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법관도 ‘사법농단’ 재판 증인석에…이동원 대법관, 임종헌 재판서 증언

입력 2020.08.11 (13:18) 수정 2020.08.11 (14:0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돼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현직 대법관이 증인으로 나와 증언했습니다. 현직 대법관이 형사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한 사례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동원 대법관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재판장 윤종섭) 심리로 열린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 혐의 등 사건 재판에 오늘(11일) 오전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이 대법관은 재판 시작 20분 전쯤 경호 인력없이 혼자 법정 출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오늘 재판에 임하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대법관은 "법원이 증인 출석을 요구하면 누구든지 이에 응해야 한다"라며 "대법관으로서가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성실하게 증언하기 위해 오게 됐다"라고 답했습니다. 또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는 "모든 일이 정의롭게 공평하게 잘 해결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대법관은 대법관이 되기 전인 2016년 4월 서울고등법원 행정6부 재판장으로 근무하면서,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통진당) 소속 전 국회의원 5명이 "국회의원 지위가 있음을 확인해달라"고 국가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이 대법관은 해당 사건의 주심이었는데, 해당 판결은 "(통진당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 결정이) 헌법재판소에 맡겨져 있는 헌법 해석·적용에 근거해 이뤄진 결정인 이상, 법원 등 다른 국가 기관은 이를 다툴 수 없고 이에 대해 다시 심리·판단할 수도 없다"라며 소송을 각하한 1심 판결과 결론을 달리했습니다.

검찰은 임종헌 전 차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공모해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재판 관련 자료를 이 대법관에게 전달하고 검토하게 함으로써 법관에게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고, 법관의 독립된 재판권 행사를 방해했다고 공소장에 적었습니다.

이 대법관이 판결을 선고하기 전인 2016년 3월, 이민걸 당시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이 이 대법관을 만나 식사를 하면서 통진당 행정소송과 관련된 문건을 전달한 점을 문제삼은 것입니다. 이 문건에는 통진당 의원들의 의원직 확인에 대한 재판권은 헌법재판소가 아닌 법원에 있고, 의원들이 직을 유지하거나 상실한다고 판결할 경우 어떤 논거로 뒷받침할 수 있는지 등을 검토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검찰은 이 문건이 법원행정처가 수립한 통진당 행정소송에 대한 "판단 방법"이라며, 문건을 재판 개입의 증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오늘 재판에서는 문제의 문건 전달 경위와 해당 문건이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두고, 이 대법관에 대한 증인신문이 1시간 40분 가량 이어졌습니다.

이 대법관은 이민걸 기조실장과 사법연수원 때부터 짝이여서 매우 친한 사이였다면서, 2016년 2월 서울고등법원으로 자신이 전보된 이후 기조실장이 "식사나 같이 하자"고 연락해 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또 식사 자리에서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끝 무렵에 기조실장에게 문제의 문건을 건네 받았고, 당시 기조실장이 '통진당 해산 결정에 따라 소속 의원들에 대해 지위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것은 법원이 알아서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인데, 아예 법원에 재판권이 없다고 하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아?'라는 뉘앙스로 말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재판기일이 언제쯤 지정될 것 같냐고 물었다고도 했습니다.

이 대법관은 자신이 심리 중인 사건에 대해 제3자가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라면서, 당시 기조실장의 말은 전 통진당 의원들의 소송을 각하한 서울행정법원 1심 판결을 두고 한 이야기라고 이해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묻는 질문에 이 대법관은 "판사는 사건에 대한 제3자로부터의 접근이 오게 되면 긴장하게 되고 침묵하게 된다"라며 "잘 검토해볼게요"라는 정도로 이야기했을 수 있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또 "기조실장은 법원의 살림을 주로 하는 사람"이라며, 기조실장이 정책 결정 등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와의 관계에 있어 (사건에) 관심이 있나 보구나"라는 정도로 받아들였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에서 이 사건에 관심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냐는 검사의 질문에는 그때는 그런 생각을 안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기조실장과의 식사 후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 10쪽 내외의 문건을 한 번 읽어봤지만, 그 내용이 와닿지 않아 더이상 참고하지 않았고 같은 재판부의 판사들에게도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증언했습니다. 또 문건을 읽지 않았어도 되는 거 아니냐는 검사의 질문에는 수긍하면서, 당시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 의원의 지위까지 상실되는 것이 맞는가'라는 법리적 문제를 고심하던 중 해당 문건에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을까 싶어 읽어봤다고 했습니다. "문건을 안 읽었으면 떳떳할 텐데 그걸 읽어서 더 면목이 없게 됐다"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이 대법관은 기조실장이 전달한 문건 때문에 심적인 부담감을 느끼진 않았고, 그 문건 내용이 판결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재판은 법관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역사가 판단하는 것"이라며, 청구 기각 판결은 재판부가 고민한 결과라고 했습니다.

이 대법관은 다만 "재판에 대해 외부에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라며 "모든 것은 재판부로부터 비롯돼야 하지, 행정처에서 거꾸로 하는 건 아닌 것이다. 모든 것은 재판부의 의도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 것"이라고 문건 전달은 부적절했다고 인정했습니다.

이 대법관은 증언을 마친 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재판부께서 중요한 사건 재판하시고 고생 많이 하신다 이런 생각을 했다"라며 "건강 유념들 하시고 잘 마무리해서 좋은 재판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한편 임 전 차장의 재판에는 이달 말 노정희 대법관도 증인으로 소환될 예정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현직 대법관도 ‘사법농단’ 재판 증인석에…이동원 대법관, 임종헌 재판서 증언
    • 입력 2020-08-11 13:18:34
    • 수정2020-08-11 14:06:43
    사회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돼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현직 대법관이 증인으로 나와 증언했습니다. 현직 대법관이 형사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한 사례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동원 대법관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재판장 윤종섭) 심리로 열린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 혐의 등 사건 재판에 오늘(11일) 오전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이 대법관은 재판 시작 20분 전쯤 경호 인력없이 혼자 법정 출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오늘 재판에 임하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대법관은 "법원이 증인 출석을 요구하면 누구든지 이에 응해야 한다"라며 "대법관으로서가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성실하게 증언하기 위해 오게 됐다"라고 답했습니다. 또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는 "모든 일이 정의롭게 공평하게 잘 해결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대법관은 대법관이 되기 전인 2016년 4월 서울고등법원 행정6부 재판장으로 근무하면서,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통진당) 소속 전 국회의원 5명이 "국회의원 지위가 있음을 확인해달라"고 국가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이 대법관은 해당 사건의 주심이었는데, 해당 판결은 "(통진당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 결정이) 헌법재판소에 맡겨져 있는 헌법 해석·적용에 근거해 이뤄진 결정인 이상, 법원 등 다른 국가 기관은 이를 다툴 수 없고 이에 대해 다시 심리·판단할 수도 없다"라며 소송을 각하한 1심 판결과 결론을 달리했습니다.

검찰은 임종헌 전 차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공모해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재판 관련 자료를 이 대법관에게 전달하고 검토하게 함으로써 법관에게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고, 법관의 독립된 재판권 행사를 방해했다고 공소장에 적었습니다.

이 대법관이 판결을 선고하기 전인 2016년 3월, 이민걸 당시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이 이 대법관을 만나 식사를 하면서 통진당 행정소송과 관련된 문건을 전달한 점을 문제삼은 것입니다. 이 문건에는 통진당 의원들의 의원직 확인에 대한 재판권은 헌법재판소가 아닌 법원에 있고, 의원들이 직을 유지하거나 상실한다고 판결할 경우 어떤 논거로 뒷받침할 수 있는지 등을 검토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검찰은 이 문건이 법원행정처가 수립한 통진당 행정소송에 대한 "판단 방법"이라며, 문건을 재판 개입의 증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오늘 재판에서는 문제의 문건 전달 경위와 해당 문건이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두고, 이 대법관에 대한 증인신문이 1시간 40분 가량 이어졌습니다.

이 대법관은 이민걸 기조실장과 사법연수원 때부터 짝이여서 매우 친한 사이였다면서, 2016년 2월 서울고등법원으로 자신이 전보된 이후 기조실장이 "식사나 같이 하자"고 연락해 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또 식사 자리에서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끝 무렵에 기조실장에게 문제의 문건을 건네 받았고, 당시 기조실장이 '통진당 해산 결정에 따라 소속 의원들에 대해 지위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것은 법원이 알아서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인데, 아예 법원에 재판권이 없다고 하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아?'라는 뉘앙스로 말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재판기일이 언제쯤 지정될 것 같냐고 물었다고도 했습니다.

이 대법관은 자신이 심리 중인 사건에 대해 제3자가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라면서, 당시 기조실장의 말은 전 통진당 의원들의 소송을 각하한 서울행정법원 1심 판결을 두고 한 이야기라고 이해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묻는 질문에 이 대법관은 "판사는 사건에 대한 제3자로부터의 접근이 오게 되면 긴장하게 되고 침묵하게 된다"라며 "잘 검토해볼게요"라는 정도로 이야기했을 수 있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또 "기조실장은 법원의 살림을 주로 하는 사람"이라며, 기조실장이 정책 결정 등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와의 관계에 있어 (사건에) 관심이 있나 보구나"라는 정도로 받아들였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에서 이 사건에 관심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냐는 검사의 질문에는 그때는 그런 생각을 안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기조실장과의 식사 후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 10쪽 내외의 문건을 한 번 읽어봤지만, 그 내용이 와닿지 않아 더이상 참고하지 않았고 같은 재판부의 판사들에게도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증언했습니다. 또 문건을 읽지 않았어도 되는 거 아니냐는 검사의 질문에는 수긍하면서, 당시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 의원의 지위까지 상실되는 것이 맞는가'라는 법리적 문제를 고심하던 중 해당 문건에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을까 싶어 읽어봤다고 했습니다. "문건을 안 읽었으면 떳떳할 텐데 그걸 읽어서 더 면목이 없게 됐다"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이 대법관은 기조실장이 전달한 문건 때문에 심적인 부담감을 느끼진 않았고, 그 문건 내용이 판결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재판은 법관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역사가 판단하는 것"이라며, 청구 기각 판결은 재판부가 고민한 결과라고 했습니다.

이 대법관은 다만 "재판에 대해 외부에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라며 "모든 것은 재판부로부터 비롯돼야 하지, 행정처에서 거꾸로 하는 건 아닌 것이다. 모든 것은 재판부의 의도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 것"이라고 문건 전달은 부적절했다고 인정했습니다.

이 대법관은 증언을 마친 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재판부께서 중요한 사건 재판하시고 고생 많이 하신다 이런 생각을 했다"라며 "건강 유념들 하시고 잘 마무리해서 좋은 재판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한편 임 전 차장의 재판에는 이달 말 노정희 대법관도 증인으로 소환될 예정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