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책의 날]⑥ 책 살 돈 아끼는 학교…‘3% 이상 필수’ 명문화해도 절반 안 지켜

입력 2021.04.26 (09:25) 수정 2021.05.0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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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사는 데 얼마 썼나?...6,100만 원 vs 0원 '편차 극심'

학생 3백 명이 채 안 되는 대구의 한 고등학교, 도서관의 책과 시청각 자료를 사는 데 지난해 6,100만 원을 썼습니다. 전국 학교 중 자료를 구입하는 데 가장 많은 예산을 쓴 곳입니다. 이미 갖고 있는 장서 수가 4만 7천 권이 넘는데도, 책을 늘리는 데 가장 열심이었습니다.


※ KBS가 제작한 공공·학교도서관 인터랙티브 지도. 학교별 장서 수, 예산 등의 각종 도서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https://news.kbs.co.kr/dj/2021-04-lib/index.html
(일부 포털에서는 인터랙티브 지도 연결이 안 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https://news.kbs.co.kr/dj/2021-04-lib/index.html 링크 주소를 주소창에 입력하면 됩니다.)

반면 부산의 또 다른 고등학교는 학생이 6백 명이 넘지만, 지난해 책 등을 사는데 전혀 돈을 쓰지 않았습니다. 학교도서관 예산으로 배정된 돈이 아예 없어 책도 살 수 없었습니다. 6,100만 원 대 0원, 차이가 크게 나타났는데요. 학생 수가 두 배 이상 많은 학교가 오히려 책 사는 데는 소홀했습니다.

대한민국 도서관 실태를 점검하는 연속 시리즈, 이번엔 학교도서관이 책 사는 데 쓰는 예산을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KBS는 세계 책의 날(4.23)을 맞아 공공도서관 천여 곳의 실태를 살펴본 데 이어, 전국의 초·중·고 학교도서관 만여 곳도 전수 분석했습니다. 교육통계서비스 ‘2020년 유초중등 교육기본통계조사’에 참여한 11,744개 초·중·고교 가운데, 학생이 없는 학교를 제외하고 11,734곳의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 0원인 학교도 47곳이나..."의지도 없는 곳 있어"

학교도서관에서 e-book까지 포함한 도서와 시청각 자료 등 비도서를 사는 데 쓰는 예산을 '자료구입비'라고 부릅니다. 2020년 4월 1일 기준, 전체 학교 만여 곳의 자료구입비는 평균 954만 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초등학교는 평균 951만 원, 중학교는 884만 원, 고등학교 1,053만 원으로 천만 원 안팎이었는데요. 자료 구입하는데 한 푼도 안 쓴 학교들이 있는가 하면 최대 수천만 원을 쓴 곳들도 있어 대조적이었습니다.

자료구입비가 0원인 학교들은 전체 47곳(초 28개교, 중 13개교, 고 6개교)이나 됐습니다. 초등학교들은 대부분 시골에 있는 소규모 학교인 데 비해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그렇지 않은 상황임에도 책을 구입하지 않았던 곳들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는 5,600만 원, 중학교는 3,000만 원, 고등학교는 위에서 언급한 6,100만 원을 쓴 사례도 있었는데요. 학교들의 예산 형편과 의지에 따라 큰 차이가 났습니다.

■ 고교가 초·중학교보다 책 구입 소홀... "1년에 학생당 책 한 권 살 정도"

지난해 전국 학교의 연간 자료구입비를 학생 1명당 얼마나 배정됐는지 산출해봤더니 2만 1,054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학교급별로 보면, 초등학교가 2만 2,077원으로 상대적으로 많았고 이어 중학교 2만 1,488원, 고등학교 1만 8,563원 순이었습니다. 지난해 도서 1권 평균 가격은 1만 6,420원으로 집계됐는데요. 고등학교 평균값인 1만 8천 원 정도로는, 한 해에 학생당 책 1권 정도 사는 수준입니다.

■ '학생 1명당 자료구입비' 시도별 2배까지 차이...강남·서초도 하위권

지역별 편차도 많이 났습니다. 17개 시도별로 살펴보니, 학생 1명당 자료구입비가 가장 많은 곳은 전남으로, 3만 325원이었습니다. 이어 경남 (2만 6,808원), 경북 (2만 4,751원) , 충북 (2만 4,317원) 등의 순이었습니다. 가장 최하위는 대전 1만 5,330원으로, 3만 원이 넘은 전남에 비해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서울은 1만 6,791원으로 하위권이었습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229개 기초자치단체 기준으로도 나눠봤는데요. 기본적으로 시도별 경향과 비슷했는데, 최하위 시군구를 살펴보니 특이한 점이 발견됐습니다.


학생 1명당 자료구입비를 적게 쓴 하위 10개 시군구 가운데, 상대적으로 예산이 많은 서울 강남 3구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가장 낮은 곳은 대전 서구 (1만 2,596원)였고, 이어 서울 강남구, 서초구, 양천구 등이 엇비슷한 수준으로 낮았습니다. 서울 송파구와 대구 수성구까지, 교육열이 높은 지역으로 알려진 곳들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이들 지역의 학생 수가 많은 영향이 반영된 점도 있겠지만, 사교육이 활성화된 지역에서 공교육을 이끄는 학교들의 자료구입비 집행이 적게 나타난 점은 눈에 띕니다.

■ '학교운영비 3% 이상' 필수 편성하겠다더니...조사 결과는 공표 안 해

그렇다면 1년에 천만 원, 학생당 2만 원 정도 자료구입비를 쓰는 이 상황은 적합한 수준일까요? 기준점을 찾기 위해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도서관 진흥 5개년 계획을 살펴봤습니다.

교육부는 지난 2019년 제3차 학교도서관진흥기본계획(2019~2023)을 발표하며 자료구입비를 학교 기본운영비의 3% 이상 '필수 편성'하라고 명시합니다.


기존의 제2차 학교도서관진흥기본계획(2014~2018)은 학교 기본운영비의 3% 이상 편성을 '권장'했었는데요. '권장'에서 '필수 편성'으로 강제성을 더했습니다.

학교 기본운영비는 인건비를 제외하고 학교의 학급 수와 학생 수 등에 따라 책정한 기본경비를 뜻합니다. 위 지침은 학교운영비의 최소 3% 이상이라도 책이나 시청각 자료 등을 구비하는 데 쓰라고 못 박은 겁니다.

교육부는 매년 4월 '학교도서관 현황 조사'를 실시해 실태를 파악한다고 했지만, 조사 결과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 차원의 정책과제로 5개년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는 알리지 않고 있는 겁니다.

■ 17개 시도교육청 정보공개 청구해 봤더니...필수 편성 안 지킨 곳 '절반'

이에 KBS는 17개 시도교육청에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해, 조사 결과를 취합해 분석했습니다. 위 지침대로라면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필수' 편성하라고 명시한 만큼, 전체 100% 학교가 지켜야 하는 건데요. 하지만 안 지킨 곳들이 절반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전국 초, 중, 고 만여 곳 가운데 '3% 이상 필수 편성'을 지킨 학교는 54%였고, 지키지 않은 곳이 46%나 됐습니다.


3차 계획이 처음 적용된 2019년은 지킨 곳과 안 지킨 곳이 거의 50% 대 50%이었습니다. 준수율은 3차 계획이 적용되기 전인 2018년보다 고작 1.1% 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3차 계획은 2019년부터 적용하는 건 맞는데, 일부 학교들은 이미 2018년 말에 예산을 편성해서 이를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 이듬해인 2020년에도 준수율은 크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2019년보다 3.7% 포인트 느는 데 그쳤습니다. 말로만 '필수 편성'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 '3% 이상 필수 편성' 초> 중> 고...고등학교는 60% 안 지켜

초·중·고등학교별로 나눠 보면, 고등학교로 갈수록 안 지키는 학교들이 많았습니다. 지난해 전국 고등학교 2,277곳 가운데 '3% 이상 필수 편성'을 지킨 학교는 40% 정도 됐고, 안 지키는 학교는 60%에 달했습니다.


고등학교는 지킨 곳과 안 지킨 곳 비율이 4대 6, 중학교는 5대 5, 초등학교는 6대 4 정도로 나타났습니다. 앞서 살펴봤듯 학생 1명당 연간 자료구입비 역시 고등학교로 갈수록 낮아졌는데,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 서울 13% vs 대구 95% '들쑥날쑥'...학교운영비 책정 방식 다른 경우도

시도별 편차는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장 준수율이 높았던 곳은 대구로 95.1%를 기록했고, 가장 낮았던 곳은 서울로 13.3%에 그쳤습니다. 대구 지역 학교는 대부분 학교운영비의 3% 이상을 책 사는데 쓴데 비해, 서울 학교는 100곳 중 13곳 정도만 이를 지켰다는 뜻입니다.

상대적으로 준수율이 높았던 곳은 대구와 울산, 제주, 세종, 광주 등이었고, 그렇지 않은 곳들은 강원, 대전, 서울 등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온라인 집계 방식으로 바꾸면서 학교들이 입력을 잘못한 경우들이 있었는데, 학교마다 전화해서 허수를 잡기 어려워 허수를 제외했더니, 실제보다 준수율이 더 낮게 나왔다"고 설명합니다.

대전교육청 관계자는 "기본운영비 단가가 시도별로 차이가 나, 기본운영비가 큰 지역일수록 부담이 된다"고 언급했고, 강원교육청 관계자는 "강원 지역은 자체적으로 학교기본운영비 중 학교당 책정되는 경비인 '교당경비'의 3% 이상으로 기준을 개정했다"며 "교당경비 기준으로는 준수율이 59%"라고 말했습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시도별로 학교기본운영비 기준에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번을 계기로 학교기본운영비의 개념을 보다 명확히 해, 일선 교육청에 안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제재수단 없어"..."활성화의 핵심은 예산지원"

학교도서관 자료구입비 배정 기준은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현실적으로 학교들이 이를 지키지 않아도 제재할 수단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도서관진흥기본계획은 5개년 계획을 밝힌 계획서로, 법으로 규정된 것은 아니라 처벌조항은 없다"고 한계를 인정합니다. 다만 "3% 이상을 필수로 편성하라는 근거를 마련해 예전보다는 많이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습니다.

일선 교육청과 학교 관계자들은 학교도서관은 공간의 제약 문제가 있어 장서 수를 계속 늘리기에 한계가 있고, 제한된 예산 안에서 도서관 시설 개선 등에 필요한 운영비도 책정해야 한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변우열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문헌정보교육과 교수는 예산지원의 확대에서 답을 찾습니다. 변우열 교수는 '학교도서관 헌장에 관한 연구'에서 시도교육청별로 학생 1인당 장서 수가 격차가 심화하는 것이 예산의 편성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하고, "학교도서관 활성화의 핵심요소는 사서교사의 배치와 예산지원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학교도서관 활성화의 또 다른 한 축인 사서 부족의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데이터 수집·분석: 윤지희, 이지연
인터랙티브 개발: 김명윤, 공민진
데이터 시각화: 권세라,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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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책의 날]⑥ 책 살 돈 아끼는 학교…‘3% 이상 필수’ 명문화해도 절반 안 지켜
    • 입력 2021-04-26 09:25:47
    • 수정2021-05-04 14:5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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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사는 데 얼마 썼나?...6,100만 원 vs 0원 '편차 극심'

학생 3백 명이 채 안 되는 대구의 한 고등학교, 도서관의 책과 시청각 자료를 사는 데 지난해 6,100만 원을 썼습니다. 전국 학교 중 자료를 구입하는 데 가장 많은 예산을 쓴 곳입니다. 이미 갖고 있는 장서 수가 4만 7천 권이 넘는데도, 책을 늘리는 데 가장 열심이었습니다.


※ KBS가 제작한 공공·학교도서관 인터랙티브 지도. 학교별 장서 수, 예산 등의 각종 도서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https://news.kbs.co.kr/dj/2021-04-lib/index.html
(일부 포털에서는 인터랙티브 지도 연결이 안 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https://news.kbs.co.kr/dj/2021-04-lib/index.html 링크 주소를 주소창에 입력하면 됩니다.)

반면 부산의 또 다른 고등학교는 학생이 6백 명이 넘지만, 지난해 책 등을 사는데 전혀 돈을 쓰지 않았습니다. 학교도서관 예산으로 배정된 돈이 아예 없어 책도 살 수 없었습니다. 6,100만 원 대 0원, 차이가 크게 나타났는데요. 학생 수가 두 배 이상 많은 학교가 오히려 책 사는 데는 소홀했습니다.

대한민국 도서관 실태를 점검하는 연속 시리즈, 이번엔 학교도서관이 책 사는 데 쓰는 예산을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KBS는 세계 책의 날(4.23)을 맞아 공공도서관 천여 곳의 실태를 살펴본 데 이어, 전국의 초·중·고 학교도서관 만여 곳도 전수 분석했습니다. 교육통계서비스 ‘2020년 유초중등 교육기본통계조사’에 참여한 11,744개 초·중·고교 가운데, 학생이 없는 학교를 제외하고 11,734곳의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 0원인 학교도 47곳이나..."의지도 없는 곳 있어"

학교도서관에서 e-book까지 포함한 도서와 시청각 자료 등 비도서를 사는 데 쓰는 예산을 '자료구입비'라고 부릅니다. 2020년 4월 1일 기준, 전체 학교 만여 곳의 자료구입비는 평균 954만 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초등학교는 평균 951만 원, 중학교는 884만 원, 고등학교 1,053만 원으로 천만 원 안팎이었는데요. 자료 구입하는데 한 푼도 안 쓴 학교들이 있는가 하면 최대 수천만 원을 쓴 곳들도 있어 대조적이었습니다.

자료구입비가 0원인 학교들은 전체 47곳(초 28개교, 중 13개교, 고 6개교)이나 됐습니다. 초등학교들은 대부분 시골에 있는 소규모 학교인 데 비해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그렇지 않은 상황임에도 책을 구입하지 않았던 곳들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는 5,600만 원, 중학교는 3,000만 원, 고등학교는 위에서 언급한 6,100만 원을 쓴 사례도 있었는데요. 학교들의 예산 형편과 의지에 따라 큰 차이가 났습니다.

■ 고교가 초·중학교보다 책 구입 소홀... "1년에 학생당 책 한 권 살 정도"

지난해 전국 학교의 연간 자료구입비를 학생 1명당 얼마나 배정됐는지 산출해봤더니 2만 1,054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학교급별로 보면, 초등학교가 2만 2,077원으로 상대적으로 많았고 이어 중학교 2만 1,488원, 고등학교 1만 8,563원 순이었습니다. 지난해 도서 1권 평균 가격은 1만 6,420원으로 집계됐는데요. 고등학교 평균값인 1만 8천 원 정도로는, 한 해에 학생당 책 1권 정도 사는 수준입니다.

■ '학생 1명당 자료구입비' 시도별 2배까지 차이...강남·서초도 하위권

지역별 편차도 많이 났습니다. 17개 시도별로 살펴보니, 학생 1명당 자료구입비가 가장 많은 곳은 전남으로, 3만 325원이었습니다. 이어 경남 (2만 6,808원), 경북 (2만 4,751원) , 충북 (2만 4,317원) 등의 순이었습니다. 가장 최하위는 대전 1만 5,330원으로, 3만 원이 넘은 전남에 비해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서울은 1만 6,791원으로 하위권이었습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229개 기초자치단체 기준으로도 나눠봤는데요. 기본적으로 시도별 경향과 비슷했는데, 최하위 시군구를 살펴보니 특이한 점이 발견됐습니다.


학생 1명당 자료구입비를 적게 쓴 하위 10개 시군구 가운데, 상대적으로 예산이 많은 서울 강남 3구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가장 낮은 곳은 대전 서구 (1만 2,596원)였고, 이어 서울 강남구, 서초구, 양천구 등이 엇비슷한 수준으로 낮았습니다. 서울 송파구와 대구 수성구까지, 교육열이 높은 지역으로 알려진 곳들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이들 지역의 학생 수가 많은 영향이 반영된 점도 있겠지만, 사교육이 활성화된 지역에서 공교육을 이끄는 학교들의 자료구입비 집행이 적게 나타난 점은 눈에 띕니다.

■ '학교운영비 3% 이상' 필수 편성하겠다더니...조사 결과는 공표 안 해

그렇다면 1년에 천만 원, 학생당 2만 원 정도 자료구입비를 쓰는 이 상황은 적합한 수준일까요? 기준점을 찾기 위해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도서관 진흥 5개년 계획을 살펴봤습니다.

교육부는 지난 2019년 제3차 학교도서관진흥기본계획(2019~2023)을 발표하며 자료구입비를 학교 기본운영비의 3% 이상 '필수 편성'하라고 명시합니다.


기존의 제2차 학교도서관진흥기본계획(2014~2018)은 학교 기본운영비의 3% 이상 편성을 '권장'했었는데요. '권장'에서 '필수 편성'으로 강제성을 더했습니다.

학교 기본운영비는 인건비를 제외하고 학교의 학급 수와 학생 수 등에 따라 책정한 기본경비를 뜻합니다. 위 지침은 학교운영비의 최소 3% 이상이라도 책이나 시청각 자료 등을 구비하는 데 쓰라고 못 박은 겁니다.

교육부는 매년 4월 '학교도서관 현황 조사'를 실시해 실태를 파악한다고 했지만, 조사 결과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 차원의 정책과제로 5개년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는 알리지 않고 있는 겁니다.

■ 17개 시도교육청 정보공개 청구해 봤더니...필수 편성 안 지킨 곳 '절반'

이에 KBS는 17개 시도교육청에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해, 조사 결과를 취합해 분석했습니다. 위 지침대로라면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필수' 편성하라고 명시한 만큼, 전체 100% 학교가 지켜야 하는 건데요. 하지만 안 지킨 곳들이 절반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전국 초, 중, 고 만여 곳 가운데 '3% 이상 필수 편성'을 지킨 학교는 54%였고, 지키지 않은 곳이 46%나 됐습니다.


3차 계획이 처음 적용된 2019년은 지킨 곳과 안 지킨 곳이 거의 50% 대 50%이었습니다. 준수율은 3차 계획이 적용되기 전인 2018년보다 고작 1.1% 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3차 계획은 2019년부터 적용하는 건 맞는데, 일부 학교들은 이미 2018년 말에 예산을 편성해서 이를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 이듬해인 2020년에도 준수율은 크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2019년보다 3.7% 포인트 느는 데 그쳤습니다. 말로만 '필수 편성'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 '3% 이상 필수 편성' 초> 중> 고...고등학교는 60% 안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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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는 지킨 곳과 안 지킨 곳 비율이 4대 6, 중학교는 5대 5, 초등학교는 6대 4 정도로 나타났습니다. 앞서 살펴봤듯 학생 1명당 연간 자료구입비 역시 고등학교로 갈수록 낮아졌는데,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 서울 13% vs 대구 95% '들쑥날쑥'...학교운영비 책정 방식 다른 경우도

시도별 편차는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장 준수율이 높았던 곳은 대구로 95.1%를 기록했고, 가장 낮았던 곳은 서울로 13.3%에 그쳤습니다. 대구 지역 학교는 대부분 학교운영비의 3% 이상을 책 사는데 쓴데 비해, 서울 학교는 100곳 중 13곳 정도만 이를 지켰다는 뜻입니다.

상대적으로 준수율이 높았던 곳은 대구와 울산, 제주, 세종, 광주 등이었고, 그렇지 않은 곳들은 강원, 대전, 서울 등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온라인 집계 방식으로 바꾸면서 학교들이 입력을 잘못한 경우들이 있었는데, 학교마다 전화해서 허수를 잡기 어려워 허수를 제외했더니, 실제보다 준수율이 더 낮게 나왔다"고 설명합니다.

대전교육청 관계자는 "기본운영비 단가가 시도별로 차이가 나, 기본운영비가 큰 지역일수록 부담이 된다"고 언급했고, 강원교육청 관계자는 "강원 지역은 자체적으로 학교기본운영비 중 학교당 책정되는 경비인 '교당경비'의 3% 이상으로 기준을 개정했다"며 "교당경비 기준으로는 준수율이 59%"라고 말했습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시도별로 학교기본운영비 기준에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번을 계기로 학교기본운영비의 개념을 보다 명확히 해, 일선 교육청에 안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제재수단 없어"..."활성화의 핵심은 예산지원"

학교도서관 자료구입비 배정 기준은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현실적으로 학교들이 이를 지키지 않아도 제재할 수단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도서관진흥기본계획은 5개년 계획을 밝힌 계획서로, 법으로 규정된 것은 아니라 처벌조항은 없다"고 한계를 인정합니다. 다만 "3% 이상을 필수로 편성하라는 근거를 마련해 예전보다는 많이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습니다.

일선 교육청과 학교 관계자들은 학교도서관은 공간의 제약 문제가 있어 장서 수를 계속 늘리기에 한계가 있고, 제한된 예산 안에서 도서관 시설 개선 등에 필요한 운영비도 책정해야 한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변우열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문헌정보교육과 교수는 예산지원의 확대에서 답을 찾습니다. 변우열 교수는 '학교도서관 헌장에 관한 연구'에서 시도교육청별로 학생 1인당 장서 수가 격차가 심화하는 것이 예산의 편성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하고, "학교도서관 활성화의 핵심요소는 사서교사의 배치와 예산지원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학교도서관 활성화의 또 다른 한 축인 사서 부족의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데이터 수집·분석: 윤지희, 이지연
인터랙티브 개발: 김명윤, 공민진
데이터 시각화: 권세라,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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