체의 조종사와 직원, 지방항공청 관계자 등에게 그 실상과 원인을 들어봤습니다.

지난달 21일, 충북 청주 대청호에 추락한 산불진화용 헬기가 사고 이틀 만에 인양되고 있다.
■ "항공 사고는 복합적"… 안전감독관은 무경험자?

현재 산불 진화를 위해 자치단체에 파견돼 상시 대기하고 있는 현직 임차 헬기 기장 A 씨.

"우리는 연중 6개월 산불 진화를 위해 거의 쉬지 않고 일한다. 여름철에는 철탑의 송전선을 설 하고, 국립공원 등산로에 자재도 올리고, 응급환자를 수송 하는 등 복잡하고 다양한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회사는 가급적 수익 창출을 위해 적은 인원으로 일을 해야 하는 구조다, 교대할 헬기 조종사도 부족하다, 산불 대기 기간에는 늘 피로가 누적돼 있다"고도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 취재진에게 "안전 감독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1년에 4차례, 관할 지방항공청의 안전 감독관이 조종사들이 파견된 현장으로 직접 나와 안전 평가를 하는데 ' 형식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안전감독관들이 서류상, 규정에 나와 있는 내용만 국한해 감독하고 평가한다"면서 "실질적인 조종사의 비행 숙련 상태나, 임무에 맞는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산불 진화, 담수, 화물 운송, 송전선 설치 등 다양한 항공 업무를 수행하는 헬기 조종사들의 운항 능력을 제대로 안전 감독하려면, 감독관도 그 업무를 경험 했어야 한다"는 겁니다.

한 헬기 업체의 노조지부장은 "숙련도가 다른 조종사들끼리 모여 헬기 사고에 대한 의견도 공유하고, 항공 업무별 주의 사항도 숙지하는 등 제대로 된 집체 안전 교육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습니다. "항공 사고는 복합적인 요인으로 일어나는데, 단순 조종 실수로 치부할 수 없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조종사 과실을 조종사 개인의 문제로 국한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 "헬기 조종사 출신 안전감독관, 단 1명"

취재진은 헬기 분야의 안전감독관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안전 감독은 크게 조종 능력을 평가하는 '운항', 기체의 정비 상태를 평가 '감항'으로 나뉩니다.

이런 관리 감독을 하는 지방항공청은 우리나라에 3곳, 서울과 부산, 제주에 있습니다.

서울지방항공청이 관리하는 민간 헬기 업체는 17곳, 조종사는 171명, 헬기는 103대입니다. 이 항공청에 소속된 안전감독관 17명 가운데 6명이 운항 분야를 감독하는데, 감독관 1명이 조종사 28명을 관리 감독하는 셈입니다.

부산지방항공청의 관리 대상 업체는 3곳, 조종사는 6명, 헬기는 3대입니다. 안전감독관 8명 가운데 3명이 운항 분야를 감독합니다. 감독관 1명이 조종사 2명을 관리 감독하는 꼴입니다.

제주지방항공청은 관리 대상 헬기가 없어 자격을 갖춘 감독관이 아직 없습니다.

서울지방항공청에 감독 대상 업체와 조종사들이 몰리는 건, 관할을 나누는 기준이 업체의 본사 위치가 어디있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헬기 조종사 출신의 운항 분야 안전감독관이 전국적으로 서울지방항공청에 딱 1명 뿐이라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먼 장소까지 파견돼 늘 헬기를 띄울 준비를 하고 있는 조종사를 상대로 제때, 그리고 시간을 할애해 꼼꼼하게 안전 감독을 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지난 2013년, 경북 안동 임화호에 헬기가 추락해 소방 당국이 인명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 "안전 평가 질 떨어져"… 내부 비판의 목소리도

지방항공청을 관리하는 국토교통부 내부에서도 헬기 전문 담당 공무원과 안전감독관이 없어, " 안전 평가의 질이 떨어진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의 항공 안전 감독 시스템은 대형 여객기를 보유한 항공사 위주로 맞춰져 있습니다.

최연철 한서대학교 항공학부 교수는 "헬기 분야의 안전감독관을 늘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지적합니다. "정부가 헬기 사고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며, " 국가 차원의 헬기 안전감독시스템을 보완해야 하고, 우리나라의 영세한 헬기 업체에 대한 전반적인 안전 진단이 시급하다"고 강조합니다.

각종 재난 재해와 응급 이송 등으로 헬기의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안전 감독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

헬기 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조종사 과실'을 '부실한 안전 감독'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겁니다.

더 이상의 사고 피해와 비극을 막으려면 목숨을 걸고 헬기를 모는 조종사들이 당장 무엇을 원하는 지, 어떤 안전 대책이 절실하다고 호소하는지 귀 기울여 듣고, 서둘러 개선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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