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청년인턴의 죽음…“조사 자료 비공개” 소송, 1심 결과는?

입력 2025.06.2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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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충북 청주 식약처에서 청년인턴 32살 박모 씨가 투신해 숨졌습니다. 6개월 인턴 기간 만료를 2주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딸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했던 유족은 식약처의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자체 조사 자료'를 요청했지만, 식약처는 "민감한 개인 정보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유족은 법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1심 법원은 유족이 식약처장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개인 정보를 제외한 나머지 자료를 공개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습니다.

숨진 박 씨의 아버지가 식약처 앞에서 발언하는 모습.숨진 박 씨의 아버지가 식약처 앞에서 발언하는 모습.

■ "자체 조사 정보 거부 위법"… 유족, 식약처 상대 소송

박 씨는 식약처 재직 당시, 가족들에게 괴롭힘 피해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식약처에서 일하면서 6차례 내부 상담센터에서 심리 상담을 받기도 했습니다. 유족 측은 박 씨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식약처 자체 조사 결과, 상사 A 씨는 박 씨에게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욕설을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다만 식약처는 "A 씨의 언행이 박 씨의 사망과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있는지는 밝히지 못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식약처 자체 인사위원회에 회부된 A 씨는 가장 낮은 수위의 징계인 '견책' 처분을 받았습니다.

유족 측은 피해 사실을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식약처에 박 씨의 '심리 상담' 기록과 '직장 내 괴롭힘 자체 조사' 관련 정보 공개를 요청했습니다. 두 번의 정보 공개 청구와 이의 신청을 거쳐, 심리 상담 자료만 겨우 받아 산업 재해를 신청했습니다.

식약처는 그러나 내부 조사 자료는 끝내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관련 감사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고, 개인 정보 등 민감한 내용이 포함됐다"는 이유였습니다.

박 씨의 아버지는 "딸이 죽기 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알고 싶었지만, 식약처는 모든 정보공개를 거부했다"며 "노무사를 통해 '20가지 진정 사항 가운데 2건만 괴롭힘으로 인정됐다'는 두 쪽짜리 요약 보고서만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정보공개 청구를 거부당한 데 대한 이의 신청마저 기각당하자, 유족 측은 거부 처분이 위법하다면서 식약처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식약처 유족의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 소송에 대한 서울행정법원의 판결문.식약처 유족의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 소송에 대한 서울행정법원의 판결문.

■ 법원 "유족 권리 구제 위해 정보 공개해야"

법원은 결국 유족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 제14부(부장판사 이상덕)는 지난 19일, "일부 개인 정보를 제외한 나머지 정보를 모두 공개하라" 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유족의 알 권리·권리구제 필요성을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 유족이 괴롭힘의 실체를 파악하고 향후 손해배상 청구 등 권리구제를 위해 관련 정보가 필요하다”며 “대부분의 정보는 공개되는 것이 오히려 공익과 유족 보호에 부합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감사·조사 업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식약처의 주장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감사 업무가 위축될 수 있다는 막연한 추상적 우려보다는, 피해 유족의 알 권리와 신뢰 회복이 더 중요하다”며 참고인 진술서와 내부 보고서 등 대부분의 자료를 공개 대상으로 인정했습니다. 다만 진술자의 이름, 연락처 등 개인 정보는 제외됐습니다.

또 "형사 사건 수사 기록도 수사 종료 뒤, 피해자 측이 수사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면서 "이미 감사가 종료된 상태에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유족의 권리구제를 돕고 불필요한 오해, 불신을 방지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아직 관련 내용을 검토 중"이라면서 "항소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유족들은 딸이 숨진 지 9개월 만에야 마침내 진실에 다가설 실마리를 얻게 됐습니다. 박 씨의 아버지는 "국가 기관에 아이를 맡겼다가 벌어진 일인데도 유족이 조사 내용조차 알 수 없다는 건 너무나 가혹했다"면서 "뒤늦게라도 이런 판결이 나와서 다행"이라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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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6-24 16:4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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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충북 청주 식약처에서 청년인턴 32살 박모 씨가 투신해 숨졌습니다. 6개월 인턴 기간 만료를 2주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딸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했던 유족은 식약처의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자체 조사 자료'를 요청했지만, 식약처는 "민감한 개인 정보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유족은 법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1심 법원은 유족이 식약처장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개인 정보를 제외한 나머지 자료를 공개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습니다.

숨진 박 씨의 아버지가 식약처 앞에서 발언하는 모습.
■ "자체 조사 정보 거부 위법"… 유족, 식약처 상대 소송

박 씨는 식약처 재직 당시, 가족들에게 괴롭힘 피해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식약처에서 일하면서 6차례 내부 상담센터에서 심리 상담을 받기도 했습니다. 유족 측은 박 씨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식약처 자체 조사 결과, 상사 A 씨는 박 씨에게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욕설을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다만 식약처는 "A 씨의 언행이 박 씨의 사망과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있는지는 밝히지 못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식약처 자체 인사위원회에 회부된 A 씨는 가장 낮은 수위의 징계인 '견책' 처분을 받았습니다.

유족 측은 피해 사실을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식약처에 박 씨의 '심리 상담' 기록과 '직장 내 괴롭힘 자체 조사' 관련 정보 공개를 요청했습니다. 두 번의 정보 공개 청구와 이의 신청을 거쳐, 심리 상담 자료만 겨우 받아 산업 재해를 신청했습니다.

식약처는 그러나 내부 조사 자료는 끝내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관련 감사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고, 개인 정보 등 민감한 내용이 포함됐다"는 이유였습니다.

박 씨의 아버지는 "딸이 죽기 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알고 싶었지만, 식약처는 모든 정보공개를 거부했다"며 "노무사를 통해 '20가지 진정 사항 가운데 2건만 괴롭힘으로 인정됐다'는 두 쪽짜리 요약 보고서만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정보공개 청구를 거부당한 데 대한 이의 신청마저 기각당하자, 유족 측은 거부 처분이 위법하다면서 식약처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식약처 유족의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 소송에 대한 서울행정법원의 판결문.
■ 법원 "유족 권리 구제 위해 정보 공개해야"

법원은 결국 유족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 제14부(부장판사 이상덕)는 지난 19일, "일부 개인 정보를 제외한 나머지 정보를 모두 공개하라" 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유족의 알 권리·권리구제 필요성을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 유족이 괴롭힘의 실체를 파악하고 향후 손해배상 청구 등 권리구제를 위해 관련 정보가 필요하다”며 “대부분의 정보는 공개되는 것이 오히려 공익과 유족 보호에 부합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감사·조사 업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식약처의 주장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감사 업무가 위축될 수 있다는 막연한 추상적 우려보다는, 피해 유족의 알 권리와 신뢰 회복이 더 중요하다”며 참고인 진술서와 내부 보고서 등 대부분의 자료를 공개 대상으로 인정했습니다. 다만 진술자의 이름, 연락처 등 개인 정보는 제외됐습니다.

또 "형사 사건 수사 기록도 수사 종료 뒤, 피해자 측이 수사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면서 "이미 감사가 종료된 상태에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유족의 권리구제를 돕고 불필요한 오해, 불신을 방지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아직 관련 내용을 검토 중"이라면서 "항소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유족들은 딸이 숨진 지 9개월 만에야 마침내 진실에 다가설 실마리를 얻게 됐습니다. 박 씨의 아버지는 "국가 기관에 아이를 맡겼다가 벌어진 일인데도 유족이 조사 내용조차 알 수 없다는 건 너무나 가혹했다"면서 "뒤늦게라도 이런 판결이 나와서 다행"이라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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