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귀신 영화엔 ‘귀신’이 없다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5.06.26 (07:00) 수정 2025.06.26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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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에 중국 영화 '홍가의'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신 중국' 수립 직전, 낡은 것과 새것이 뒤섞이던 혼란의 민국시대(民國時代). 대대로 조용한 마을에 뿌리내리고 살던 유씨 가문의 가주가 아들을 얻기 위해 스물도 채 되지 않은 소녀를 새 신부로 맞이합니다. 붉은 혼례복 '홍가의(紅嫁衣)'를 입고 신방에 도착한 어린 새 신부. 하지만 그날 밤, 가주는 신방 대들보에 목이 매달린 시신으로 발견되고, 신부는 온 데 간 데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시간이 흐르고 새로이 유씨 집안을 물려받은 새 가주의 가족에게 기이한 일이 일어납니다. 귀신에 들린 마님은 무당을 불러봐도 천주교 신부를 불러봐도 좀처럼 차도가 없고, 죽은 사람의 부장품인 흉측한 인형은 우물에 버려도 쇠사슬에 묶어놔도 밤이면 다시 가족들을 찾아갑니다. 무엇보다,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는 붉은 혼례복을 입은 귀신은 사라진 새 신부와 전 가주의 죽음에 얽힌 기이한 사연을 떠올리게 하며 온 집안을 공포로 물들입니다.

가주는 마을 밖에서 용하다는 퇴마사를 수소문해 부르지만 이들 역시 파묘까지 하면서도 좀처럼 퇴마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지금은 민국시대인데 무슨 귀신이냐' '귀신 말고 과학을 믿으라'던 경관마저 붉은 혼례복의 영혼을 목격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공포감이 극에 달할 때, 마침내 유씨 집안을 둘러싼 비밀이 조금씩 베일을 벗기 시작합니다.


붉은색 전통 혼례복을 입은 새 신부가 사라진 뒤, 신방에서 새 신부의 귀신이 목격되기 시작한다. (사진 출처 : 영화 <홍가의> 예고편 캡쳐)붉은색 전통 혼례복을 입은 새 신부가 사라진 뒤, 신방에서 새 신부의 귀신이 목격되기 시작한다. (사진 출처 : 영화 <홍가의> 예고편 캡쳐)

■'귀신 말고 과학을 믿어라'…붉은 혼례복 입은 귀신의 '반전'

중국에서 상영 중인 공포영화 <홍가의(紅嫁衣)>(2025년 5월 개봉, 감독 : 쉬쥔·류밍량)의 줄거리를 짧게 풀어봤습니다.

이 모든 기이한 사건의 중심에는 새 신부가 실종됐던 혼례 날이 있습니다. 고요한 밤, 불꺼진 오래된 신방에서 둔탁한 전축 소리가 시작될 때쯤 나타나는 귀신은 옛 전통 혼례 예법 그대로 붉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다.

얼굴을 가려놓은 연출이 낳은 의외의 효과일까요? 영화 초반부 음산한 배경음악과 어우러진 붉은 혼례복을 보고 깜짝깜짝 놀라던 관객은 점점 건장한 남성들을 잡아끌어 물에 빠뜨려 죽이는 여성 귀신의 역동적인 팔다리 움직임에 감탄하며 혼례복 아래 가려진 '코어 근육'이 얼마나 단단할지 상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결말에 반전이 있음을 짐작합니다. 귀신이 알고 보니 사람이었다는 반전 말입니다.

굳이 영화를 찾아보시지는 않을 것 같아 스포일러를 하자면, 붉은 혼례복을 입은 귀신은 사실 사람이었습니다. 유씨 집안 사람들을 죽이고 가문을 빼앗은 원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찾아온 유씨 집안의 친딸이 붉은 혼례복을 입고 귀신인 척 일을 꾸민 겁니다. 밤마다 가족들 앞에 나타났던 인형도 역시 사람이었습니다. 붉은 혼례복 귀신의 동생으로, 마찬가지로 유씨 집안의 딸인데 복수를 위해 인형인 척 연기를 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급격한 반전에 어질어질하신가요? 영화관에서 본 저는, '내가 지금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 잠시 스스로를 의심했었습니다.

"지금은 민국시대인데 귀신이 어디 있나", "귀신 말고 과학을 믿어라"
"마음속에 귀신이 있으면 귀신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합니다. 모든 일이 다 사람의 소행이었음에도, 유씨 집안 사람들을 죽이고 어린 새 신부마저 우물 속에 뛰어들게 만든 죄의식 때문에 귀신이 벌을 내리는 것이라 생각한 사람의 마음이 귀신을 만들어냈다는 게 영화의 메시지입니다. 귀신은 사람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존재일 뿐이며, 미신이 아닌 과학을 믿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소녀를 우물로 끌어당기는 귀신의 손(좌). 손가락 힘이 상당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정체가 사람이었다. 죽은 사람의 부장품으로 쓰는 인형(우)은 치워도 치워도 밤이면 다시 나타난다는 설정이어서 왜 불에 태우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역시 사람이었다. (사진 출처 : 영화 <홍가의> 예고편 캡쳐)소녀를 우물로 끌어당기는 귀신의 손(좌). 손가락 힘이 상당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정체가 사람이었다. 죽은 사람의 부장품으로 쓰는 인형(우)은 치워도 치워도 밤이면 다시 나타난다는 설정이어서 왜 불에 태우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역시 사람이었다. (사진 출처 : 영화 <홍가의> 예고편 캡쳐)

■귀신 영화에 왜 귀신이 없을까?…그들만의 속사정

공포영화는 귀신이 있어야 제맛입니다. 사실 귀신 보러 가는 겁니다. 사람이 있는 곳엔 언제나 괴담과 귀신 이야기, 무속이 있기 마련인데 중국이라고 그 오랜 역사 속에서 귀신이 생겨나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귀신 영화를 찾는 수요도 당연히 존재합니다. 그런데도 귀신을 만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 바로 정치적·역사적 배경에 있습니다.

일단 중국 공산당의 사상 자체가 '유물론'에 기반합니다. 귀신, 무속 등 이른바 봉건 미신은 실체 없이 사람을 현혹해 계몽을 가로막는 존재일 뿐입니다. 때문에 문화대혁명 시기 무속인과 무속 신앙, 민가에서 전승되어 오던 의례들까지 모두 타파 대상이 됐습니다.

물론 전통 기복신앙이나 의례까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가의 검열을 받는 영화산업에서 공식적으로 귀신의 존재를 긍정하기는 힘들게 됐습니다. 현행법으로도 이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나라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반영해 강시가 태어났듯, 귀신과 괴담이 정치적 사회적 불안을 담아내고 키우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규제의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영화 산업 촉진법>

제16조 : 영화는 이하의 내용을 포함해서는 안 된다
...
(4) 국가의 종교 정책을 선동하거나 파괴하고, 사이비 종교와 미신을 퍼뜨리는 내용
...

이제 <홍가의>의 반전 결말이 이해되실 겁니다. 공포영화를 만들어 심의를 통과하고 영화관에서 작품을 상영하려면 귀신의 존재를 부정해야 합니다. 결국 대부분의 감독들은 초자연적이고 기이한 현상을 연출해 공포 심리를 자극해 놓고 결말부에 가서 사실은 사람이 꾸민 일이었다거나, 등장인물의 정신질환 내지는 환각이었다는 식으로 마무리를 짓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이런 귀신 없는 귀신 영화, 재밌을까요? <홍가의>에서 코어 근육까지 궁금하게 만드는 역동적인 움직임 때문에 관객에게 귀신의 정체가 드러났듯이 사실 귀신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말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출이나 이야기 전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가 아래의 그래픽에서 드러납니다.


역대 공포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작품마저도 누적 박스오피스가 같은 해 1위 작품의 21%에 그쳤고, 2위와 3위는 5%에도 채 못 미쳤습니다. 공포 영화에서 귀신을 빼 버리니 재미가 없어지고, 흥행이 어렵다 보니 제작을 꺼리게 됩니다. 결국 흥행 실패를 감수하고 소수의 관객만으로도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걸 목표로 만드는 저예산 영화들만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홍가의〉에서 무속인이 귀신을 몰아내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 우리로 치면 굿인 셈인데, 현실에서 공개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사진 출처 : 영화 <홍가의> 예고편 캡쳐)〈홍가의〉에서 무속인이 귀신을 몰아내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 우리로 치면 굿인 셈인데, 현실에서 공개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사진 출처 : 영화 <홍가의> 예고편 캡쳐)

■괴담도, 무속도 퇴치하는 중국…그 많던 귀신은 다 어디에?

사실 요즘도 귀신은 생겨나고 있습니다. 바로 퇴치당할 뿐입니다. 지난해 한 누리꾼이 하얼빈시의 아파트에서 괴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렸다가 당국으로부터 행정 처벌을 받았습니다. 허위 영상을 게시해 봉건 미신 사상을 전파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비슷한 시기, 장저우의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며 가짜 인공지능 영상을 만들어 올린 누리꾼도 역시 행정 처벌을 받았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체제 불안과 사회 혼란을 조장할 가능성이 손톱만큼이라도 있다면 기어코 뿌리를 뽑아내는 국가라지만, 애초부터 믿거나 말거나인 도시 괴담마저 단속과 처벌의 대상이 된다니 조금 팍팍하게 느껴집니다.

무속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인터넷 라이브 방송을 켜 귀신을 쫓고 점을 봐주겠다며 홍보한 자칭 무속인들이 역시 봉건 미신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단속 대상이 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봉건 미신 사상이라는 말에 포함된 모든 비과학적 요소를 당국이 직접 단속하는 이상 앞으로도 중국에서 관객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공포영화를 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나긴 세월을 거치며 전승된 각종 귀신과 미신, 무속이 새로운 문화 콘텐츠 요소로 깨어나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것이 유독 안타깝게 느껴지는 건 올해 베이징이 참 덥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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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귀신 영화엔 ‘귀신’이 없다 [특파원 리포트]
    • 입력 2025-06-26 07:00:12
    • 수정2025-06-26 08: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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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에 중국 영화 '홍가의'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신 중국' 수립 직전, 낡은 것과 새것이 뒤섞이던 혼란의 민국시대(民國時代). 대대로 조용한 마을에 뿌리내리고 살던 유씨 가문의 가주가 아들을 얻기 위해 스물도 채 되지 않은 소녀를 새 신부로 맞이합니다. 붉은 혼례복 '홍가의(紅嫁衣)'를 입고 신방에 도착한 어린 새 신부. 하지만 그날 밤, 가주는 신방 대들보에 목이 매달린 시신으로 발견되고, 신부는 온 데 간 데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시간이 흐르고 새로이 유씨 집안을 물려받은 새 가주의 가족에게 기이한 일이 일어납니다. 귀신에 들린 마님은 무당을 불러봐도 천주교 신부를 불러봐도 좀처럼 차도가 없고, 죽은 사람의 부장품인 흉측한 인형은 우물에 버려도 쇠사슬에 묶어놔도 밤이면 다시 가족들을 찾아갑니다. 무엇보다,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는 붉은 혼례복을 입은 귀신은 사라진 새 신부와 전 가주의 죽음에 얽힌 기이한 사연을 떠올리게 하며 온 집안을 공포로 물들입니다.

가주는 마을 밖에서 용하다는 퇴마사를 수소문해 부르지만 이들 역시 파묘까지 하면서도 좀처럼 퇴마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지금은 민국시대인데 무슨 귀신이냐' '귀신 말고 과학을 믿으라'던 경관마저 붉은 혼례복의 영혼을 목격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공포감이 극에 달할 때, 마침내 유씨 집안을 둘러싼 비밀이 조금씩 베일을 벗기 시작합니다.


붉은색 전통 혼례복을 입은 새 신부가 사라진 뒤, 신방에서 새 신부의 귀신이 목격되기 시작한다. (사진 출처 : 영화 <홍가의> 예고편 캡쳐)
■'귀신 말고 과학을 믿어라'…붉은 혼례복 입은 귀신의 '반전'

중국에서 상영 중인 공포영화 <홍가의(紅嫁衣)>(2025년 5월 개봉, 감독 : 쉬쥔·류밍량)의 줄거리를 짧게 풀어봤습니다.

이 모든 기이한 사건의 중심에는 새 신부가 실종됐던 혼례 날이 있습니다. 고요한 밤, 불꺼진 오래된 신방에서 둔탁한 전축 소리가 시작될 때쯤 나타나는 귀신은 옛 전통 혼례 예법 그대로 붉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다.

얼굴을 가려놓은 연출이 낳은 의외의 효과일까요? 영화 초반부 음산한 배경음악과 어우러진 붉은 혼례복을 보고 깜짝깜짝 놀라던 관객은 점점 건장한 남성들을 잡아끌어 물에 빠뜨려 죽이는 여성 귀신의 역동적인 팔다리 움직임에 감탄하며 혼례복 아래 가려진 '코어 근육'이 얼마나 단단할지 상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결말에 반전이 있음을 짐작합니다. 귀신이 알고 보니 사람이었다는 반전 말입니다.

굳이 영화를 찾아보시지는 않을 것 같아 스포일러를 하자면, 붉은 혼례복을 입은 귀신은 사실 사람이었습니다. 유씨 집안 사람들을 죽이고 가문을 빼앗은 원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찾아온 유씨 집안의 친딸이 붉은 혼례복을 입고 귀신인 척 일을 꾸민 겁니다. 밤마다 가족들 앞에 나타났던 인형도 역시 사람이었습니다. 붉은 혼례복 귀신의 동생으로, 마찬가지로 유씨 집안의 딸인데 복수를 위해 인형인 척 연기를 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급격한 반전에 어질어질하신가요? 영화관에서 본 저는, '내가 지금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 잠시 스스로를 의심했었습니다.

"지금은 민국시대인데 귀신이 어디 있나", "귀신 말고 과학을 믿어라"
"마음속에 귀신이 있으면 귀신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합니다. 모든 일이 다 사람의 소행이었음에도, 유씨 집안 사람들을 죽이고 어린 새 신부마저 우물 속에 뛰어들게 만든 죄의식 때문에 귀신이 벌을 내리는 것이라 생각한 사람의 마음이 귀신을 만들어냈다는 게 영화의 메시지입니다. 귀신은 사람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존재일 뿐이며, 미신이 아닌 과학을 믿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소녀를 우물로 끌어당기는 귀신의 손(좌). 손가락 힘이 상당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정체가 사람이었다. 죽은 사람의 부장품으로 쓰는 인형(우)은 치워도 치워도 밤이면 다시 나타난다는 설정이어서 왜 불에 태우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역시 사람이었다. (사진 출처 : 영화 <홍가의> 예고편 캡쳐)
■귀신 영화에 왜 귀신이 없을까?…그들만의 속사정

공포영화는 귀신이 있어야 제맛입니다. 사실 귀신 보러 가는 겁니다. 사람이 있는 곳엔 언제나 괴담과 귀신 이야기, 무속이 있기 마련인데 중국이라고 그 오랜 역사 속에서 귀신이 생겨나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귀신 영화를 찾는 수요도 당연히 존재합니다. 그런데도 귀신을 만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 바로 정치적·역사적 배경에 있습니다.

일단 중국 공산당의 사상 자체가 '유물론'에 기반합니다. 귀신, 무속 등 이른바 봉건 미신은 실체 없이 사람을 현혹해 계몽을 가로막는 존재일 뿐입니다. 때문에 문화대혁명 시기 무속인과 무속 신앙, 민가에서 전승되어 오던 의례들까지 모두 타파 대상이 됐습니다.

물론 전통 기복신앙이나 의례까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가의 검열을 받는 영화산업에서 공식적으로 귀신의 존재를 긍정하기는 힘들게 됐습니다. 현행법으로도 이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나라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반영해 강시가 태어났듯, 귀신과 괴담이 정치적 사회적 불안을 담아내고 키우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규제의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영화 산업 촉진법>

제16조 : 영화는 이하의 내용을 포함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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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국가의 종교 정책을 선동하거나 파괴하고, 사이비 종교와 미신을 퍼뜨리는 내용
...

이제 <홍가의>의 반전 결말이 이해되실 겁니다. 공포영화를 만들어 심의를 통과하고 영화관에서 작품을 상영하려면 귀신의 존재를 부정해야 합니다. 결국 대부분의 감독들은 초자연적이고 기이한 현상을 연출해 공포 심리를 자극해 놓고 결말부에 가서 사실은 사람이 꾸민 일이었다거나, 등장인물의 정신질환 내지는 환각이었다는 식으로 마무리를 짓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이런 귀신 없는 귀신 영화, 재밌을까요? <홍가의>에서 코어 근육까지 궁금하게 만드는 역동적인 움직임 때문에 관객에게 귀신의 정체가 드러났듯이 사실 귀신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말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출이나 이야기 전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가 아래의 그래픽에서 드러납니다.


역대 공포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작품마저도 누적 박스오피스가 같은 해 1위 작품의 21%에 그쳤고, 2위와 3위는 5%에도 채 못 미쳤습니다. 공포 영화에서 귀신을 빼 버리니 재미가 없어지고, 흥행이 어렵다 보니 제작을 꺼리게 됩니다. 결국 흥행 실패를 감수하고 소수의 관객만으로도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걸 목표로 만드는 저예산 영화들만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홍가의〉에서 무속인이 귀신을 몰아내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 우리로 치면 굿인 셈인데, 현실에서 공개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사진 출처 : 영화 <홍가의> 예고편 캡쳐)
■괴담도, 무속도 퇴치하는 중국…그 많던 귀신은 다 어디에?

사실 요즘도 귀신은 생겨나고 있습니다. 바로 퇴치당할 뿐입니다. 지난해 한 누리꾼이 하얼빈시의 아파트에서 괴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렸다가 당국으로부터 행정 처벌을 받았습니다. 허위 영상을 게시해 봉건 미신 사상을 전파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비슷한 시기, 장저우의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며 가짜 인공지능 영상을 만들어 올린 누리꾼도 역시 행정 처벌을 받았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체제 불안과 사회 혼란을 조장할 가능성이 손톱만큼이라도 있다면 기어코 뿌리를 뽑아내는 국가라지만, 애초부터 믿거나 말거나인 도시 괴담마저 단속과 처벌의 대상이 된다니 조금 팍팍하게 느껴집니다.

무속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인터넷 라이브 방송을 켜 귀신을 쫓고 점을 봐주겠다며 홍보한 자칭 무속인들이 역시 봉건 미신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단속 대상이 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봉건 미신 사상이라는 말에 포함된 모든 비과학적 요소를 당국이 직접 단속하는 이상 앞으로도 중국에서 관객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공포영화를 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나긴 세월을 거치며 전승된 각종 귀신과 미신, 무속이 새로운 문화 콘텐츠 요소로 깨어나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것이 유독 안타깝게 느껴지는 건 올해 베이징이 참 덥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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