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어촌뉴딜② 사업 첫 단추 예비계획 단계부터 문제

입력 2020.12.28 (13:26) 수정 2020.12.28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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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문재인 대통령은 포스트 코로나시대 국가발전 전략으로 '한국판 뉴딜'을 제시했습니다. 나라 경제와 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키겠다는 약속으로, 기존 수도권 중심 발전 체제에서 벗어나 지역이 중심이 되는 디지털과 친환경적 발전을 추구할 계획입니다. 이처럼 최근 뉴딜이 핵심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해양수산 분야에서는 이미 3년 전부터 '어촌뉴딜 300 사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KBS제주 탐사K팀은 '어촌뉴딜 300 사업'이 침체된 어촌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올 수 있을지 네 차례에 걸쳐 짚어봅니다.


■ "우리 마을은 우리가"…주민대표 의사결정 조직 '지역협의체'

해양수산부가 추진하고 있는 어촌뉴딜 300 사업. ‘뉴딜’이라는 말처럼 토목공사 위주의 과거 어촌개발 사업과 달리 낙후된 어촌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입니다.

이 과정에 해양수산부가 강조한 건 ‘우리 마을은 우리가 개발한다’는 주인 의식입니다. 지역주민이 스스로 계획을 수립해 어촌의 자생력과 지속성을 담보하자는 겁니다.
 
이처럼 주민주도 개발방식을 지향하기 위해 해양수산부가 역점을 둔 조직이 바로 ‘지역협의체’입니다. 지역협의체는 해당 지역 어촌계장과 지방자치단체 담당 공무원이 공동 위원장을 맡고, 최소 2명의 전문가와 지역주민들이 참여합니다. 어촌뉴딜 300 사업에서 주민들을 대표하는 의사결정 조직인 겁니다.
 
어촌뉴딜 300 사업 대상지 선정 평가에 활용하는 예비계획서도 바로 지역협의체가 만듭니다.

예비계획서는 개발 여건과 기본 구상 등을 담은 말 그대로 기초적인 단계의 계획서입니다.

해양수산부의 심사위원들은 이 예비계획서의 내용을 토대로 평가를 거쳐 사업 대상지를 선정하게 됩니다.
 

■ 성급한 일정 속 주민들 준비 부족…'지역협의체' 형식적 운영

문제는 지역협의체가 당초 취지대로 운영되고 있느냐입니다. 주민주도 방식을 지향하면서도 정작 주민들은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전국의 어촌어항은 모두 2천여 곳. 어촌뉴딜 300 사업은 4년에 걸쳐 모두 3백 곳만 선정합니다.

이렇다 보니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매년 평균 경쟁률은 2대 1을 넘는 상황입니다.
 
짧은 시간 경쟁적으로 공모하다 보니 정작 주민들은 ‘뉴딜’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사업 발굴 역시 기존의 개발사업과는 차이를 보이기 어려운 겁니다. 지역협의체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어촌개발 사업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큰 규모의 사업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고 꼬집었습니다.
 
전문가들의 불만도 적지 않습니다. 혁신 성장이라는 취지와 달리 민원 사업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겁니다.

또 주민 대표로 참여하는 어촌계장이나 마을이장 등 소수의 의견이 전체 의견처럼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역협의체에 참여한 또 다른 전문가는 “통과 의례적인 회의에 불과하고 전문가들은 들러리 역할에 불과하다”며 형식적인 운영에 반발해 중도 사퇴하기도 했습니다.
 

■ 지방자치단체의 방관…'내실' 보다는 '선정' 중점

지방자치단체의 방관도 문제입니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역협의체의 공동 위원장 역할 뿐만 아니라 협의체 구성과 운영, 예비계획서 작성 등 역할이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민간에 용역을 맡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제주시 같은 경우는 지난해 공모한 2차 연도 기준, 무려 5개 어촌의 예비계획 수립을 한 업체에 맡기면서 논란도 불거졌습니다.

어촌뉴딜 300 사업은 국책 사업이지만 지방비도 30%나 투입되기 때문에 지방재정투자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한 업체에서 5개 어촌의 계획을 새우다 보니 개별 어촌의 특색을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은 겁니다.
 
이렇다 보니 마을 만들기 경험이 있던 일부 마을은 제주시 용역과 별개로 직접 예비계획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어촌뉴딜 300 사업과 관련해 권역별 자문 역할을 맡는 한 총괄조정가는 “일단 예비계획을 제출해서 대상지에 선정되는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주민 의사와 무관하게 전문 기관에 맡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비판했습니다.


■ 선정 평가도 문제…선정 결과 놓고 내부서도 '비판'

이처럼 예비계획 수립 과정에 문제가 적지 않은데 선정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요? 선정평가는 해양수산부가 위촉한 민간 자문위원들이 나섭니다.

평가방식은 크게 서면평가현장평가로 나뉘는데, 서면평가는 해당 지역 어촌계장 등의 발표를 포함해 길어야 한 시간, 현장평가는 대략 두 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문제는 민간 자문위원들이 해당 지역의 사정을 자세히 알기 힘든 데다 평가 시간도 짧다 보니 사업의 필요성과 주민 역량을 살펴보기엔 역부족이라는 겁니다.

한 지역협의체 전문가는 “계획서는 과도하게 포장될 수 있지만, 심사위원들이 지역의 실정이나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렇다 보니 지원이 필요한 곳보다는 계획서를 잘 포장했거나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되는 곳이 선정되는 경향이 적지 않습니다.

어촌뉴딜 300 사업 자문단 내에서도 현재까지의 선정 결과를 놓고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옵니다.

한 총괄조정가는 “이미 어촌이나 어항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는 곳도 선정됐다”며 “이런 곳들은 대상지가 아니었어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평가 방식의 문제점에 대해 해양수산부는 "평가의 전문성과 일관성을 높이기 위해 평가 내용을 세분화해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심사위원 사전 워크숍도 진행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업 첫 단추인 예비계획 수립 단계부터 주민 주도와 낙후된 어촌 발전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어촌뉴딜 300 사업. 다음 순서는 사업이 본격 추진되는 기본계획 단계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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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K] 어촌뉴딜② 사업 첫 단추 예비계획 단계부터 문제
    • 입력 2020-12-28 13:26:45
    • 수정2020-12-28 13:2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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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포스트 코로나시대 국가발전 전략으로 '한국판 뉴딜'을 제시했습니다. 나라 경제와 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키겠다는 약속으로, 기존 수도권 중심 발전 체제에서 벗어나 지역이 중심이 되는 디지털과 친환경적 발전을 추구할 계획입니다. 이처럼 최근 뉴딜이 핵심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해양수산 분야에서는 이미 3년 전부터 '어촌뉴딜 300 사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KBS제주 탐사K팀은 '어촌뉴딜 300 사업'이 침체된 어촌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올 수 있을지 네 차례에 걸쳐 짚어봅니다.<br />

■ "우리 마을은 우리가"…주민대표 의사결정 조직 '지역협의체'

해양수산부가 추진하고 있는 어촌뉴딜 300 사업. ‘뉴딜’이라는 말처럼 토목공사 위주의 과거 어촌개발 사업과 달리 낙후된 어촌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입니다.

이 과정에 해양수산부가 강조한 건 ‘우리 마을은 우리가 개발한다’는 주인 의식입니다. 지역주민이 스스로 계획을 수립해 어촌의 자생력과 지속성을 담보하자는 겁니다.
 
이처럼 주민주도 개발방식을 지향하기 위해 해양수산부가 역점을 둔 조직이 바로 ‘지역협의체’입니다. 지역협의체는 해당 지역 어촌계장과 지방자치단체 담당 공무원이 공동 위원장을 맡고, 최소 2명의 전문가와 지역주민들이 참여합니다. 어촌뉴딜 300 사업에서 주민들을 대표하는 의사결정 조직인 겁니다.
 
어촌뉴딜 300 사업 대상지 선정 평가에 활용하는 예비계획서도 바로 지역협의체가 만듭니다.

예비계획서는 개발 여건과 기본 구상 등을 담은 말 그대로 기초적인 단계의 계획서입니다.

해양수산부의 심사위원들은 이 예비계획서의 내용을 토대로 평가를 거쳐 사업 대상지를 선정하게 됩니다.
 

■ 성급한 일정 속 주민들 준비 부족…'지역협의체' 형식적 운영

문제는 지역협의체가 당초 취지대로 운영되고 있느냐입니다. 주민주도 방식을 지향하면서도 정작 주민들은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전국의 어촌어항은 모두 2천여 곳. 어촌뉴딜 300 사업은 4년에 걸쳐 모두 3백 곳만 선정합니다.

이렇다 보니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매년 평균 경쟁률은 2대 1을 넘는 상황입니다.
 
짧은 시간 경쟁적으로 공모하다 보니 정작 주민들은 ‘뉴딜’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사업 발굴 역시 기존의 개발사업과는 차이를 보이기 어려운 겁니다. 지역협의체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어촌개발 사업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큰 규모의 사업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고 꼬집었습니다.
 
전문가들의 불만도 적지 않습니다. 혁신 성장이라는 취지와 달리 민원 사업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겁니다.

또 주민 대표로 참여하는 어촌계장이나 마을이장 등 소수의 의견이 전체 의견처럼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역협의체에 참여한 또 다른 전문가는 “통과 의례적인 회의에 불과하고 전문가들은 들러리 역할에 불과하다”며 형식적인 운영에 반발해 중도 사퇴하기도 했습니다.
 

■ 지방자치단체의 방관…'내실' 보다는 '선정' 중점

지방자치단체의 방관도 문제입니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역협의체의 공동 위원장 역할 뿐만 아니라 협의체 구성과 운영, 예비계획서 작성 등 역할이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민간에 용역을 맡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제주시 같은 경우는 지난해 공모한 2차 연도 기준, 무려 5개 어촌의 예비계획 수립을 한 업체에 맡기면서 논란도 불거졌습니다.

어촌뉴딜 300 사업은 국책 사업이지만 지방비도 30%나 투입되기 때문에 지방재정투자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한 업체에서 5개 어촌의 계획을 새우다 보니 개별 어촌의 특색을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은 겁니다.
 
이렇다 보니 마을 만들기 경험이 있던 일부 마을은 제주시 용역과 별개로 직접 예비계획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어촌뉴딜 300 사업과 관련해 권역별 자문 역할을 맡는 한 총괄조정가는 “일단 예비계획을 제출해서 대상지에 선정되는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주민 의사와 무관하게 전문 기관에 맡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비판했습니다.


■ 선정 평가도 문제…선정 결과 놓고 내부서도 '비판'

이처럼 예비계획 수립 과정에 문제가 적지 않은데 선정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요? 선정평가는 해양수산부가 위촉한 민간 자문위원들이 나섭니다.

평가방식은 크게 서면평가현장평가로 나뉘는데, 서면평가는 해당 지역 어촌계장 등의 발표를 포함해 길어야 한 시간, 현장평가는 대략 두 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문제는 민간 자문위원들이 해당 지역의 사정을 자세히 알기 힘든 데다 평가 시간도 짧다 보니 사업의 필요성과 주민 역량을 살펴보기엔 역부족이라는 겁니다.

한 지역협의체 전문가는 “계획서는 과도하게 포장될 수 있지만, 심사위원들이 지역의 실정이나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렇다 보니 지원이 필요한 곳보다는 계획서를 잘 포장했거나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되는 곳이 선정되는 경향이 적지 않습니다.

어촌뉴딜 300 사업 자문단 내에서도 현재까지의 선정 결과를 놓고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옵니다.

한 총괄조정가는 “이미 어촌이나 어항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는 곳도 선정됐다”며 “이런 곳들은 대상지가 아니었어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평가 방식의 문제점에 대해 해양수산부는 "평가의 전문성과 일관성을 높이기 위해 평가 내용을 세분화해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심사위원 사전 워크숍도 진행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업 첫 단추인 예비계획 수립 단계부터 주민 주도와 낙후된 어촌 발전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어촌뉴딜 300 사업. 다음 순서는 사업이 본격 추진되는 기본계획 단계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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