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임기 반환점 돈 대통령에게> 발달장애인 엄마의 바람 “용기를 내주세요”

입력 2019.11.1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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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12일 '발달장애인 평생케어대책 발표회'에서 발언하는 김신애 씨

■ "휠체어 300만 원짜리 못 삽니다, 대통령님"
…발 동동 구른 장애인 엄마

김신애 씨는 중복 장애인 엄마입니다. 24살 딸은 학교를 졸업한 뒤 매일 집에만 있습니다. 김 씨는 이런 딸의 모습이 안타까워 시간을 쪼개 장애인복지 운동가로 나섰습니다. 경북 울진에서 서울까지 오가면서 국가가 나서달라고 호소한 게 15년이 넘었습니다. 아무리 두드려도 답을 받지 못하는 것에 웬만큼 익숙해질 법도 했습니다.

그런 김 씨가,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지난해 9월 청와대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평생 캐어 종합대책 발표회, 문재인 대통령 앞이었습니다.

"새벽 3시 반에 경북 울진에서 왔습니다. 제 딸이 23살이고요. 학교를 졸업하고 딸이 3년 동안 집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로서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열심히 부모 운동을 하고 이런 정책을 만들어 내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촛불도 같이 들었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기뻤습니다. 발달장애인 평생 캐어 종합대책 발표회에 올 때요, 가슴이 두근두근했습니다. 내용 잘 모릅니다. 정말 멋진 걸 발표하실 거로 생각했어요."

"딸은 최중증 중복 장애인입니다. 졸업 후에 집에만 있어서 근육이 다 말라가요. 왜 그런 내용이 없습니까. 최중증 중복장애인에 대해서 왜 한마디도 없습니까. 휠체어 300만 원짜리 못 삽니다. 물리치료 받을 데가 없어요. 저는 너무 화가 납니다. 들러리가 된 기분이에요. 새벽 3시 반에 아무것도 못 먹고 왔어요. 딸 경기약도 못 줬어요. 너무 답답합니다."

가슴이 두근두근했다가 너무 화가 났다는 김신애 씨의 절규에 그날, 문재인 대통령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부모님들은 발달장애인들 제도를 호소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빌기도 하고, 머리를 깎기도 하고, 삼보일배도 하고 그랬다", "그런 아픈 환경에서 우리 사회가 한 번이라도 따뜻하게 마음을 보여준 게 있는지, 그런 반성이 든다"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습니다.

김신애 씨의 호소를 들은 뒤 문재인 대통령이 답변하고 있다김신애 씨의 호소를 들은 뒤 문재인 대통령이 답변하고 있다

■ "내가 예산안을 들여다보게 될 줄이야…"

그 일이 있고 난 뒤 1년여 만에 김신애 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취임 후 2년 6개월, 임기 반환점을 맞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달라진 점은 있는지, 아직도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가 궁금했습니다.

김 씨의 딸은 낮에 집에서 장애인 활동 보조인의 도움을 받습니다. 부모가 집을 비울 때는 보조인이 집에 들러 딸을 돌봐줍니다. 고마운 일이기는 하지만, 응급 상황에 대비해 눈을 떼지 않고 돌봐주는 정도일 뿐, 자활이나 자립을 위한 복지와는 거리가 멉니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발달 장애인이 주간에 학습이나 운동 등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주간 활동 서비스가 생겼지만, 김 씨 딸은 서비스를 받기 어렵습니다. 경북 울진,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최중증 중복 장애인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여전히 답답합니다.

"외출은 주말에 2번, 복지관 가서 물리치료 두 번 받고 오는 게 다인 거죠. 엄마, 아빠가 집에 가면 업어주고 안아주고 주말에 용기 내면 가족 나들이 한번 할까 말까. 허리 수술을 두 번 받았고 목 디스크도 상당히 힘들거든요. 아무리 딸을 사랑해도 저희가 힘드니까 딸을 잘 안 데리고 나가게 돼요. 딸에게는 집이 감옥인데.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 계속 뭔가 요구하는데 잘되지 않고…."

발달장애인 종합대책 발표 후 1년여 만에 KBS 취재진과 만난 김신애 씨발달장애인 종합대책 발표 후 1년여 만에 KBS 취재진과 만난 김신애 씨

그래서 김 씨는 요즘 내년 예산안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복지란 건 결국 '돈'의 문제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장애인 단체들이 과거에는 잘 모르고 보건복지부만 찾아갔었다"면서 "이제는 돌아가는 것을 알고 기획재정부를 찾아간다"며 웃었습니다. 김 씨는 내년 예산안뿐 아니라 역대 정부 예산안까지 큰 흐름도 분석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복지 예산이 많이 늘어났다고 하는데 혹시 거짓말은 아닌가, 궁금해서였습니다.

"잘 들여다보니 우리나라 예산은 여전히 토목, 건축 위주고 산업과 발전이 우선이에요. 1970년대부터 그게 가장 큰 '파이'였고 지금도 SOC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게 없어요. 견고한 체계에서 1mm의 틈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됐어요. 경직성 예산이라는 건 아주 철저하게 법률로 만들어지잖아요. 거기에서 하나의 예산을 조정하고, 전체의 변화를 끌어내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특히나 관료들이 조금씩 움직이다 보니까 너무 더디고 진척도 안 돼요."

■ "용기를 좀 더 내주세요. 변화를 밀어붙여 주세요."

김신애 씨는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장애인 복지 공약을 보면서 가슴이 설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대가 컸던 만큼, 생각보다 더딘 속도에 실망감도 컸습니다. 그 과정에서 김 씨는 "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수준의 복지라는 것은 결국엔 모든 국민과 정부가 합의해야만 이뤄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이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도 이 정부 사람들은, 김 씨가 찾아가면 문을 열고 마주 앉아 얘기를 들어주는 것에 희망을 품는다고 했습니다.

김 씨에게 임기 절반을 남겨둔 문재인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용기를 내달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대통령이 이 세상을 책임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통령님, 세상에서 가장 살기가 힘든 사람들이 최중증 중복 장애인, 희귀 난치성 질환 환자 이런 사람들 아닐까요?"

"만약 조금 더 앞으로 잘하고 싶다면 용기를 좀 더 냈으면 좋겠다, 이 생각이 있어요. 많은 국민이 실제 변화를 요구하고 있잖아요. 큰 틀의 나라 기반 자체가 바뀌는 놀라운 서비스를 제안했지만 반영되는 예산은 늘 '시범'. 좀 더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주고 한다면 공무원들도 고민하겠죠. 저는 대통령이 강하게 변화를 밀어붙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난해 4월, 발달 장애인 부모들이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며 삼보일배하는 모습.지난해 4월, 발달 장애인 부모들이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며 삼보일배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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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심야심]<임기 반환점 돈 대통령에게> 발달장애인 엄마의 바람 “용기를 내주세요”
    • 입력 2019-11-12 08:05:49
    여심야심
지난해 9월 12일 '발달장애인 평생케어대책 발표회'에서 발언하는 김신애 씨

■ "휠체어 300만 원짜리 못 삽니다, 대통령님"
…발 동동 구른 장애인 엄마

김신애 씨는 중복 장애인 엄마입니다. 24살 딸은 학교를 졸업한 뒤 매일 집에만 있습니다. 김 씨는 이런 딸의 모습이 안타까워 시간을 쪼개 장애인복지 운동가로 나섰습니다. 경북 울진에서 서울까지 오가면서 국가가 나서달라고 호소한 게 15년이 넘었습니다. 아무리 두드려도 답을 받지 못하는 것에 웬만큼 익숙해질 법도 했습니다.

그런 김 씨가,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지난해 9월 청와대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평생 캐어 종합대책 발표회, 문재인 대통령 앞이었습니다.

"새벽 3시 반에 경북 울진에서 왔습니다. 제 딸이 23살이고요. 학교를 졸업하고 딸이 3년 동안 집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로서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열심히 부모 운동을 하고 이런 정책을 만들어 내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촛불도 같이 들었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기뻤습니다. 발달장애인 평생 캐어 종합대책 발표회에 올 때요, 가슴이 두근두근했습니다. 내용 잘 모릅니다. 정말 멋진 걸 발표하실 거로 생각했어요."

"딸은 최중증 중복 장애인입니다. 졸업 후에 집에만 있어서 근육이 다 말라가요. 왜 그런 내용이 없습니까. 최중증 중복장애인에 대해서 왜 한마디도 없습니까. 휠체어 300만 원짜리 못 삽니다. 물리치료 받을 데가 없어요. 저는 너무 화가 납니다. 들러리가 된 기분이에요. 새벽 3시 반에 아무것도 못 먹고 왔어요. 딸 경기약도 못 줬어요. 너무 답답합니다."

가슴이 두근두근했다가 너무 화가 났다는 김신애 씨의 절규에 그날, 문재인 대통령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부모님들은 발달장애인들 제도를 호소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빌기도 하고, 머리를 깎기도 하고, 삼보일배도 하고 그랬다", "그런 아픈 환경에서 우리 사회가 한 번이라도 따뜻하게 마음을 보여준 게 있는지, 그런 반성이 든다"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습니다.

김신애 씨의 호소를 들은 뒤 문재인 대통령이 답변하고 있다
■ "내가 예산안을 들여다보게 될 줄이야…"

그 일이 있고 난 뒤 1년여 만에 김신애 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취임 후 2년 6개월, 임기 반환점을 맞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달라진 점은 있는지, 아직도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가 궁금했습니다.

김 씨의 딸은 낮에 집에서 장애인 활동 보조인의 도움을 받습니다. 부모가 집을 비울 때는 보조인이 집에 들러 딸을 돌봐줍니다. 고마운 일이기는 하지만, 응급 상황에 대비해 눈을 떼지 않고 돌봐주는 정도일 뿐, 자활이나 자립을 위한 복지와는 거리가 멉니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발달 장애인이 주간에 학습이나 운동 등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주간 활동 서비스가 생겼지만, 김 씨 딸은 서비스를 받기 어렵습니다. 경북 울진,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최중증 중복 장애인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여전히 답답합니다.

"외출은 주말에 2번, 복지관 가서 물리치료 두 번 받고 오는 게 다인 거죠. 엄마, 아빠가 집에 가면 업어주고 안아주고 주말에 용기 내면 가족 나들이 한번 할까 말까. 허리 수술을 두 번 받았고 목 디스크도 상당히 힘들거든요. 아무리 딸을 사랑해도 저희가 힘드니까 딸을 잘 안 데리고 나가게 돼요. 딸에게는 집이 감옥인데.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 계속 뭔가 요구하는데 잘되지 않고…."

발달장애인 종합대책 발표 후 1년여 만에 KBS 취재진과 만난 김신애 씨
그래서 김 씨는 요즘 내년 예산안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복지란 건 결국 '돈'의 문제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장애인 단체들이 과거에는 잘 모르고 보건복지부만 찾아갔었다"면서 "이제는 돌아가는 것을 알고 기획재정부를 찾아간다"며 웃었습니다. 김 씨는 내년 예산안뿐 아니라 역대 정부 예산안까지 큰 흐름도 분석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복지 예산이 많이 늘어났다고 하는데 혹시 거짓말은 아닌가, 궁금해서였습니다.

"잘 들여다보니 우리나라 예산은 여전히 토목, 건축 위주고 산업과 발전이 우선이에요. 1970년대부터 그게 가장 큰 '파이'였고 지금도 SOC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게 없어요. 견고한 체계에서 1mm의 틈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됐어요. 경직성 예산이라는 건 아주 철저하게 법률로 만들어지잖아요. 거기에서 하나의 예산을 조정하고, 전체의 변화를 끌어내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특히나 관료들이 조금씩 움직이다 보니까 너무 더디고 진척도 안 돼요."

■ "용기를 좀 더 내주세요. 변화를 밀어붙여 주세요."

김신애 씨는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장애인 복지 공약을 보면서 가슴이 설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대가 컸던 만큼, 생각보다 더딘 속도에 실망감도 컸습니다. 그 과정에서 김 씨는 "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수준의 복지라는 것은 결국엔 모든 국민과 정부가 합의해야만 이뤄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이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도 이 정부 사람들은, 김 씨가 찾아가면 문을 열고 마주 앉아 얘기를 들어주는 것에 희망을 품는다고 했습니다.

김 씨에게 임기 절반을 남겨둔 문재인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용기를 내달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대통령이 이 세상을 책임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통령님, 세상에서 가장 살기가 힘든 사람들이 최중증 중복 장애인, 희귀 난치성 질환 환자 이런 사람들 아닐까요?"

"만약 조금 더 앞으로 잘하고 싶다면 용기를 좀 더 냈으면 좋겠다, 이 생각이 있어요. 많은 국민이 실제 변화를 요구하고 있잖아요. 큰 틀의 나라 기반 자체가 바뀌는 놀라운 서비스를 제안했지만 반영되는 예산은 늘 '시범'. 좀 더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주고 한다면 공무원들도 고민하겠죠. 저는 대통령이 강하게 변화를 밀어붙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난해 4월, 발달 장애인 부모들이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며 삼보일배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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