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 잔혹사]⑥ 사람 잡는 ‘집배부하량시스템·겸배’

입력 2020.05.02 (09:00) 수정 2020.05.0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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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시간 일하며 1.8분 휴식…집배부하량시스템 '노동 착취'

집배부하량시스템 표준시간 산출 기준집배부하량시스템 표준시간 산출 기준

우체국에는 '집배부하량시스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2017년 도입됐습니다. 이 시스템은 우편물 배달 과정마다 각각 걸리는 시간을 정해놓았습니다. 배달 과정을 81개로 쪼개 놨으니 매우 세분화 돼 있는 거죠.

예를 들어, 등기우편물 한 통을 배달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앞뒤 과정 다 자르고 집배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장소에 도착했을 때부터 계산해 보겠습니다. 오토바이에서 내려 배달할 장소까지 걸어가는 데 최대 112.3초. 이 등기우편물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데 28초. 그러니까 2분 20초 안에 등기우편물 한 통을 배달해야 하는 겁니다.

배달에 걸리는 이 시간을 기반으로 매달 집배원별로 노동강도가 계산됩니다. 1을 기준으로 1보다 높으면 노동강도가 세다는 것을, 반대로 낮으면 그만큼 노동강도가 약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도입되고 나서 곳곳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집배원들이 점심을 거르고, 쉬지 않고 뛰어다녀도 시스템이 정해 놓은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했습니다.

집배 과정을 동행 취재했을 때 일입니다. 신용카드가 담긴 등기우편물을 배달하는데 배달지에 사람이 없었습니다. 동행했던 집배원이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어렵게 고객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신분증이 없어 우편물을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신분증을 확인하고, 우편물을 전달했는데, 걸린 시간은 12분 정도였습니다. 표준 시간보다 5배 넘게 걸린 거죠. 이 시스템에는 이런 돌발 상황에 대한 시간은 고려돼 있지 않았습니다.

더 치명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바로 여유율입니다. 여유율은 화장실을 가거나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전 직종을 아울러 국제노동기구(ILO)가 권고하는 최소 여유율은 9%. 그런데 이 시스템에는 단 3%만 적용됐습니다. 3%는 한 시간 일하면 1.8분 쉴 수 있는 수치입니다.

육체노동이 많을수록 높은 여유율이 부여됩니다. 제조업의 경우 20% 정도, 중공업의 경우 30% 정도가 적용되고 있다니 여유율 3%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수치인지 짐작이 가시죠?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집배원은 집배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어떤 집배원은 이 시스템을 '노동착취'의 원흉이라고 표현했습니다.

■ 과로와 갈등의 원흉 된 상부상조 '겸배'


우체국에는 '겸배'라는 오래된 관행이 있습니다. 겸배는 결원이 생길 경우, 같은 팀 동료들이 해당 물량을 '대신 겸해서 배달한다'는 우체국 은어입니다. 공식 이름은 '집배 업무 대행'. 대체 인력이 없는 우체국의 특별한 노동 문화입니다.

겸배는 원래 집배원들끼리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상부상조'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 겸배가 동료들 간 불화의 원인이 되고있습니다. 앞서 설명해 드렸던 집배부하량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가뜩이나 자기 업무도 힘든데, 남의 일까지 대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추가 노동에 대한 보상도 그림의 떡입니다. <공무원 수당 규정> 14조 2항을 보면 업무 대행 수당을 받으려면 30일을 연속해서 겸배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일해서 나오는 수당은 20만 원인데, 이 돈이 오롯이 내 주머니로 들어오는 것도 아닙니다. 겸배에 참가한 집배원들끼리 나눠 가져야 하거든요.

사실 전국 집배원 대부분이 겸배를 합니다. 사람이 일하는 곳이다 보니 휴가나 경조사, 병가 등 결원이 계속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30일 연속 겸배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큰 병이나 사고로 인한 결원이 아니면 30일 연속 겸배를 할 일이 없는거죠.

이렇다 보니 지난 3년 동안 '겸배 수당'을 받은 집배원은 전체 집배원의 10%가 안 됩니다.

그런데 이 겸배라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KBS 탐사보도부가 직접 집배원 2명을 대상으로 실험해 봤는데요. 평상 업무를 하는 날과 겸배하는 날, 두 집배원의 에너지 소모는 물론 과로 지수도 최대 5배까지 상승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옆의 동료가 다쳐도 동료 걱정대신 겸배할 걱정이 앞선다는 게 집배원들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 "근무환경 개선, 불만 줄었을 것" vs "불만이 없길 바라는 거겠죠"


우정본부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집배부하량시스템의 문제를 개선했다고 했습니다. 여유율을 12.5%로 늘려 턱없이 모자라던 휴식시간을 늘렸다고 설명합니다. 덕분에 집배원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204시간 줄었고, 그 결과 현재는 상당수 집배원들이 과거보다 나아졌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취재진에게 다시 인터뷰 해보라고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실제 집배원들의 생각은 어떨까?

지난달 오전 6시, 서울의 한 우체국. 취재진이 우체국에 도착하자 마자 우편물을 싣고 배달을 나가는 집배원이 목격됐습니다.

6시 30분이 넘자 꽤 많은 집배원들이 우체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우체국 안은 우편물을 분류하는 집배원들로 분주했습니다. 이 중에는 새벽 근무 지정을 받은 집배원도 있었지만, 근무명령을 받지 못해 무료 노동을 하고있는 '조기 출근자'들이 더 많았습니다.

6시 40분에 출근했다는 한 집배원은 "수당도 받지 못하는데 왜 일찍 출근해 일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배달 못 해요"라고 답했습니다.

또 다른 우체국도 가봤습니다. 집배원들이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오후 5시. 집배실 곳곳에서 컵라면을 먹는 집배원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곧 퇴근 시간인데 컵라면이라니,이유를 물었습니다. 컵라면을 먹던 집배원은 "점심이에요."라며 멋적게 웃었습니다.

우정본부의 권유대로 다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시스템이 개선돼 예전만큼 불만이 많지 않을 거라고 하던데..." 취재진의 질문에 짧은 답이 돌아왔습니다. "불만이 없길 바라는 거겠죠."

우정본부의 해명은 현실과 달랐습니다. 집배 현장은 여전히 고되고, 혹독했습니다.

KBS 탐사보도부는 오늘(5월 2일) 밤 8시 5분 KBS 1TV <시사기획 창> '살인노동2부-죽음의 숫자' 편을 통해 집배원 과로사를 둘러싼 은폐된 진실을 폭로합니다.

[연관 기사]
[집배원 잔혹사]① 年 693시간 더 노동…과로사·식물인간 속출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33724
[집배원 잔혹사]② 병가 중 독촉받다 극단적 선택…“사회적 타살”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34386
[집배원 잔혹사]③ 직무 탈진 ‘번아웃 증후군’ 5점 만점에 4.1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35347
[집배원 잔혹사]④ 돌연사 2배·자살 8배 증가…우체국은 ‘쉬쉬’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36275
[집배원 잔혹사]⑤ 46명 사망에 우정본부 “개인 특수 사례”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36922
[집배원 잔혹사]⑥ 사람 잡는 ‘집배부하량시스템·겸배’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37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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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배원 잔혹사]⑥ 사람 잡는 ‘집배부하량시스템·겸배’
    • 입력 2020-05-02 09:00:02
    • 수정2020-05-02 09:05:26
    탐사K


■ 1시간 일하며 1.8분 휴식…집배부하량시스템 '노동 착취'

집배부하량시스템 표준시간 산출 기준
우체국에는 '집배부하량시스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2017년 도입됐습니다. 이 시스템은 우편물 배달 과정마다 각각 걸리는 시간을 정해놓았습니다. 배달 과정을 81개로 쪼개 놨으니 매우 세분화 돼 있는 거죠.

예를 들어, 등기우편물 한 통을 배달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앞뒤 과정 다 자르고 집배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장소에 도착했을 때부터 계산해 보겠습니다. 오토바이에서 내려 배달할 장소까지 걸어가는 데 최대 112.3초. 이 등기우편물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데 28초. 그러니까 2분 20초 안에 등기우편물 한 통을 배달해야 하는 겁니다.

배달에 걸리는 이 시간을 기반으로 매달 집배원별로 노동강도가 계산됩니다. 1을 기준으로 1보다 높으면 노동강도가 세다는 것을, 반대로 낮으면 그만큼 노동강도가 약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도입되고 나서 곳곳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집배원들이 점심을 거르고, 쉬지 않고 뛰어다녀도 시스템이 정해 놓은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했습니다.

집배 과정을 동행 취재했을 때 일입니다. 신용카드가 담긴 등기우편물을 배달하는데 배달지에 사람이 없었습니다. 동행했던 집배원이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어렵게 고객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신분증이 없어 우편물을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신분증을 확인하고, 우편물을 전달했는데, 걸린 시간은 12분 정도였습니다. 표준 시간보다 5배 넘게 걸린 거죠. 이 시스템에는 이런 돌발 상황에 대한 시간은 고려돼 있지 않았습니다.

더 치명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바로 여유율입니다. 여유율은 화장실을 가거나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전 직종을 아울러 국제노동기구(ILO)가 권고하는 최소 여유율은 9%. 그런데 이 시스템에는 단 3%만 적용됐습니다. 3%는 한 시간 일하면 1.8분 쉴 수 있는 수치입니다.

육체노동이 많을수록 높은 여유율이 부여됩니다. 제조업의 경우 20% 정도, 중공업의 경우 30% 정도가 적용되고 있다니 여유율 3%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수치인지 짐작이 가시죠?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집배원은 집배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어떤 집배원은 이 시스템을 '노동착취'의 원흉이라고 표현했습니다.

■ 과로와 갈등의 원흉 된 상부상조 '겸배'


우체국에는 '겸배'라는 오래된 관행이 있습니다. 겸배는 결원이 생길 경우, 같은 팀 동료들이 해당 물량을 '대신 겸해서 배달한다'는 우체국 은어입니다. 공식 이름은 '집배 업무 대행'. 대체 인력이 없는 우체국의 특별한 노동 문화입니다.

겸배는 원래 집배원들끼리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상부상조'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 겸배가 동료들 간 불화의 원인이 되고있습니다. 앞서 설명해 드렸던 집배부하량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가뜩이나 자기 업무도 힘든데, 남의 일까지 대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추가 노동에 대한 보상도 그림의 떡입니다. <공무원 수당 규정> 14조 2항을 보면 업무 대행 수당을 받으려면 30일을 연속해서 겸배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일해서 나오는 수당은 20만 원인데, 이 돈이 오롯이 내 주머니로 들어오는 것도 아닙니다. 겸배에 참가한 집배원들끼리 나눠 가져야 하거든요.

사실 전국 집배원 대부분이 겸배를 합니다. 사람이 일하는 곳이다 보니 휴가나 경조사, 병가 등 결원이 계속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30일 연속 겸배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큰 병이나 사고로 인한 결원이 아니면 30일 연속 겸배를 할 일이 없는거죠.

이렇다 보니 지난 3년 동안 '겸배 수당'을 받은 집배원은 전체 집배원의 10%가 안 됩니다.

그런데 이 겸배라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KBS 탐사보도부가 직접 집배원 2명을 대상으로 실험해 봤는데요. 평상 업무를 하는 날과 겸배하는 날, 두 집배원의 에너지 소모는 물론 과로 지수도 최대 5배까지 상승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옆의 동료가 다쳐도 동료 걱정대신 겸배할 걱정이 앞선다는 게 집배원들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 "근무환경 개선, 불만 줄었을 것" vs "불만이 없길 바라는 거겠죠"


우정본부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집배부하량시스템의 문제를 개선했다고 했습니다. 여유율을 12.5%로 늘려 턱없이 모자라던 휴식시간을 늘렸다고 설명합니다. 덕분에 집배원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204시간 줄었고, 그 결과 현재는 상당수 집배원들이 과거보다 나아졌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취재진에게 다시 인터뷰 해보라고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실제 집배원들의 생각은 어떨까?

지난달 오전 6시, 서울의 한 우체국. 취재진이 우체국에 도착하자 마자 우편물을 싣고 배달을 나가는 집배원이 목격됐습니다.

6시 30분이 넘자 꽤 많은 집배원들이 우체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우체국 안은 우편물을 분류하는 집배원들로 분주했습니다. 이 중에는 새벽 근무 지정을 받은 집배원도 있었지만, 근무명령을 받지 못해 무료 노동을 하고있는 '조기 출근자'들이 더 많았습니다.

6시 40분에 출근했다는 한 집배원은 "수당도 받지 못하는데 왜 일찍 출근해 일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배달 못 해요"라고 답했습니다.

또 다른 우체국도 가봤습니다. 집배원들이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오후 5시. 집배실 곳곳에서 컵라면을 먹는 집배원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곧 퇴근 시간인데 컵라면이라니,이유를 물었습니다. 컵라면을 먹던 집배원은 "점심이에요."라며 멋적게 웃었습니다.

우정본부의 권유대로 다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시스템이 개선돼 예전만큼 불만이 많지 않을 거라고 하던데..." 취재진의 질문에 짧은 답이 돌아왔습니다. "불만이 없길 바라는 거겠죠."

우정본부의 해명은 현실과 달랐습니다. 집배 현장은 여전히 고되고, 혹독했습니다.

KBS 탐사보도부는 오늘(5월 2일) 밤 8시 5분 KBS 1TV <시사기획 창> '살인노동2부-죽음의 숫자' 편을 통해 집배원 과로사를 둘러싼 은폐된 진실을 폭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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