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늘었다는 고향 기부…왜 우리 동네만 줄었을까?

입력 2025.06.24 (14:04) 수정 2025.06.2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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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2023년 도입된 '고향사랑기부제' . 이제 모르시는 분이 없을 겁니다. 출향민이 고향에 기부하면 재정난을 겪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기부자에게도 혜택이 많습니다. 최대 10만 원의 세액공제와 기부금의 30%에 해당하는 답례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자체별로 모금과 사업 집행 실적은 천차만별입니다. 기부금이 몇 배씩 늘어난 곳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감소한 곳도 있습니다. 애써 모금한 기부금도 잘 못 쓰는 곳도 허다합니다. ‘통장 속 잠자는 돈’이 되지 않고 지역 발전의 마중물이 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요?


대전 ‘성심당 빵’ 내세워 19억 원 모금…강원 일부 지자체, 오히려 감소

'성심당 빵'은 이제 누구나 알 만한 대전의 명물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 빵, 고향사랑기부금 모금에도 일등 공신입니다. 대전시는 2024년 한 해 고향사랑기부금 19억 원을 모금했습니다. 전년 대비 3배 이상으로 증가한 금액입니다. 인기 있는 ‘성심당 빵’과 빵 상품권을 답례품으로 전면에 내세우고, 적극적인 홍보까지 펼친 전략 덕분입니다.

전국적으로도 고향사랑기부금 모금은 크게 늘었습니다. 지난해 880억 원 가까이가 모금돼, 한해 전보다 35%, 액수로는 200억 원 이상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강원도 일부 지자체의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인구 2만 2,000명의 화천군은 지난해 1억 1,000만 원을 모금하는 데 그쳤습니다. 심지어 모금 첫해인 2023년보다 모금액은 24% 감소했습니다. 양구군 역시 고향사랑기부 모금액이 첫 해 1억 3,000만 원에서 이듬해 1억 2,000만 원으로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강원도와 18개 시군이 지난해 모금한 고향사랑기부금은 모두 69억 원입니다. 전라남도가 같은 기간 동안 187억 원, 경상북도가 103억 원을 모금한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입니다.

증가 폭도 전국 평균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일부 지자체의 모금액이 감소하면서, 강원도 전체의 모금액 증가 폭은 17억 원, 32%로 전국 평균 35%를 밑돌았습니다.

"출향인 적어서?" … "지자체 홍보·전략 부족”

강원도 지방자치단체 담당자에게 고향사랑기부제 모금이 잘 안 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여러 이유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하나같은 대답은 '출향인이 적어서' 라는 것이었습니다. 강원도는 인구 자체가 적다 보니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출향인이 적기 때문에, 강원도나 산하 시군으로 기부를 해 줄 만한 기반 자체가 약하다고 호소했습니다.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양구를 고향으로 둔 군민들도 그만큼 적을 것이고요. 생활 인구도 그만큼 적습니다. 기부금 증가를 위해서 민간 플랫폼에 가입해서 모금할 수 있도록…"
-정종우/강원 양구군 인구정책팀장

하지만, 외부에선 모금 전략 자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먼저, 고향사랑기부 인기 답례품 개발에도 새로운 관점이 필요합니다.

지난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답례품은 건수를 기준으로 제주도 감귤입니다. 그리고 '빵의 도시'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은 대전의 성심당 상품권이 2위입니다. 이어 논산 딸기, 속초 닭강정, 제주 오겹살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반면 모금액이 줄어든 강원도 화천군의 판매 상위 답례품은 지역 상품권과 잣, 제육볶음입니다. 양구군은 사과, 지역 상품권, 두유입니다. 두 시군과 마찬가지로 모금액 감소를 겪은 영월군의 상위 답례품은 지역화폐, 청국장, 혼합곡 순이었습니다.

남녀노소 좋아할 만한 유명 특산품을 답례품으로 제공할 때 모금도 잘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특산품뿐만 아니라 관광지 입장이나 체험권 등 다양한 취향을 가진 기부자들의 관심을 끌고, 지역으로 방문도 유도할 수 있는 답례품 개발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둘째로, '모금 방식'에도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고향사랑기부는 두 가지 방식으로 가능합니다. (1) 자치단체에 기부하기 (2) 특정 사업에 기부하기(지정 기부) 입니다. 처음에는 자치단체에 기부하기가 고향사랑기부제도의 시작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특정 지방자치단체만을 골라 기부금을 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기부자가 원하는 사업에 직접 돈을 보낼 수 있는 '지정 기부' 제도가 더 큰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지정 기부 사업은 말 그대로, 기부금을 어디에 쓸지 정해놓고 모금을 하는 겁니다. 기부자가 '아동, 복지, 지방 소멸, 노인, 동물' 등 다양한 주제의 사업 가운데 기부할 사업을 고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업 계획 자체가 기부자의 공감을 얻게 되는 겁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기부를 하게 되니, 모금 효과도 크고 지속성도 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특히, 이런 사업의 경우 지역적인 한계를 벗어나 모금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기부자의 입장에서도 내가 기부한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있고, 보람도 더욱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고향사랑e음에 게시된 각 지자체의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사업 현황고향사랑e음에 게시된 각 지자체의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사업 현황

이 때문에 지자체마다 지정 기부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현재 고향사랑기부제 정부 포털인 '고향사랑e음' 에는 100건에 가까운 지자체별 지정 기부 사업이 경쟁하고 있습니다. '산불 피해 복구'부터 '청소년 학교폭력 예방교육' 등 주제도 다양합니다. 전국의 지자체가 앞다퉈 지정 기부사업 아이템을 개발하고 모금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원도 내 지자체의 지정 기부 사업은 춘천시가 모금하고 있는 '취약지역 자살 및 고독사 예방' 단 한 건뿐입니다. 지자체들이 기부 사업 발굴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기부자들의 눈높이에 맞고, 지역에 꼭 필요한 지정 기부 사업을 발굴하는 것이 모금 전략에서 갈수록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개선할 점은 모금 활동의 적극성입니다.

아직도 강원도 내 지자체들은 '교차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두 지자체가 협의해서, 지자체 소속 공무원이나 주민이 상대방 도시에 고향 사랑 기부를 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기부금 품앗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죠.

하지만 이 방식은 한계가 명확합니다. 당장 기부금 실적이 눈에 띄게 오르기야 하겠지만 지역에 대해 장기적인 애정과 지원을 보내는 후원자를 만드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또 후원자들의 관심을 통해 지방 소멸을 막고자 하는 고향 사랑 기부제의 원래 취지와도 맞는지도 의문입니다.

전문가들은 고향사랑기부제도의 장기적인 발전과 정착을 위해서 기부자가 원하는 곳에 직접 기부할 수 있도록 지정 기부 사업을 더 많이 개발하고, 기부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단기간 모금을 통해 가시적으로 딱딱 들어오는 기부금을 어디에다 사용했는지 투명성을 확대하는 부분도 중요하고, 기부자한테 정확한 피드백을 해주는 이런 체계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지역 주민들과 기부자가 어떻게 스킨십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도 상당히 중요하거든요.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기부금 사용 계획을 좀 치밀하게 계획할 필요가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 신두섭/한국지방행정연구원 지방투자사업관리센터 소장

'모으기' 보다 어려운 '잘 쓰기' … 열심히 모아 '통장에서 쿨쿨'

제도가 정착할수록 중요해지는 것, 바로 기부금이 실제로 지역 발전에 잘 쓰이고 있는지입니다. 고향 사랑 기부금 제도 도입은 올해 3년 차로 접어들었지만, 강원도에는 고향 사랑 기부금 사업 자체를 아직 시작도 못 한 시군이 한두 곳이 아닙니다. 모금액 대부분은 여전히 통장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2023년과 2024년, 2년 동안 강원도와 18개 시군이 모금한 고향사랑기부금은 123억 원입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실제 기금사업으로 집행된 금액은 5억 원에 불과합니다. 모금액 대비 비율로 환산하면 4.26%입니다.


올해에도 강원도 내 지자체 가운데 기부금 사용 계획을 확정한 곳은 8곳에 그칩니다. 나머지 10개 시군과 강원도는 올해 별다른 활용 계획이 없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로 집중됩니다. '기부금이 충분치 않아서', 혹은 '적절한 아이템을 못 찾아서'입니다.

그렇다면, 사업 계획을 확정한 시군은 올해 고향 사랑 기금으로 어떤 사업을 할까요? 춘천시는 올해 처음으로 고향 사랑 기금을 이용해 '기금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자율방범대 차량을 두 대 구입하고, 시민 태권도 교육 등 '태권도 활성화 사업'에 1억 8천만 원을 사용했습니다. 모두 시민들을 위한 사업이지만, 한 편에서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기존부터 해오던 사업인 데다, 기부금이 아니더라도 시의 일반 예산으로 진행할 수 있는 사업이었기 때문입니다. 고향 사랑 기부금의 취지에 맞느냐는 지적이었습니다.

"취지상에서는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춘천시가 그 (사업) 담당 부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우리가 고향 사랑 기부금에 대한 활용도를 찾지 못했으면 이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기존에도 우리가 해 왔던 것들인데 고향 사랑 기부금을 거기다 사용한다는 것이 시민들로 하여금 고향 사랑 기부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리는 행위가 되지 않나 생각이 들고요"
- 김운기/춘천시의원

다른 시군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고향 사랑 기금 사업을 살펴보니, 자체 예산으로 해도 무방해 보이는 시설 도입이나 개선 사업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2025 고향 사랑 기금 예정 사업 (일반기부)
-춘천시: 자율방범대 차량 구입, 태권도 시민 활성화 지원
-원주시: 초등학교 교통안전시설, 치악산 둘레길 주민 편의시설
-동해시: 자립 준비 청년 지원, 어린이 체력 공원 조성
-속초시: 시니어 놀이터 조성, 보건소 내과의 초빙
-홍천군: 연사 초청 강의
-횡성군: 시골 학교 오케스트라 지원
-평창군:청소년국제교류 활동 지원
-정선군: 노인 보행보조장치 지원

고향사랑기부제는 고향을 응원하는 기부자의 선의에 기대는 제도입니다. 지방 소멸, 인구 절벽 위기에 있는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선 더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득공제와 답례품'의 가치를 뛰어넘고, 진정한 고향에 대한 응원과 지역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잘 모으고 잘 쓰기 위한 지자체의 고민과 노력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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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이 늘었다는 고향 기부…왜 우리 동네만 줄었을까?
    • 입력 2025-06-24 14:04:02
    • 수정2025-06-24 14: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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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도입된 '고향사랑기부제' . 이제 모르시는 분이 없을 겁니다. 출향민이 고향에 기부하면 재정난을 겪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기부자에게도 혜택이 많습니다. 최대 10만 원의 세액공제와 기부금의 30%에 해당하는 답례품을 받을 수 있습니다. <br />그런데 지자체별로 모금과 사업 집행 실적은 천차만별입니다. 기부금이 몇 배씩 늘어난 곳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감소한 곳도 있습니다. 애써 모금한 기부금도 잘 못 쓰는 곳도 허다합니다. ‘통장 속 잠자는 돈’이 되지 않고 지역 발전의 마중물이 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요? <br />

대전 ‘성심당 빵’ 내세워 19억 원 모금…강원 일부 지자체, 오히려 감소

'성심당 빵'은 이제 누구나 알 만한 대전의 명물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 빵, 고향사랑기부금 모금에도 일등 공신입니다. 대전시는 2024년 한 해 고향사랑기부금 19억 원을 모금했습니다. 전년 대비 3배 이상으로 증가한 금액입니다. 인기 있는 ‘성심당 빵’과 빵 상품권을 답례품으로 전면에 내세우고, 적극적인 홍보까지 펼친 전략 덕분입니다.

전국적으로도 고향사랑기부금 모금은 크게 늘었습니다. 지난해 880억 원 가까이가 모금돼, 한해 전보다 35%, 액수로는 200억 원 이상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강원도 일부 지자체의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인구 2만 2,000명의 화천군은 지난해 1억 1,000만 원을 모금하는 데 그쳤습니다. 심지어 모금 첫해인 2023년보다 모금액은 24% 감소했습니다. 양구군 역시 고향사랑기부 모금액이 첫 해 1억 3,000만 원에서 이듬해 1억 2,000만 원으로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강원도와 18개 시군이 지난해 모금한 고향사랑기부금은 모두 69억 원입니다. 전라남도가 같은 기간 동안 187억 원, 경상북도가 103억 원을 모금한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입니다.

증가 폭도 전국 평균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일부 지자체의 모금액이 감소하면서, 강원도 전체의 모금액 증가 폭은 17억 원, 32%로 전국 평균 35%를 밑돌았습니다.

"출향인 적어서?" … "지자체 홍보·전략 부족”

강원도 지방자치단체 담당자에게 고향사랑기부제 모금이 잘 안 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여러 이유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하나같은 대답은 '출향인이 적어서' 라는 것이었습니다. 강원도는 인구 자체가 적다 보니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출향인이 적기 때문에, 강원도나 산하 시군으로 기부를 해 줄 만한 기반 자체가 약하다고 호소했습니다.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양구를 고향으로 둔 군민들도 그만큼 적을 것이고요. 생활 인구도 그만큼 적습니다. 기부금 증가를 위해서 민간 플랫폼에 가입해서 모금할 수 있도록…"
-정종우/강원 양구군 인구정책팀장

하지만, 외부에선 모금 전략 자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먼저, 고향사랑기부 인기 답례품 개발에도 새로운 관점이 필요합니다.

지난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답례품은 건수를 기준으로 제주도 감귤입니다. 그리고 '빵의 도시'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은 대전의 성심당 상품권이 2위입니다. 이어 논산 딸기, 속초 닭강정, 제주 오겹살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반면 모금액이 줄어든 강원도 화천군의 판매 상위 답례품은 지역 상품권과 잣, 제육볶음입니다. 양구군은 사과, 지역 상품권, 두유입니다. 두 시군과 마찬가지로 모금액 감소를 겪은 영월군의 상위 답례품은 지역화폐, 청국장, 혼합곡 순이었습니다.

남녀노소 좋아할 만한 유명 특산품을 답례품으로 제공할 때 모금도 잘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특산품뿐만 아니라 관광지 입장이나 체험권 등 다양한 취향을 가진 기부자들의 관심을 끌고, 지역으로 방문도 유도할 수 있는 답례품 개발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둘째로, '모금 방식'에도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고향사랑기부는 두 가지 방식으로 가능합니다. (1) 자치단체에 기부하기 (2) 특정 사업에 기부하기(지정 기부) 입니다. 처음에는 자치단체에 기부하기가 고향사랑기부제도의 시작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특정 지방자치단체만을 골라 기부금을 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기부자가 원하는 사업에 직접 돈을 보낼 수 있는 '지정 기부' 제도가 더 큰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지정 기부 사업은 말 그대로, 기부금을 어디에 쓸지 정해놓고 모금을 하는 겁니다. 기부자가 '아동, 복지, 지방 소멸, 노인, 동물' 등 다양한 주제의 사업 가운데 기부할 사업을 고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업 계획 자체가 기부자의 공감을 얻게 되는 겁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기부를 하게 되니, 모금 효과도 크고 지속성도 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특히, 이런 사업의 경우 지역적인 한계를 벗어나 모금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기부자의 입장에서도 내가 기부한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있고, 보람도 더욱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고향사랑e음에 게시된 각 지자체의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사업 현황
이 때문에 지자체마다 지정 기부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현재 고향사랑기부제 정부 포털인 '고향사랑e음' 에는 100건에 가까운 지자체별 지정 기부 사업이 경쟁하고 있습니다. '산불 피해 복구'부터 '청소년 학교폭력 예방교육' 등 주제도 다양합니다. 전국의 지자체가 앞다퉈 지정 기부사업 아이템을 개발하고 모금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원도 내 지자체의 지정 기부 사업은 춘천시가 모금하고 있는 '취약지역 자살 및 고독사 예방' 단 한 건뿐입니다. 지자체들이 기부 사업 발굴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기부자들의 눈높이에 맞고, 지역에 꼭 필요한 지정 기부 사업을 발굴하는 것이 모금 전략에서 갈수록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개선할 점은 모금 활동의 적극성입니다.

아직도 강원도 내 지자체들은 '교차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두 지자체가 협의해서, 지자체 소속 공무원이나 주민이 상대방 도시에 고향 사랑 기부를 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기부금 품앗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죠.

하지만 이 방식은 한계가 명확합니다. 당장 기부금 실적이 눈에 띄게 오르기야 하겠지만 지역에 대해 장기적인 애정과 지원을 보내는 후원자를 만드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또 후원자들의 관심을 통해 지방 소멸을 막고자 하는 고향 사랑 기부제의 원래 취지와도 맞는지도 의문입니다.

전문가들은 고향사랑기부제도의 장기적인 발전과 정착을 위해서 기부자가 원하는 곳에 직접 기부할 수 있도록 지정 기부 사업을 더 많이 개발하고, 기부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단기간 모금을 통해 가시적으로 딱딱 들어오는 기부금을 어디에다 사용했는지 투명성을 확대하는 부분도 중요하고, 기부자한테 정확한 피드백을 해주는 이런 체계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지역 주민들과 기부자가 어떻게 스킨십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도 상당히 중요하거든요.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기부금 사용 계획을 좀 치밀하게 계획할 필요가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 신두섭/한국지방행정연구원 지방투자사업관리센터 소장

'모으기' 보다 어려운 '잘 쓰기' … 열심히 모아 '통장에서 쿨쿨'

제도가 정착할수록 중요해지는 것, 바로 기부금이 실제로 지역 발전에 잘 쓰이고 있는지입니다. 고향 사랑 기부금 제도 도입은 올해 3년 차로 접어들었지만, 강원도에는 고향 사랑 기부금 사업 자체를 아직 시작도 못 한 시군이 한두 곳이 아닙니다. 모금액 대부분은 여전히 통장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2023년과 2024년, 2년 동안 강원도와 18개 시군이 모금한 고향사랑기부금은 123억 원입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실제 기금사업으로 집행된 금액은 5억 원에 불과합니다. 모금액 대비 비율로 환산하면 4.26%입니다.


올해에도 강원도 내 지자체 가운데 기부금 사용 계획을 확정한 곳은 8곳에 그칩니다. 나머지 10개 시군과 강원도는 올해 별다른 활용 계획이 없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로 집중됩니다. '기부금이 충분치 않아서', 혹은 '적절한 아이템을 못 찾아서'입니다.

그렇다면, 사업 계획을 확정한 시군은 올해 고향 사랑 기금으로 어떤 사업을 할까요? 춘천시는 올해 처음으로 고향 사랑 기금을 이용해 '기금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자율방범대 차량을 두 대 구입하고, 시민 태권도 교육 등 '태권도 활성화 사업'에 1억 8천만 원을 사용했습니다. 모두 시민들을 위한 사업이지만, 한 편에서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기존부터 해오던 사업인 데다, 기부금이 아니더라도 시의 일반 예산으로 진행할 수 있는 사업이었기 때문입니다. 고향 사랑 기부금의 취지에 맞느냐는 지적이었습니다.

"취지상에서는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춘천시가 그 (사업) 담당 부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우리가 고향 사랑 기부금에 대한 활용도를 찾지 못했으면 이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기존에도 우리가 해 왔던 것들인데 고향 사랑 기부금을 거기다 사용한다는 것이 시민들로 하여금 고향 사랑 기부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리는 행위가 되지 않나 생각이 들고요"
- 김운기/춘천시의원

다른 시군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고향 사랑 기금 사업을 살펴보니, 자체 예산으로 해도 무방해 보이는 시설 도입이나 개선 사업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2025 고향 사랑 기금 예정 사업 (일반기부)
-춘천시: 자율방범대 차량 구입, 태권도 시민 활성화 지원
-원주시: 초등학교 교통안전시설, 치악산 둘레길 주민 편의시설
-동해시: 자립 준비 청년 지원, 어린이 체력 공원 조성
-속초시: 시니어 놀이터 조성, 보건소 내과의 초빙
-홍천군: 연사 초청 강의
-횡성군: 시골 학교 오케스트라 지원
-평창군:청소년국제교류 활동 지원
-정선군: 노인 보행보조장치 지원

고향사랑기부제는 고향을 응원하는 기부자의 선의에 기대는 제도입니다. 지방 소멸, 인구 절벽 위기에 있는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선 더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득공제와 답례품'의 가치를 뛰어넘고, 진정한 고향에 대한 응원과 지역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잘 모으고 잘 쓰기 위한 지자체의 고민과 노력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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