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10전비 A 중사는 왜 국방부에 가지 못했나?

입력 2020.10.24 (08:0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할 것입니다. 기자분도 그만한 책임을 질 각오로 신중히 다시 한 번 생각을 가다듬기를 요청드립니다.'

'공군 장성이 민주당 김병기 의원 아들에게 특혜를 줬다'는 군 첩보 문건과 관련한 KBS 보도에 대해 김 의원 측이 보내온 서면 답변 내용입니다.

책임질 각오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취재진은 첩보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4개월여 동안 제10 전투비행단(10전비) 관련 전·현직 간부와 전역 장병 등 모두 28명을 접촉했고, 상당 부분 사실에 가깝다고 판단했습니다. (※ 다만 구체적인 대화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취재원의 신원이 특정돼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어 증언은 정제해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민주당 김병기 의원 SNS민주당 김병기 의원 SNS

'김병기 의원 아들과 갈등' A 중사…감찰받아

'김병기 의원 아들 관련' 첩보 문건에는 '죽 심부름'과 '생활관 편의 제공' 말고 또 다른 내용이 등장합니다. 일부 내용을 확인해 복기했습니다.

박칠호 10전비 단장은 수사실 A 중사가 김 의원 아들 김 씨에게 출근 시간 미준수와 업무미숙에 대해 욕설과 인격모독 발언을 했다는 말을 듣고 A 중사에 대한 감찰 조사를 지시했다. 조사결과 무혐의로 확인됐음에도 A 중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처벌을 거론했다….

취재 결과, 이 문건처럼 A 중사는 실제 감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지난해 5월 말쯤 시작됐는데 10전비 감찰실 간부가 수사실을 찾아 설문조사를 했고, 그 뒤 근무자들을 한 명씩 불러 조사했습니다. A 중사에 대한 조사는 5차례 정도 진행됐습니다. 취재 과정에 만난 전·현직 군인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A 중사가 김 씨에게 한 가혹 행위로 지목된 건 ▲낙엽 쓸기 지시 ▲욕설 섞인 말 ▲국방개혁 2.0 추진 관련 국회의원 등에 대한 비판 ▲째려보기 등입니다.


"다른 부모 가슴에 천추의 한 남길 자"…결과는 '무혐의'

김 의원 측이 제공한 김 씨의 당시 진술서 내용도 비슷합니다. 김 씨가 2018년 7월 수사실로 전입한 뒤 A 중사에게 받았던 부당한 대우 등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진술한다고 돼 있는 7장짜리 문서입니다(2019년 5월 8일 작성). ▲촉박하게 낙엽을 쓸라는 명령을 이행하지 못했더니 욕설을 했다 ▲비웃고 경멸하는 눈빛을 보냈다 ▲국회의원 아들인 자신이 들으라는 듯 국방개혁 정책을 비판해 모욕감을 느꼈다 등입니다. 아버지인 김 의원도 김 씨의 진술서에 등장합니다. 김 의원이 A 중사에 대해 '다른 부모 가슴에 천추의 한을 남길 자'라고 말했다고 적은 겁니다.

김 씨가 주장한 가혹 행위와 관련해 가해자로 몰린 A 중사는 당시 조사에서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팽팽하게 엇갈렸던 이들의 주장, 어떻게 결론 났을까요? 감찰 결과는 '무혐의'였습니다.

"박칠호 단장의 처벌 요구 있었다"…법무실장, '직권남용' 경고

그런데 비행단 최고 지휘관인 박 단장은 계속해서 A 중사를 처벌하라고 요구했다는 게 첩보 내용입니다. 복수의 10전비 관계자들은 사실이라고 취재진에게 밝혔습니다. 조사를 진행한 감찰실이나 이 사건을 넘겨받을 것을 요구받은 법무실도 꽤 곤욕스러워했다고도 했습니다. 첩보 문건에는 당시 법무실장이 나서 박 단장에게 무리하게 처벌을 요구하면 직권남용으로 해를 입을 수 있다고 조언한 뒤 감찰이 종결됐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역시 복수의 10전비 관계자들은 "문건 내용이 사실"이라고 밝혔습니다.

결국, 무혐의가 확정되자 박칠호 당시 단장은 김 의원에게 전화해 감찰 결과를 알려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에 대해 박 단장은 "더는 불합리한 일이 없도록 군대 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게 하겠다는 차원에서 전화했다"면서 "고통받고 있으면 다른 병사들에게도 똑같이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칠호 공군 소장(전 10전투비행단장)박칠호 공군 소장(전 10전투비행단장)

A 중사 돌연 인사발령 취소

감찰이 무혐의 종결된 지 반년쯤 뒤인 지난 1월, A 중사는 10전비 군사경찰대대에서 국방부 조사본부로 인사발령이 났습니다. 전군의 사건·사고 등을 총괄하는 곳이라, 수사관들이 선호하는 부서입니다. 그런데 부임 직전인 지난 5월, A 중사는 공군본부 관계자에게 연락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국방부의 요구로 인사가 취소될 거라는 통보였습니다. 미리 서울에 살 집까지 구해놓았던 A 중사에게 날아든 소식에 부대 관계자들도 술렁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며칠 뒤 공군본부는 A 중사 인사발령을 취소하겠다는 공문을 국방부로 보냈습니다. 공문에 기재된 취소 사유는 A 중사가 수사관 경력이 2년 6개월로 짧고 상황실 등 주요 보직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방부 조사본부가 애초에는 없었던 수사관 경력 5년 조건을 추가했는데, 공군본부가 적임자가 없다며 난색을 보이자 경력 조건을 다시 낮추기까지 했습니다.

'김 의원 아들과의 마찰도 고려' 시인

당시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취재진의 거듭된 질의에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는 공문에 적힌 이유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병사와 마찰이 있어서 감찰 조사를 받았다는 점도 고려됐다는 겁니다. 그 병사가 김 의원 아들 아니냐고 묻자 "당시에는 몰랐다"고 했습니다. 이미 무혐의 종결된 사안으로 인사 취소를 할 수 있느냐는 질의에는 "좀 더 좋은 자원을 보내달라는 취지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양욱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인사 재량권을 인정하더라도, 무혐의로 문제가 없다고 확인된 사안을 이유로 인사발령을 취소한 행위는 별도의 명백한 근거가 없는 한 작위적이고 문제가 있는 인사 처분으로 볼 여지가 있다"면서 "중간에 다른 힘이 작용했는지 살펴보고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민주당 김병기 의원민주당 김병기 의원

김 의원 "아들 역차별에도 군에 어떤 요구도 안 해"

김 의원은 A 중사에 대한 감찰이나 처벌을 요구한 적이 있는지, 인사 취소에 관여했는지 질의에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역차별을 받는 것으로 생각해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A 중사 사건의 본질은 '군대 내 괴롭힘'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반박도 내놨습니다. 또 A 중사가 국방부 조사본부로 발령이 났던 사실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공군은 23일, KBS가 보도한 김병기 의원 아들 특혜 의혹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감찰 주체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이라고도 했습니다. 그 어느 곳보다 더 '공정' 가치에 부합해야 할 병역 생활에 특혜가 끼어들진 않았는지,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군은 명명백백 답해야 할 겁니다.

[연관기사]
① 국회의원 아들 장염 걸렸다고…군 간부들이 ‘죽 심부름’
② 의원 아들 특혜 항의했다가…“깜냥도 안 되는 것들 처벌하라”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탐사K] 10전비 A 중사는 왜 국방부에 가지 못했나?
    • 입력 2020-10-24 08:01:46
    탐사K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할 것입니다. 기자분도 그만한 책임을 질 각오로 신중히 다시 한 번 생각을 가다듬기를 요청드립니다.'

'공군 장성이 민주당 김병기 의원 아들에게 특혜를 줬다'는 군 첩보 문건과 관련한 KBS 보도에 대해 김 의원 측이 보내온 서면 답변 내용입니다.

책임질 각오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취재진은 첩보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4개월여 동안 제10 전투비행단(10전비) 관련 전·현직 간부와 전역 장병 등 모두 28명을 접촉했고, 상당 부분 사실에 가깝다고 판단했습니다. (※ 다만 구체적인 대화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취재원의 신원이 특정돼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어 증언은 정제해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민주당 김병기 의원 SNS
'김병기 의원 아들과 갈등' A 중사…감찰받아

'김병기 의원 아들 관련' 첩보 문건에는 '죽 심부름'과 '생활관 편의 제공' 말고 또 다른 내용이 등장합니다. 일부 내용을 확인해 복기했습니다.

박칠호 10전비 단장은 수사실 A 중사가 김 의원 아들 김 씨에게 출근 시간 미준수와 업무미숙에 대해 욕설과 인격모독 발언을 했다는 말을 듣고 A 중사에 대한 감찰 조사를 지시했다. 조사결과 무혐의로 확인됐음에도 A 중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처벌을 거론했다….

취재 결과, 이 문건처럼 A 중사는 실제 감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지난해 5월 말쯤 시작됐는데 10전비 감찰실 간부가 수사실을 찾아 설문조사를 했고, 그 뒤 근무자들을 한 명씩 불러 조사했습니다. A 중사에 대한 조사는 5차례 정도 진행됐습니다. 취재 과정에 만난 전·현직 군인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A 중사가 김 씨에게 한 가혹 행위로 지목된 건 ▲낙엽 쓸기 지시 ▲욕설 섞인 말 ▲국방개혁 2.0 추진 관련 국회의원 등에 대한 비판 ▲째려보기 등입니다.


"다른 부모 가슴에 천추의 한 남길 자"…결과는 '무혐의'

김 의원 측이 제공한 김 씨의 당시 진술서 내용도 비슷합니다. 김 씨가 2018년 7월 수사실로 전입한 뒤 A 중사에게 받았던 부당한 대우 등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진술한다고 돼 있는 7장짜리 문서입니다(2019년 5월 8일 작성). ▲촉박하게 낙엽을 쓸라는 명령을 이행하지 못했더니 욕설을 했다 ▲비웃고 경멸하는 눈빛을 보냈다 ▲국회의원 아들인 자신이 들으라는 듯 국방개혁 정책을 비판해 모욕감을 느꼈다 등입니다. 아버지인 김 의원도 김 씨의 진술서에 등장합니다. 김 의원이 A 중사에 대해 '다른 부모 가슴에 천추의 한을 남길 자'라고 말했다고 적은 겁니다.

김 씨가 주장한 가혹 행위와 관련해 가해자로 몰린 A 중사는 당시 조사에서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팽팽하게 엇갈렸던 이들의 주장, 어떻게 결론 났을까요? 감찰 결과는 '무혐의'였습니다.

"박칠호 단장의 처벌 요구 있었다"…법무실장, '직권남용' 경고

그런데 비행단 최고 지휘관인 박 단장은 계속해서 A 중사를 처벌하라고 요구했다는 게 첩보 내용입니다. 복수의 10전비 관계자들은 사실이라고 취재진에게 밝혔습니다. 조사를 진행한 감찰실이나 이 사건을 넘겨받을 것을 요구받은 법무실도 꽤 곤욕스러워했다고도 했습니다. 첩보 문건에는 당시 법무실장이 나서 박 단장에게 무리하게 처벌을 요구하면 직권남용으로 해를 입을 수 있다고 조언한 뒤 감찰이 종결됐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역시 복수의 10전비 관계자들은 "문건 내용이 사실"이라고 밝혔습니다.

결국, 무혐의가 확정되자 박칠호 당시 단장은 김 의원에게 전화해 감찰 결과를 알려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에 대해 박 단장은 "더는 불합리한 일이 없도록 군대 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게 하겠다는 차원에서 전화했다"면서 "고통받고 있으면 다른 병사들에게도 똑같이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칠호 공군 소장(전 10전투비행단장)
A 중사 돌연 인사발령 취소

감찰이 무혐의 종결된 지 반년쯤 뒤인 지난 1월, A 중사는 10전비 군사경찰대대에서 국방부 조사본부로 인사발령이 났습니다. 전군의 사건·사고 등을 총괄하는 곳이라, 수사관들이 선호하는 부서입니다. 그런데 부임 직전인 지난 5월, A 중사는 공군본부 관계자에게 연락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국방부의 요구로 인사가 취소될 거라는 통보였습니다. 미리 서울에 살 집까지 구해놓았던 A 중사에게 날아든 소식에 부대 관계자들도 술렁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며칠 뒤 공군본부는 A 중사 인사발령을 취소하겠다는 공문을 국방부로 보냈습니다. 공문에 기재된 취소 사유는 A 중사가 수사관 경력이 2년 6개월로 짧고 상황실 등 주요 보직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방부 조사본부가 애초에는 없었던 수사관 경력 5년 조건을 추가했는데, 공군본부가 적임자가 없다며 난색을 보이자 경력 조건을 다시 낮추기까지 했습니다.

'김 의원 아들과의 마찰도 고려' 시인

당시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취재진의 거듭된 질의에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는 공문에 적힌 이유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병사와 마찰이 있어서 감찰 조사를 받았다는 점도 고려됐다는 겁니다. 그 병사가 김 의원 아들 아니냐고 묻자 "당시에는 몰랐다"고 했습니다. 이미 무혐의 종결된 사안으로 인사 취소를 할 수 있느냐는 질의에는 "좀 더 좋은 자원을 보내달라는 취지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양욱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인사 재량권을 인정하더라도, 무혐의로 문제가 없다고 확인된 사안을 이유로 인사발령을 취소한 행위는 별도의 명백한 근거가 없는 한 작위적이고 문제가 있는 인사 처분으로 볼 여지가 있다"면서 "중간에 다른 힘이 작용했는지 살펴보고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민주당 김병기 의원
김 의원 "아들 역차별에도 군에 어떤 요구도 안 해"

김 의원은 A 중사에 대한 감찰이나 처벌을 요구한 적이 있는지, 인사 취소에 관여했는지 질의에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역차별을 받는 것으로 생각해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A 중사 사건의 본질은 '군대 내 괴롭힘'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반박도 내놨습니다. 또 A 중사가 국방부 조사본부로 발령이 났던 사실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공군은 23일, KBS가 보도한 김병기 의원 아들 특혜 의혹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감찰 주체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이라고도 했습니다. 그 어느 곳보다 더 '공정' 가치에 부합해야 할 병역 생활에 특혜가 끼어들진 않았는지,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군은 명명백백 답해야 할 겁니다.

[연관기사]
① 국회의원 아들 장염 걸렸다고…군 간부들이 ‘죽 심부름’
② 의원 아들 특혜 항의했다가…“깜냥도 안 되는 것들 처벌하라”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