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갈등 아니라지만…‘화성 사건’ 둘러싼 검경의 엇박자

입력 2019.12.12 (10:15) 수정 2019.12.1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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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檢, '화성 8차' 직접 조사
"경찰이 자료 안 줬다"
警 "이춘재 이감 몰랐다"
윤 씨 측 "오해 풀고 협력했으면"

어제(11일) 오전 수원지검이 갑자기 공지를 했다. 오후 2시에 화성연쇄살인사건 관련 브리핑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1일부터 법무부 훈령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이 시행된 이후 검찰이 될 수 있으면 사건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는 걸 고려하면 이례적인 브리핑이었다.

검찰은 브리핑에서 범인으로 잡혀 20년 동안 옥살이를 한 윤 모 씨가 억울하다며 재심을 청구한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을 검찰이 직접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경찰이 지난 9월 중순부터 3달 가까이 수사하고 있는 사건이라 검찰이 뛰어들면 검경 갈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만했다.

실제 브리핑에서도 검경 갈등이 직접 조사 배경이냐는 질문이 나왔는데, 검찰은 그렇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검찰의 직접 조사를 전해 들은 경찰도 갈등은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검찰 발표 내용과 수사 관련 정황에는 '검경의 엇박자'가 드러난다.


검찰 "윤 씨가 직접 조사 요청"

검찰은 직접 조사 착수 이유를 윤 씨의 요청이라고 밝혔다. "지난 4일 윤 씨로부터 검찰의 직접 수사를 통한 철저한 진실규명을 요청하는 수사촉구 의견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실제 윤 씨가 낸 의견서에는 "담당 검사께서는 직무상 범죄 관련 쟁점들을 면밀히 조사해 이와 관련된 의견을 가급적 분명히 밝혀줄 것으로 촉구한다"고 돼 있다. 또 "쟁점에 대한 사실 확인 및 판단들을 참고로 구체적인 의견서를 제출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도 돼 있다.

검찰의 발표 내용과 윤 씨의 의견서 내용을 비교해보면 의미가 미묘하게 다르다. 윤 씨가 담당 검사에게 면밀히 조사해달라고 하긴 했지만, 그 조사 방식을 검찰이 전담 조사팀을 꾸려서 하는 직접 조사를 특정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직접 조사 결정에 윤 씨의 의중보단 검찰의 의중이 더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검찰 "경찰이 자료 안 줘"

검찰은 직접 조사의 또 다른 이유로 경찰이 자료를 주지 않은 점을 꼽았다. 경찰이 30년 전 수사자료는 지난달 넘겨줬지만, 최근 수사한 자료는 여러 번 요청했는데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에 대해 수사가 덜 끝나서 자료를 주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기자가 보도를 위해 취재를 하고 있는데 옆 부서에서 취재 내용을 달라고 하면 취재가 덜 끝났는데도 주겠느냐"고 반문했다.

경찰 설명을 들으면 검찰이 상황에 맞지 않게 자료를 보챈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 부분은 검찰이 왜 서두르는지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법원이 재심 청구를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려면 검찰의 의견서가 필요하다. 검찰은 이 의견서를 올해 안에 법원에 내는 게 목표다. 재심은 검찰의 기소를 뒤집는 절차라 보통 검찰은 소극적인데, 이 사건에선 재심을 적극 돕고 있는 셈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직접 조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윤 씨가 요청한 면밀한 조사를 위해선 경찰에서 자료가 와야 하는데 자료가 계속 안 오니까 직접 조사해서 자료를 확보하는 방안을 택한 것이다.

이러한 검찰의 의도를 전해 들은 경찰 관계자는 의견서를 내야 하는 검찰의 입장도 있으니 검찰의 직접 조사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왕 검찰의 상황을 이해하는 거라면, 자료 협조를 통해 검찰의 의견서 작성을 도왔으면 어땠을까.


경찰, 이춘재 이감 모르고 '헛걸음'

검찰은 직접 조사를 위해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이춘재를 수원구치소로 데려왔다. 지난주 중반쯤 법무부에 이감 요청을 했고, 지난 월요일에 결정돼 화요일에 이감이 이뤄졌다.

경찰은 지난 월요일(9일)에 부산에 내려가 이춘재를 접견 조사했다. 경찰 관계자 설명에 따르면 검찰은 이날 이춘재가 이감 신청을 한 사실을 경찰에 알려줬다. 그런데 이날은 이미 다음날(10일)에 이감하기로 결정이 났을 때였다. 그런데도 검찰은 이감 신청 사실만 알려주고 나머지는 알리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이춘재가 수원으로 온 화요일에 부산교도소를 찾았다가 이감된 걸 교도소 관계자에게 들었다.

경찰은 그동안 이춘재의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이춘재의 생활환경을 바꾸는 게 좋지 않다고 보고, 매번 부산까지 내려가는 수고를 감수했다. 그러나 검찰은 경찰과 상의 없이 이감을 신청했고, 이감된 걸 빨리 알리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에 미리 얘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사전에 얘기할 필요가 있느냐'며 "이감돼서 오면 경찰도 소환 조사하면 된다"고 말했다.


윤 씨 측 "오해 풀고 협력했으면"

이번 일을 두고 검찰과 경찰 모두 검경 갈등이 있는 건 아니라고 했지만, 일이 진행된 과정을 보면 검찰과 경찰이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식으로 일을 한 건 분명하다.

경찰은 의견서를 내야 하고 이를 빨리 내려고 하는 검찰의 의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음에도 수사가 덜 끝났다는 이유로 자료를 주지 않았다. 검찰은 석 달 가까이 이춘재를 조사하고 있는 경찰에 한마디 상의 없이 이춘재를 부산에서 수원으로 옮겼다. 상대의 사정보다는 우리 상황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깔린 일 처리다.

이 사건에서 우리의 상황보다 상대의 사정이 더 중요한 이유는 상대의 사정이 '철저한 진실규명'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과 검찰 모두 철저한 진실규명을 하는 게 목표라면 우리의 상황보다는 상대의 사정을 더 고려해서 진실규명을 향해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게 목표 달성에 더 효율적이다.

어제 검찰 브리핑 이후 검경 갈등 양상이 불거지자 윤 씨 측은 보도자료를 내서 검찰에 의견서를 낸 이유 등을 설명했다. 보도자료 마지막에는 "화성 8차 사건은 경찰, 검찰, 재심청구인, 언론 모두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오해는 풀고 서로 협력했으면 한다"는 당부까지 했다. 검경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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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갈등 아니라지만…‘화성 사건’ 둘러싼 검경의 엇박자
    • 입력 2019-12-12 10:15:51
    • 수정2019-12-12 10:15:57
    취재후·사건후
檢, '화성 8차' 직접 조사<br />"경찰이 자료 안 줬다"<br />警 "이춘재 이감 몰랐다"<br />윤 씨 측 "오해 풀고 협력했으면"
어제(11일) 오전 수원지검이 갑자기 공지를 했다. 오후 2시에 화성연쇄살인사건 관련 브리핑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1일부터 법무부 훈령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이 시행된 이후 검찰이 될 수 있으면 사건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는 걸 고려하면 이례적인 브리핑이었다.

검찰은 브리핑에서 범인으로 잡혀 20년 동안 옥살이를 한 윤 모 씨가 억울하다며 재심을 청구한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을 검찰이 직접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경찰이 지난 9월 중순부터 3달 가까이 수사하고 있는 사건이라 검찰이 뛰어들면 검경 갈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만했다.

실제 브리핑에서도 검경 갈등이 직접 조사 배경이냐는 질문이 나왔는데, 검찰은 그렇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검찰의 직접 조사를 전해 들은 경찰도 갈등은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검찰 발표 내용과 수사 관련 정황에는 '검경의 엇박자'가 드러난다.


검찰 "윤 씨가 직접 조사 요청"

검찰은 직접 조사 착수 이유를 윤 씨의 요청이라고 밝혔다. "지난 4일 윤 씨로부터 검찰의 직접 수사를 통한 철저한 진실규명을 요청하는 수사촉구 의견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실제 윤 씨가 낸 의견서에는 "담당 검사께서는 직무상 범죄 관련 쟁점들을 면밀히 조사해 이와 관련된 의견을 가급적 분명히 밝혀줄 것으로 촉구한다"고 돼 있다. 또 "쟁점에 대한 사실 확인 및 판단들을 참고로 구체적인 의견서를 제출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도 돼 있다.

검찰의 발표 내용과 윤 씨의 의견서 내용을 비교해보면 의미가 미묘하게 다르다. 윤 씨가 담당 검사에게 면밀히 조사해달라고 하긴 했지만, 그 조사 방식을 검찰이 전담 조사팀을 꾸려서 하는 직접 조사를 특정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직접 조사 결정에 윤 씨의 의중보단 검찰의 의중이 더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검찰 "경찰이 자료 안 줘"

검찰은 직접 조사의 또 다른 이유로 경찰이 자료를 주지 않은 점을 꼽았다. 경찰이 30년 전 수사자료는 지난달 넘겨줬지만, 최근 수사한 자료는 여러 번 요청했는데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에 대해 수사가 덜 끝나서 자료를 주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기자가 보도를 위해 취재를 하고 있는데 옆 부서에서 취재 내용을 달라고 하면 취재가 덜 끝났는데도 주겠느냐"고 반문했다.

경찰 설명을 들으면 검찰이 상황에 맞지 않게 자료를 보챈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 부분은 검찰이 왜 서두르는지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법원이 재심 청구를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려면 검찰의 의견서가 필요하다. 검찰은 이 의견서를 올해 안에 법원에 내는 게 목표다. 재심은 검찰의 기소를 뒤집는 절차라 보통 검찰은 소극적인데, 이 사건에선 재심을 적극 돕고 있는 셈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직접 조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윤 씨가 요청한 면밀한 조사를 위해선 경찰에서 자료가 와야 하는데 자료가 계속 안 오니까 직접 조사해서 자료를 확보하는 방안을 택한 것이다.

이러한 검찰의 의도를 전해 들은 경찰 관계자는 의견서를 내야 하는 검찰의 입장도 있으니 검찰의 직접 조사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왕 검찰의 상황을 이해하는 거라면, 자료 협조를 통해 검찰의 의견서 작성을 도왔으면 어땠을까.


경찰, 이춘재 이감 모르고 '헛걸음'

검찰은 직접 조사를 위해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이춘재를 수원구치소로 데려왔다. 지난주 중반쯤 법무부에 이감 요청을 했고, 지난 월요일에 결정돼 화요일에 이감이 이뤄졌다.

경찰은 지난 월요일(9일)에 부산에 내려가 이춘재를 접견 조사했다. 경찰 관계자 설명에 따르면 검찰은 이날 이춘재가 이감 신청을 한 사실을 경찰에 알려줬다. 그런데 이날은 이미 다음날(10일)에 이감하기로 결정이 났을 때였다. 그런데도 검찰은 이감 신청 사실만 알려주고 나머지는 알리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이춘재가 수원으로 온 화요일에 부산교도소를 찾았다가 이감된 걸 교도소 관계자에게 들었다.

경찰은 그동안 이춘재의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이춘재의 생활환경을 바꾸는 게 좋지 않다고 보고, 매번 부산까지 내려가는 수고를 감수했다. 그러나 검찰은 경찰과 상의 없이 이감을 신청했고, 이감된 걸 빨리 알리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에 미리 얘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사전에 얘기할 필요가 있느냐'며 "이감돼서 오면 경찰도 소환 조사하면 된다"고 말했다.


윤 씨 측 "오해 풀고 협력했으면"

이번 일을 두고 검찰과 경찰 모두 검경 갈등이 있는 건 아니라고 했지만, 일이 진행된 과정을 보면 검찰과 경찰이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식으로 일을 한 건 분명하다.

경찰은 의견서를 내야 하고 이를 빨리 내려고 하는 검찰의 의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음에도 수사가 덜 끝났다는 이유로 자료를 주지 않았다. 검찰은 석 달 가까이 이춘재를 조사하고 있는 경찰에 한마디 상의 없이 이춘재를 부산에서 수원으로 옮겼다. 상대의 사정보다는 우리 상황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깔린 일 처리다.

이 사건에서 우리의 상황보다 상대의 사정이 더 중요한 이유는 상대의 사정이 '철저한 진실규명'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과 검찰 모두 철저한 진실규명을 하는 게 목표라면 우리의 상황보다는 상대의 사정을 더 고려해서 진실규명을 향해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게 목표 달성에 더 효율적이다.

어제 검찰 브리핑 이후 검경 갈등 양상이 불거지자 윤 씨 측은 보도자료를 내서 검찰에 의견서를 낸 이유 등을 설명했다. 보도자료 마지막에는 "화성 8차 사건은 경찰, 검찰, 재심청구인, 언론 모두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오해는 풀고 서로 협력했으면 한다"는 당부까지 했다. 검경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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