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세에 사기까지”…청년 울리는 농촌 [청년농부 절망보고서]③

입력 2024.04.16 (17:07) 수정 2024.04.1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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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지난 2월 경북 의성에서 20대 청년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겁니다. 청년은 결국 3월 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SNS에 남긴 유서에는 '청년 귀촌', 그 후 알려지지 않은 어두운 이면이 담겼습니다.

KBS 대구방송총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지역의 청년 농부들이 처한 상황을 짚어보는 연속 보도를 마련했습니다. 농촌 생활에 익숙지 않은 청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은 무엇인지를 살펴봅니다.



■ "도와줄게"…멘토의 '탈' 쓰고 '쓰레기 밭' 팔아넘겼다

박태현 씨는 3년 전 귀농의 꿈을 안고 경북 영천을 찾았습니다. 청년창업농 대출을 통해 자금을 마련한 후 한 지역민으로부터 4,000㎡가 넘는 땅을 샀습니다. 저렴하지는 않았지만, 복숭아 나무가 이미 심겨 있는 땅이었습니다. 이듬해면 바로 수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3년 전 경북 영천으로 귀농한 청년 농부 박태현 씨3년 전 경북 영천으로 귀농한 청년 농부 박태현 씨
박태현/ 영천 귀농 청년
"땅 주인분께서 저보고 농사도 도와 주겠다고, 필요한 거 있으면 농기계도 빌려주고 그러겠다고... 한 해 농사를 같이 봐주신다고 하셔서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나무 포함해서 시세보다 더 (비싸게), 흥정 없이 바로 계약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복숭아 나무는 제대로 자라지 않았고 일부는 말라 죽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지난해를 맞은 박 씨는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수로를 정비하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습니다.

지난해 박태현 씨가 땅 밑에서 발견한 폐기물 일부지난해 박태현 씨가 땅 밑에서 발견한 폐기물 일부
박태현/ 영천 귀농 청년
"흙을 파다 보니까 타이어가 나오더라고요. 근데 하나가 아니었어요. 온갖 폐기물이 나오길래 땅 주인께 전화 드리니까 '옛날에 자기가 묻었다, 무슨 문제가 되냐, 내 땅도 아닌데'라고 얘기하시는데... 농사를 짓고 싶어서 왔는데 농사를 못 짓고 있어요. 아르바이트하고, 밤에 대리운전도 하고, 건설현장 가서도 일하고, 이렇게 버티고 있습니다."

■ '기획 부동산'부터 '모종 사기'까지…청년 울리는 농촌

귀농 8년 차 김주형 씨는 귀농 초기에 모종 사기를 당했습니다. 애플수박이란 말을 듣고 모종을 샀는데, 알고 보니 반값 수준의 일반 수박 모종이었던 겁니다.

애플수박 모종 사기를 당한 후 김주형 씨는 수박 농사를 접었다.애플수박 모종 사기를 당한 후 김주형 씨는 수박 농사를 접었다.
김주형/ 영천 귀농 청년
"온 가족이 심고, 꽃 따고, 수정시키고, 유인하고, 이렇게 열심히 키웠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는 거예요. 애플수박은 원래 조그마해야 하는데. 종자원에 신고했지만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듣고 결국은 전량 폐기했습니다."

청년 농업인들을 울리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귀농·귀촌의 대표적 피해 유형으로 다섯 가지를 소개했습니다.

①기획부동산형: 싼값에 토지·주택을 분양해주겠다며 투자 유도
②묘목상형: 귀농인들의 관심이 많은 작목의 예상소득을 과대 포장해 판매
③곤충산업형: 식용 귀뚜라미나 대체식량 등 신산업으로 현혹해 투자 유도
④영농조합법인형: 예비 귀농인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 종용
⑤애견브리딩형: 애견 분양업 등을 홍보하면서 비싼 값에 애견·시설·사료 등 판매

■ '시골 텃세'도…방지법은 폐기 수순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한 이른바 '텃세'도 여전합니다. 귀농 청년들은 마을발전기금과 같은 금전적 요구는 물론이고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합니다.

귀농 청년1
"직불금을 받으려면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는데 마을 일거리나 행사에 참여해야 직불금을 준다든지, 뭐 그런 거죠."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마을은 마을발전기금을 당연히 내는 거로... 안 내면 불이익도 있고 마을 주민들하고 어울리기 어렵고 그런 상황이 있는 거로 알고 있어요."

귀농 청년2
"지원사업 같은 거 나오면 우선 거기 토박이부터 챙겨요. 외지인이면 가격을 부풀려서 하는 경우도 있고. 사실상 인맥이 없으면 귀농할 수가 없죠."

"시골에서는 빈집 같은 거 알아보려면 이장님이나 주민센터에 가서 물어봐야 알 수 있어요. 아는 사람이 없으면 정보를 얻기가 어려운 거죠. 이장님이랑 잘 지내야 해요."

귀농·귀촌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이른바 '시골 텃세 방지법'이 지난해 국회에서 발의됐습니다. 그러나 논의는 지지부진했고 한 달여 뒤면 21대 국회 회기 종료로 폐기될 거로 보입니다.

박태현/ 영천 귀농 청년
"귀농한 게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라면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직장 생활 평범하게 잘하다 새로운 삶을 살아볼 거라고 가족들하고 왔는데 지금은 제 인생이 어떻게 보면 완전히... 누구를 만나기가 힘들어요, 지금은."

다음 편에는 청년 농부를 비롯해 귀농·귀촌 청년 유입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자치단체의 현황을 짚어봅니다.

[연관 기사]
[청년농부 절망보고서]① 청년 농부의 죽음…“노예처럼 착취” 유서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39301
[청년농부 절망보고서]② 청년 농업인 단체라더니…청년들 ‘부글부글’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40356

촬영기자 신상응 그래픽 인푸름 이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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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텃세에 사기까지”…청년 울리는 농촌 [청년농부 절망보고서]③
    • 입력 2024-04-16 17:07:23
    • 수정2024-04-16 17: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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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지난 2월 경북 의성에서 20대 청년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습니다. </strong><strong>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겁니다. </strong><strong>청년은 결국 3월 초 세상을 떠났습니다. </strong><br /><br /><strong>그가 SNS에 남긴 유서에는 '청년 귀촌', 그 후 알려지지 않은 어두운 이면이 담겼습니다. </strong><br /><br /><strong>KBS 대구방송총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지역의 청년 농부들이 처한 상황을 짚어보는 연속 보도를 마련했습니다. 농촌 생활에 익숙지 않은 청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은 무엇인지를 살펴봅니다.<br /></strong>


■ "도와줄게"…멘토의 '탈' 쓰고 '쓰레기 밭' 팔아넘겼다

박태현 씨는 3년 전 귀농의 꿈을 안고 경북 영천을 찾았습니다. 청년창업농 대출을 통해 자금을 마련한 후 한 지역민으로부터 4,000㎡가 넘는 땅을 샀습니다. 저렴하지는 않았지만, 복숭아 나무가 이미 심겨 있는 땅이었습니다. 이듬해면 바로 수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3년 전 경북 영천으로 귀농한 청년 농부 박태현 씨
박태현/ 영천 귀농 청년
"땅 주인분께서 저보고 농사도 도와 주겠다고, 필요한 거 있으면 농기계도 빌려주고 그러겠다고... 한 해 농사를 같이 봐주신다고 하셔서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나무 포함해서 시세보다 더 (비싸게), 흥정 없이 바로 계약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복숭아 나무는 제대로 자라지 않았고 일부는 말라 죽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지난해를 맞은 박 씨는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수로를 정비하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습니다.

지난해 박태현 씨가 땅 밑에서 발견한 폐기물 일부
박태현/ 영천 귀농 청년
"흙을 파다 보니까 타이어가 나오더라고요. 근데 하나가 아니었어요. 온갖 폐기물이 나오길래 땅 주인께 전화 드리니까 '옛날에 자기가 묻었다, 무슨 문제가 되냐, 내 땅도 아닌데'라고 얘기하시는데... 농사를 짓고 싶어서 왔는데 농사를 못 짓고 있어요. 아르바이트하고, 밤에 대리운전도 하고, 건설현장 가서도 일하고, 이렇게 버티고 있습니다."

■ '기획 부동산'부터 '모종 사기'까지…청년 울리는 농촌

귀농 8년 차 김주형 씨는 귀농 초기에 모종 사기를 당했습니다. 애플수박이란 말을 듣고 모종을 샀는데, 알고 보니 반값 수준의 일반 수박 모종이었던 겁니다.

애플수박 모종 사기를 당한 후 김주형 씨는 수박 농사를 접었다.
김주형/ 영천 귀농 청년
"온 가족이 심고, 꽃 따고, 수정시키고, 유인하고, 이렇게 열심히 키웠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는 거예요. 애플수박은 원래 조그마해야 하는데. 종자원에 신고했지만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듣고 결국은 전량 폐기했습니다."

청년 농업인들을 울리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귀농·귀촌의 대표적 피해 유형으로 다섯 가지를 소개했습니다.

①기획부동산형: 싼값에 토지·주택을 분양해주겠다며 투자 유도
②묘목상형: 귀농인들의 관심이 많은 작목의 예상소득을 과대 포장해 판매
③곤충산업형: 식용 귀뚜라미나 대체식량 등 신산업으로 현혹해 투자 유도
④영농조합법인형: 예비 귀농인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 종용
⑤애견브리딩형: 애견 분양업 등을 홍보하면서 비싼 값에 애견·시설·사료 등 판매

■ '시골 텃세'도…방지법은 폐기 수순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한 이른바 '텃세'도 여전합니다. 귀농 청년들은 마을발전기금과 같은 금전적 요구는 물론이고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합니다.

귀농 청년1
"직불금을 받으려면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는데 마을 일거리나 행사에 참여해야 직불금을 준다든지, 뭐 그런 거죠."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마을은 마을발전기금을 당연히 내는 거로... 안 내면 불이익도 있고 마을 주민들하고 어울리기 어렵고 그런 상황이 있는 거로 알고 있어요."

귀농 청년2
"지원사업 같은 거 나오면 우선 거기 토박이부터 챙겨요. 외지인이면 가격을 부풀려서 하는 경우도 있고. 사실상 인맥이 없으면 귀농할 수가 없죠."

"시골에서는 빈집 같은 거 알아보려면 이장님이나 주민센터에 가서 물어봐야 알 수 있어요. 아는 사람이 없으면 정보를 얻기가 어려운 거죠. 이장님이랑 잘 지내야 해요."

귀농·귀촌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이른바 '시골 텃세 방지법'이 지난해 국회에서 발의됐습니다. 그러나 논의는 지지부진했고 한 달여 뒤면 21대 국회 회기 종료로 폐기될 거로 보입니다.

박태현/ 영천 귀농 청년
"귀농한 게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라면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직장 생활 평범하게 잘하다 새로운 삶을 살아볼 거라고 가족들하고 왔는데 지금은 제 인생이 어떻게 보면 완전히... 누구를 만나기가 힘들어요, 지금은."

다음 편에는 청년 농부를 비롯해 귀농·귀촌 청년 유입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자치단체의 현황을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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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기자 신상응 그래픽 인푸름 이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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