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200mm 넘는 폭우에 잠긴 내 차…주차장이 물어줄까?

입력 2020.08.1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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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폭우가 이어지면서 침수 피해가 커지고 있습니다. 갑자기 내린 폭우로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차가 망가진 경우, 주차장의 책임은 얼마나 될까요. 갑자기 내린 폭우를 이른바 '불가항력'의 사유로 볼 수 있을까요? 손님이 주차장 측에 연락 가능한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았고, 심지어 주차장 측에서 차량 소유자에게 연락을 취하려 하지도 않았다면 또 어떨까요. 차량 주인이 가입한 보험사가 주차장 측에 구상금을 청구한 사건에서 이같은 사안이 쟁점이 돼 소개해 드립니다.

■새벽 6시부터 내린 폭우에 KTX역 주차장 침수…귀책사유 있을까

A 씨는 지난 2017년 7월 15일 저녁 KTX 열차를 이용하기 위해 충남 아산시 소재 천안아산역 KTX 주차장에 1일치 주차요금 7,000원을 내고 자신의 차량을 주차해 두었습니다. A 씨는 케이비손해보험과 자동차 보험계약을 맺고 있었습니다. 이 주차장을 운영하는 B 업체는 현대해상의 배상책임보험계약에 가입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B 업체와 아산시 사이에 맺어진 아산시 공영노상(유료)주차장 위·수탁계약에 따르면, '재난·재해 시 홍수 등이 예상되는 경우 B 업체는 차량통제 및 인명·차량대피 등 특별조치를 하여 재해를 예방하며 신속·공정하게 처리의무를 다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었습니다.

주차 당시 A 씨는 차량에 연락처를 남기거나 B 업체에 알려주지 않았고, B 업체 또한 주차 당시 A 씨에게 연락처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인 7월 16일 아침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아산시에 내린 비의 양은 232.7mm에 이르렀고, 아침 6시부터 11시까지 집중적으로 비가 내렸습니다. 오전 9시쯤 충남 아산시엔 호우주의보가 발령됐습니다.

그런데 B 업체는 사고 발생 당시 A 씨에게 연락을 취하려고 하지 않았고, A 씨의 차량을 비롯해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에 대해 소유주와의 연락이나 견인조치 등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A 씨의 차량은 물에 침수되어 못쓰게 됐고, 케이비손해보험은 A 씨와의 보험계약에 따라 원고 차량 가액 2,689만 원을 지급하고 자차매각비용 844만여 원을 환입해 결국 1,844만여 원을 지출하게 됐습니다.

케이비 측은 주차장을 관리하는 B 업체와 업체가 가입한 현대해상화재보험을 상대로 1,844만 원 상당의 구상금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습니다.

케이비 측은 "B 업체가 원고 차량을 보관하는 중에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여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으므로 A 씨에 대하여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고, 피고 현대해상화재보험은 보험자로서 손해배상금 상당의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B 업체와 현대해상은 "사고 발생일 하루 동안 232.7mm의 폭우가 내렸고 오전 6시부터 11시까지 집중적으로 비가 내려 주차장이 침수되었는 바 이를 전혀 예상할 수 없었고,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침수의 원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배수시설에 대한 관리 의무는 아산시가 부담하고 있으며, A 씨가 피고 측에 연락 가능한 전화번호 등을 알려주지 아니하여 차량 대피연락마저 취하지 못한 것이어서 결국 사고는 불가항력적 사유에 의한 것으로 B 업체의 귀책사유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 "불가항력 사고 아냐…주차장이 주의의무 태만"

이 재판은 소액사건이었고, 1심 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2심에서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나면서 결론이 뒤집혔습니다.

2심인 서울중앙지법 제6-2민사부(부장판사 이성호)는 "사고가 불가항력적 사유에 의한 것이라거나 피고 B 업체가 원고 차량의 보관에 관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태만히 하지 아니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B 업체는 특히 대중교통수단인 KTX를 이용하려는 자들을 주 대상으로 하여 공영주차장인 이 사건 주차장을 유료로 운영하여 왔는바, 이 사건 주차장에 주차한 원고차량의 소유자 등은 피고 B 업체가 이 사건 주차장의 운영자로서 침수 등으로 인하여 차량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신뢰하였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법원은 또 "이 사건 주차장에 설치된 배수관은 인근 장재천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장재천이 범람할 경우 이 사건 주차장 역시 침수될 것을 예상할 수 있으며, 장재천이 범람하거나 인근이 침수된 적이 있으므로 유료의 공영주차장을 운영하는 피고 업체로서는 인근 도시 및 이 사건 주차장이 있는 아산시에 호우특보가 내려진 경우라면 미리 홍수 등으로 주차된 차량이 침수될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법원은 이어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시기는 강수량이 많은 여름이었으며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름철 홍수 등을 예상할 수 있었던 이상, 홍수 등에 대비할 준비를 함이 타당하다 할 것인데 피고 B 업체가 침수 등에 대응하는 준비를 미리 하였다거나 대책을 강구해 놓았다고 보기 어렵고 이러한 대비를 하였음을 인정할 아무런 자료도 없다"며 "피고들의 주장과 같이 짧은 시간에 걸쳐 쏟아진 폭우로 인하여 모든 피해를 예방하는데 대응할 시간이 부족하였다고 하더라도 차량 소유자에 대한 연락을 취하여 차를 이동시키거나 견인조치 등을 하여 가능한 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지 못할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울러 법원은 "피고 업체는 아산시와 공영노상(유료)주차장 위·수탁계약을 체결하면서 홍수 등으로 인한 재해가 예상되는 경우 특별조치를 하여 재해를 예방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으므로, 단순히 배수시설이 온전히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는 사정만으로 피고 측의 책임을 아산시에게 모두 전가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 "주차장이 대응했어도 피해 전부 못 막았을 수 있다" 손해액은 30%만

그러나 법원은 차주 측이 청구한 손해액을 전부 인정하진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가 입은 손해가 자연력과 가해자의 과실행위가 경합되어 발생된 경우 가해자의 배상범위는 손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견지에서 손해발생에 대하여 자연력이 기여하였다고 인정되는 부분을 공제한 나머지 부분으로 제한함이 상당하다"고 봐 왔습니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이 사건 사고 당시 폭우가 피고에게 불가항력적 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주차장의 침수가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쏟아진 폭우로 인한 것이고 이에 대하여 B 업체가 빠르게 대응하였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에 대하여 모두 연락을 취하여 이동시키거나 견인하는 등의 조치를 다하지 못하여 피해의 전부를 막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다"며 "손해의 공평 분담의 견지에서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원고 차량이 입은 피해에 대한 피고 업체의 책임 및 그에 상응하여 피고 현대해상화재보험이 지급하여야 하는 보험금의 지급 의무를 30%로 제한함이 상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따라서 A업체가 청구한 금액 1,844만원의 30%인 553만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결론냈습니다. 이 사건은 지난해 하반기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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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11 07:01:08
    취재K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폭우가 이어지면서 침수 피해가 커지고 있습니다. 갑자기 내린 폭우로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차가 망가진 경우, 주차장의 책임은 얼마나 될까요. 갑자기 내린 폭우를 이른바 '불가항력'의 사유로 볼 수 있을까요? 손님이 주차장 측에 연락 가능한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았고, 심지어 주차장 측에서 차량 소유자에게 연락을 취하려 하지도 않았다면 또 어떨까요. 차량 주인이 가입한 보험사가 주차장 측에 구상금을 청구한 사건에서 이같은 사안이 쟁점이 돼 소개해 드립니다.

■새벽 6시부터 내린 폭우에 KTX역 주차장 침수…귀책사유 있을까

A 씨는 지난 2017년 7월 15일 저녁 KTX 열차를 이용하기 위해 충남 아산시 소재 천안아산역 KTX 주차장에 1일치 주차요금 7,000원을 내고 자신의 차량을 주차해 두었습니다. A 씨는 케이비손해보험과 자동차 보험계약을 맺고 있었습니다. 이 주차장을 운영하는 B 업체는 현대해상의 배상책임보험계약에 가입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B 업체와 아산시 사이에 맺어진 아산시 공영노상(유료)주차장 위·수탁계약에 따르면, '재난·재해 시 홍수 등이 예상되는 경우 B 업체는 차량통제 및 인명·차량대피 등 특별조치를 하여 재해를 예방하며 신속·공정하게 처리의무를 다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었습니다.

주차 당시 A 씨는 차량에 연락처를 남기거나 B 업체에 알려주지 않았고, B 업체 또한 주차 당시 A 씨에게 연락처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인 7월 16일 아침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아산시에 내린 비의 양은 232.7mm에 이르렀고, 아침 6시부터 11시까지 집중적으로 비가 내렸습니다. 오전 9시쯤 충남 아산시엔 호우주의보가 발령됐습니다.

그런데 B 업체는 사고 발생 당시 A 씨에게 연락을 취하려고 하지 않았고, A 씨의 차량을 비롯해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에 대해 소유주와의 연락이나 견인조치 등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A 씨의 차량은 물에 침수되어 못쓰게 됐고, 케이비손해보험은 A 씨와의 보험계약에 따라 원고 차량 가액 2,689만 원을 지급하고 자차매각비용 844만여 원을 환입해 결국 1,844만여 원을 지출하게 됐습니다.

케이비 측은 주차장을 관리하는 B 업체와 업체가 가입한 현대해상화재보험을 상대로 1,844만 원 상당의 구상금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습니다.

케이비 측은 "B 업체가 원고 차량을 보관하는 중에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여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으므로 A 씨에 대하여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고, 피고 현대해상화재보험은 보험자로서 손해배상금 상당의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B 업체와 현대해상은 "사고 발생일 하루 동안 232.7mm의 폭우가 내렸고 오전 6시부터 11시까지 집중적으로 비가 내려 주차장이 침수되었는 바 이를 전혀 예상할 수 없었고,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침수의 원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배수시설에 대한 관리 의무는 아산시가 부담하고 있으며, A 씨가 피고 측에 연락 가능한 전화번호 등을 알려주지 아니하여 차량 대피연락마저 취하지 못한 것이어서 결국 사고는 불가항력적 사유에 의한 것으로 B 업체의 귀책사유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 "불가항력 사고 아냐…주차장이 주의의무 태만"

이 재판은 소액사건이었고, 1심 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2심에서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나면서 결론이 뒤집혔습니다.

2심인 서울중앙지법 제6-2민사부(부장판사 이성호)는 "사고가 불가항력적 사유에 의한 것이라거나 피고 B 업체가 원고 차량의 보관에 관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태만히 하지 아니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B 업체는 특히 대중교통수단인 KTX를 이용하려는 자들을 주 대상으로 하여 공영주차장인 이 사건 주차장을 유료로 운영하여 왔는바, 이 사건 주차장에 주차한 원고차량의 소유자 등은 피고 B 업체가 이 사건 주차장의 운영자로서 침수 등으로 인하여 차량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신뢰하였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법원은 또 "이 사건 주차장에 설치된 배수관은 인근 장재천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장재천이 범람할 경우 이 사건 주차장 역시 침수될 것을 예상할 수 있으며, 장재천이 범람하거나 인근이 침수된 적이 있으므로 유료의 공영주차장을 운영하는 피고 업체로서는 인근 도시 및 이 사건 주차장이 있는 아산시에 호우특보가 내려진 경우라면 미리 홍수 등으로 주차된 차량이 침수될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법원은 이어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시기는 강수량이 많은 여름이었으며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름철 홍수 등을 예상할 수 있었던 이상, 홍수 등에 대비할 준비를 함이 타당하다 할 것인데 피고 B 업체가 침수 등에 대응하는 준비를 미리 하였다거나 대책을 강구해 놓았다고 보기 어렵고 이러한 대비를 하였음을 인정할 아무런 자료도 없다"며 "피고들의 주장과 같이 짧은 시간에 걸쳐 쏟아진 폭우로 인하여 모든 피해를 예방하는데 대응할 시간이 부족하였다고 하더라도 차량 소유자에 대한 연락을 취하여 차를 이동시키거나 견인조치 등을 하여 가능한 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지 못할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울러 법원은 "피고 업체는 아산시와 공영노상(유료)주차장 위·수탁계약을 체결하면서 홍수 등으로 인한 재해가 예상되는 경우 특별조치를 하여 재해를 예방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으므로, 단순히 배수시설이 온전히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는 사정만으로 피고 측의 책임을 아산시에게 모두 전가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 "주차장이 대응했어도 피해 전부 못 막았을 수 있다" 손해액은 30%만

그러나 법원은 차주 측이 청구한 손해액을 전부 인정하진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가 입은 손해가 자연력과 가해자의 과실행위가 경합되어 발생된 경우 가해자의 배상범위는 손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견지에서 손해발생에 대하여 자연력이 기여하였다고 인정되는 부분을 공제한 나머지 부분으로 제한함이 상당하다"고 봐 왔습니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이 사건 사고 당시 폭우가 피고에게 불가항력적 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주차장의 침수가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쏟아진 폭우로 인한 것이고 이에 대하여 B 업체가 빠르게 대응하였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에 대하여 모두 연락을 취하여 이동시키거나 견인하는 등의 조치를 다하지 못하여 피해의 전부를 막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다"며 "손해의 공평 분담의 견지에서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원고 차량이 입은 피해에 대한 피고 업체의 책임 및 그에 상응하여 피고 현대해상화재보험이 지급하여야 하는 보험금의 지급 의무를 30%로 제한함이 상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따라서 A업체가 청구한 금액 1,844만원의 30%인 553만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결론냈습니다. 이 사건은 지난해 하반기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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