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장학금’에 켜진 대학가 촛불, ‘교수 갑질’도 한몫

입력 2019.11.10 (08:01) 수정 2019.11.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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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대학가 촛불 켠 불공정 요인은 장학금과 논문
조국 사태 분노 배경엔 '부정부패한 대학원'도 한몫
대학원 진학률 높은 상위권 대학생들, 문제의식 공유

공정(公正). 자못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 조국 사태를 거치며 사회적 의제로 등장했습니다. 시사기획 창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는 공정이 무엇인지, 특히 청년들의 요구를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에서 파악해보고자 했습니다.

취재진은 공정을 의제로 제시한 주체가 장관 임명 반대 대학가 촛불집회 참가자들이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8월 23일부터 10월 3일까지 13차례 열린 대학가 촛불집회에서 나온 2030세대의 발언 96건을 전체를 데이터 분석 전문업체인 아르스 프락시아를 통해 네트워크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대학생들을 분노하게 한 건 대입 비리 의혹보다는 '장학금'과 '논문'임을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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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의 분노를 촉발시킨 '장학금'과 '논문'


발언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조국'(295회), '정의'(168회), '법무부 장관'(167회)의 순이었습니다. 이를 연결망으로 나타내자, '장학금'(104회)과 '논문'(98회)이 클러스터로 나타났습니다. 발언 빈도가 높고 다른 단어와 많이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조국 장관 일가에 제기된 교육 관련 의혹 가운데 발언 빈도가 가장 낮은 것은 '표창장'(9회), '인턴'(26회)이었습니다. 이들 단어는 대입 비리 의혹과 연된돼 검찰의 핵심 수사 대상이고 언론의 기사 생산도 집중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발언자들은 대입 비리 의혹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습니다. 불법성 여부가 대학생들이 요구하는 공정성과 별개 차원임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발언자들은 왜 '장학금'과 '논문' 의혹을 가장 불공정한 것으로 인식했을까요.

"공정이란 평등한 기회 보장과 노력에 대한 보상"

대학가 촛불집회 발언에서 언급된 단어의 논리적 연결성을 분석한 추론된 의미망.대학가 촛불집회 발언에서 언급된 단어의 논리적 연결성을 분석한 추론된 의미망.

추론된 의미망에서 ‘공정’의 확대 부분.추론된 의미망에서 ‘공정’의 확대 부분.

이를 위해 발언자들이 생각하는 '공정'의 논리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단어들의 표층적인 연결인 빈도와 달리, 단어 간 논리적 연결성을 확률적으로 분석하면 심층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추론된 의미망의 핵심 단어는 역시 '공정'이었습니다. '공정'에 연결된 단어와 방향성을 통해 구성한 '공정'의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공정'이란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하고, '노력'을 '보상'해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다


'공정'을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이미 대학에 진학한 대학생들에게 '장학금'과 '논문'이야말로 가장 쉽게 체감하는 '기회'이자 '보상'입니다.

또, '공정'에서 '대한민국'으로 향한 또다른 논리는 '대한민국'을 거쳐 '교육'과 '자유민주주의'로 연결됩니다. 데이터를 분석한 아르스 프락시아 김도훈 대표는 "한단계 더 들어간 잠재적 의미망에서 발언자들에게 '교육'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합니다.

김 대표는 "발언자들은 '교육'을 매개로 '공정'의 가치가 실현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라고 인식하는데, 그것이 실현되지 못한 데 대해 분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라고 밝혔습니다.

조국 사태는 대학생들이 '노력'할 때 기대하는 '보상' 체계의 공정성을 건드렸고 이는 국가의 핵심 가치가 흔들렸다는 인식으로 나아간 것으로 분석됩니다.

학생들이 '장학금'에 민감하게 반응한 배경에 대해 한영섭 청년지갑트레이너센터장은 "국가장학금 제도가 확대되면서 장학금의 공정한 배분에 대한 대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라고 설명합니다.

한 센터장은 "성적 장학금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대학생들이 조국 전 장관 딸의 장학금 의혹을 보고 자신들의 노력이 부정당했다고 느꼈을 것"이라면서 "성적 미달로 학자금 대출조차 받지 못하는 학생이 2만 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이 청년층이 느꼈을 분노는 더욱 클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분석 대상인 대학가 촛불집회는 서울대 총학생회가 2차례 주최한 것을 제외하면 주최 측이 자원봉사자를 중심으로 매번 새로 구성됐습니다. 그런데도 시기별로 촛불집회에서 나온 단어의 비중을 살펴보면, 발언한 학생들의 논리가 일관된 점이 볼 수 있습니다. 조국 후보자를 둘러싼 사모펀드, 웅동학원, 인턴 등 여러 의혹은 촛불집회가 열리기 전 제기됐지만, 발언자들은 교육 부문 단어를 집중 언급합니다.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각각 열린 1차 집회에서 발언 중 비중이 가장 컸던 교육 관련 단어는 '논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발언자들은 조국 당시 장관 후보자의 딸이 논문을 이용해 대학에 진학했다는 입시 비리 의혹 측면보다는, 논문 제1저자가 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분노했습니다.

검찰이 대학들을 압수수색한 직후에 열린 서울대 2차, 부산대 1차 집회에서는 '장학금'의 언급 비중이 급상승했습니다. '노력'의 발언 비중이 조국 장관 임명 직전까지 꾸준히 상승했다 임명 직후 급감한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발언자들이 조국 장관 임명은 '노력'과 '공부'에 따른 정당한 보상에 위배된다는 논리로 임명에 반대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계속된 검찰 수사와 언론의 경쟁적인 보도에도 '인턴', '표창장'에 대한 발언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점도 거듭 확인됩니다.

한계에 부딪힌 '학생'의 발언...'국민'으로 정체성 전환

자신의 삶에 밀접한 '장학금'과 '논문'을 통해 '공정'의 위반을 인식했다는 사실은 이들이 초반에 '학생'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냈다는 사실과도 연관됩니다.

조국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린 9월 6일을 기준으로 전반기와 후반기를 나누어 분석해보면, 집회 전반기에 가장 많은 단어와 연결된 단어는 '학생'(92회)으로 나타납니다.

발언자들은 의혹이 제기된 학교의 '학생'으로 이 사태의 당사자임을 강조하며, 자신들이 느낀 분노를 통해 '공정'과 '정의'라는 보편적 가치의 위반을 문제제기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방식은 대학생들에게 사회구조를 지적하는 역할을 기대한 기성세대에게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김 대표는 "발언자들에게서 교육 본연의 맥락이나 자신의 입시 과정에서 불공정의 요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데 대한 성찰은 찾아볼 수 없었다"면서 "반칙 여부만을 공정성의 기준으로 삼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학생'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발언은 소위 '스카이' 대학생들의 학벌 유지를 위한 집단행동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또 촛불 정부에 건 기대가 좌절된 데 대해 실망감을 드러낸 것이 정치적 편향성으로 의심받자, 발언자들은 후반기로 갈수록 '학생' 대신 '국민'의 정체성을 강조합니다.

이런 변화는 후반기에 연결 중심성이 가장 높은 단어가 '국민'(164회)으로 변하는 것에서도 확인됩니다.

그러면서도 발언자들은 잠재적인 맥락에서는 조국 장관 '지지자'와 차이를 강조하며 '학생'이 '진리'와 '정의'를 추구해왔다는 입장을 통해 사회 변혁과 진리 추구의 주체라는 엘리트주의적 속성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상위권 대학생 분노 배경엔 '부정부패한 대학원'


종합해보면 발언자들의 사고 구조는 다음의 세 가지 이야기로 수렴됩니다. ①'장학금' '의혹'이 '세상' 세태를 '대변'한다 ②'정의'를 바랐는데 그 '가치'를 저버린 '위선'에 '상처'받았다 ③'학생'에게 '논문' 문제는 '부정부패'한 '대학원'의 실상이다

김 대표는 발언자들이 '장학금'과 '논문'을 통해 '세상'과 '대학원'을 비판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조국 사태에서 '위선'의 측면은 그동안 거론됐지만, '장학금' 분배와 '대학원'에 대한 체화된 분노가 촛불집회의 배경이라는 점은 그간 주목받지 않은 대목입니다.

엄밀히 따져보면, 조국 사태에서 공분을 산 '장학금'과 '논문'은 대학이 아니라 대학원에서 발생했고 피해가 있었다면 그 당사자는 대학원생입니다. 그런데도 대학생들이 촛불을 켠 이유는 집회 참가자들은 대학원 진학률이 높은 상위권 대학 소속이고 조국 전 장관이 '교수 부부'인데다, 대학원 등록금이 10년째 인상됐고 '교수 갑질'에 대한 대학 사회의 문제의식이 심화된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촛불집회가 열린 대학들은 국내 대학 중 대학원 진학률이 가장 높은 학교들입니다. 이들 학교의 이공계 일부 학과는 대학원 진학률이 80%에 이릅니다. 대학원에서 발생한 의혹을 학부생들이 자신의 일처럼 여긴 이유입니다.

더욱이 최근 대학에서는 거의 해마다 대학원생에 대한 '교수 갑질'을 고발하는 학생들의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지난 5월 학생총회를 열어 대학원생을 성추행하고 연구실적을 빼앗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A교수에 대해 파면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생 부채 문제를 연구한 문화연구자 천주희 씨는 "대학원은 대학보다 등록금이 비싼 데다, 특히 이공계는 대학원생의 생계가 교수에게 달려있다"고 설명합니다.

"교수와 제자 관계가 위계적이어서 논문의 저자 등재와 인건비 지급 등에서 부당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대학원생들은 문제제기를 했을 때 학계에서 매장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면서 "이는 누적적이고 관례화된 문제여서 대학원생들은 현실을 회피할 수도 없고 개인이 할 수 없는 것도 없어 우울감을 겪게 된다"고 전했습니다.

대학원생의 처우가 교수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서 대학원 등록금은 교육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한국교육개혁전략포럼 정책위원장인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10년간 학부 등록금은 동결되었지만 대학원 등록금은 해마다 상승했다"고 지적합니다.

또 "학부 학생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나마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지만 대학원생들은 그런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다"고 전했습니다.

조국 전 장관의 딸이 고교 시절 제1저자로 등재된 대한병리학회지 논문. 해당 학회는 이를 연구부정행위로 판정하고 등재를 취소했다.조국 전 장관의 딸이 고교 시절 제1저자로 등재된 대한병리학회지 논문. 해당 학회는 이를 연구부정행위로 판정하고 등재를 취소했다.

조국 전 장관이 '교수 부부'라는 사실은 대학원생과 예비 대학원생들에게 더 큰 박탈감을 안긴 것으로 보입니다.

김종영 교수는 "조국 교수 부부 딸의 논문 부정행위는 딸에게 특권 교육을 상속하기 위해 학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무시한 것"이라면서, 특히 "황우석 사태로 국내 대학과 학문공동체가 충격을 받고 2007년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규범을 강화한 이후 발생했다는 점에서 대학원생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교수는 "교육부와 대학들도 대학원에 관심이 없고, 한국 대학의 학문적 역량도 무너졌다"면서 "국내 대학원의 현실은 정말 처참할 정도"라고 진단했습니다.

하지만 상위권 대학생들의 대학원에 대한 문제의식은 대학가 촛불집회가 다른 대학들로 확산하지 못한 이유가 됐습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조국 장관 임명 이후 35개 대학 학생회 연대체인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에 공동 입장 표명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열린 토론회에도 서울대 총학생회를 제외한 다른 대학 총학생회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도정근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서울대 학생들은 논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다른 대학과 연대를 이끌어내기에 확장성에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걸 묻는데 저걸 답변하면 화가 난다. 묻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다"

지난 9월 조국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청년층의 호응을 받은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입니다.

조국 사태 이후 정부는 교육 공정성 강화를 위해 고교서열제 폐지와 대입제도 개편 등의 대책을 발표했지만, 가장 먼저 공정성을 문제제기한 대학생을 향한 대책은 마땅히 내놓은 게 없습니다.

김종영 교수는 "고교서열화는 대학서열화의 종속변수이기 때문에, 대입 개선에 매달리는 건 필패 전략"이라고 주장합니다. "학종이든 정시든 3% 내외의 엘리트 대학을 들어가려는 병목 현상은 바뀌지 않는다"면서 이 문제가 "세계 1위의 사교육비와 높은 등록금으로 인한 계급 문제, 명문대 학위를 요구하는 대기업 정규직 채용과 일렬로 배열되어 있다"라고 강조합니다.

피라미드 구조에서 비롯된 병목 현상을 그대로 둔 채 입시의 '형식적 공정성'만 강조해서는 근본적인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김 교수는 "대학 구조 자체를 바꿈으로써 대학을 탈계급화·탈지위화시키고 인간 발달의 다원적 기회를 대학이 제공하는 '실질적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제안했습니다.

물론 분석 결과에서 보듯 대학생들의 공정 개념에는 아쉬운 대목이 있습니다. 어느 연령대보다 세대 내 불평등이 큰 청년 세대의 입장을 상위권 대학생들이 모두 대변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생들의 문제제기가 이대로 묻혀도 괜찮은 것일까요.

청년 연구자인 김선기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은 대학가 촛불집회가 청년 전체에 비해 과잉 대표됐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집회에 나오는 청년들의 참여는 진정한 참여가 아니라거나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식의 논의는 대학생이 정치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할 때 그것을 '선택적 분노'라고 규정 내리는 권력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를 더 보여주는 일일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김 연구원은 "각자 가진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누구나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대목은 지점은 다 선택적일 수밖에 없다"면서 "그 의견이 '선택적 분노'이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묵살하고 비난할 수 있는가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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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장학금’에 켜진 대학가 촛불, ‘교수 갑질’도 한몫
    • 입력 2019-11-10 08:01:29
    • 수정2019-11-10 09:01:53
    취재후·사건후
대학가 촛불 켠 불공정 요인은 장학금과 논문<br />조국 사태 분노 배경엔 '부정부패한 대학원'도 한몫<br />대학원 진학률 높은 상위권 대학생들, 문제의식 공유
공정(公正). 자못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 조국 사태를 거치며 사회적 의제로 등장했습니다. 시사기획 창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는 공정이 무엇인지, 특히 청년들의 요구를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에서 파악해보고자 했습니다.

취재진은 공정을 의제로 제시한 주체가 장관 임명 반대 대학가 촛불집회 참가자들이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8월 23일부터 10월 3일까지 13차례 열린 대학가 촛불집회에서 나온 2030세대의 발언 96건을 전체를 데이터 분석 전문업체인 아르스 프락시아를 통해 네트워크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대학생들을 분노하게 한 건 대입 비리 의혹보다는 '장학금'과 '논문'임을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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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의 분노를 촉발시킨 '장학금'과 '논문'


발언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조국'(295회), '정의'(168회), '법무부 장관'(167회)의 순이었습니다. 이를 연결망으로 나타내자, '장학금'(104회)과 '논문'(98회)이 클러스터로 나타났습니다. 발언 빈도가 높고 다른 단어와 많이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조국 장관 일가에 제기된 교육 관련 의혹 가운데 발언 빈도가 가장 낮은 것은 '표창장'(9회), '인턴'(26회)이었습니다. 이들 단어는 대입 비리 의혹과 연된돼 검찰의 핵심 수사 대상이고 언론의 기사 생산도 집중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발언자들은 대입 비리 의혹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습니다. 불법성 여부가 대학생들이 요구하는 공정성과 별개 차원임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발언자들은 왜 '장학금'과 '논문' 의혹을 가장 불공정한 것으로 인식했을까요.

"공정이란 평등한 기회 보장과 노력에 대한 보상"

대학가 촛불집회 발언에서 언급된 단어의 논리적 연결성을 분석한 추론된 의미망.
추론된 의미망에서 ‘공정’의 확대 부분.
이를 위해 발언자들이 생각하는 '공정'의 논리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단어들의 표층적인 연결인 빈도와 달리, 단어 간 논리적 연결성을 확률적으로 분석하면 심층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추론된 의미망의 핵심 단어는 역시 '공정'이었습니다. '공정'에 연결된 단어와 방향성을 통해 구성한 '공정'의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공정'이란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하고, '노력'을 '보상'해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다


'공정'을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이미 대학에 진학한 대학생들에게 '장학금'과 '논문'이야말로 가장 쉽게 체감하는 '기회'이자 '보상'입니다.

또, '공정'에서 '대한민국'으로 향한 또다른 논리는 '대한민국'을 거쳐 '교육'과 '자유민주주의'로 연결됩니다. 데이터를 분석한 아르스 프락시아 김도훈 대표는 "한단계 더 들어간 잠재적 의미망에서 발언자들에게 '교육'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합니다.

김 대표는 "발언자들은 '교육'을 매개로 '공정'의 가치가 실현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라고 인식하는데, 그것이 실현되지 못한 데 대해 분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라고 밝혔습니다.

조국 사태는 대학생들이 '노력'할 때 기대하는 '보상' 체계의 공정성을 건드렸고 이는 국가의 핵심 가치가 흔들렸다는 인식으로 나아간 것으로 분석됩니다.

학생들이 '장학금'에 민감하게 반응한 배경에 대해 한영섭 청년지갑트레이너센터장은 "국가장학금 제도가 확대되면서 장학금의 공정한 배분에 대한 대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라고 설명합니다.

한 센터장은 "성적 장학금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대학생들이 조국 전 장관 딸의 장학금 의혹을 보고 자신들의 노력이 부정당했다고 느꼈을 것"이라면서 "성적 미달로 학자금 대출조차 받지 못하는 학생이 2만 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이 청년층이 느꼈을 분노는 더욱 클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분석 대상인 대학가 촛불집회는 서울대 총학생회가 2차례 주최한 것을 제외하면 주최 측이 자원봉사자를 중심으로 매번 새로 구성됐습니다. 그런데도 시기별로 촛불집회에서 나온 단어의 비중을 살펴보면, 발언한 학생들의 논리가 일관된 점이 볼 수 있습니다. 조국 후보자를 둘러싼 사모펀드, 웅동학원, 인턴 등 여러 의혹은 촛불집회가 열리기 전 제기됐지만, 발언자들은 교육 부문 단어를 집중 언급합니다.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각각 열린 1차 집회에서 발언 중 비중이 가장 컸던 교육 관련 단어는 '논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발언자들은 조국 당시 장관 후보자의 딸이 논문을 이용해 대학에 진학했다는 입시 비리 의혹 측면보다는, 논문 제1저자가 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분노했습니다.

검찰이 대학들을 압수수색한 직후에 열린 서울대 2차, 부산대 1차 집회에서는 '장학금'의 언급 비중이 급상승했습니다. '노력'의 발언 비중이 조국 장관 임명 직전까지 꾸준히 상승했다 임명 직후 급감한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발언자들이 조국 장관 임명은 '노력'과 '공부'에 따른 정당한 보상에 위배된다는 논리로 임명에 반대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계속된 검찰 수사와 언론의 경쟁적인 보도에도 '인턴', '표창장'에 대한 발언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점도 거듭 확인됩니다.

한계에 부딪힌 '학생'의 발언...'국민'으로 정체성 전환

자신의 삶에 밀접한 '장학금'과 '논문'을 통해 '공정'의 위반을 인식했다는 사실은 이들이 초반에 '학생'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냈다는 사실과도 연관됩니다.

조국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린 9월 6일을 기준으로 전반기와 후반기를 나누어 분석해보면, 집회 전반기에 가장 많은 단어와 연결된 단어는 '학생'(92회)으로 나타납니다.

발언자들은 의혹이 제기된 학교의 '학생'으로 이 사태의 당사자임을 강조하며, 자신들이 느낀 분노를 통해 '공정'과 '정의'라는 보편적 가치의 위반을 문제제기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방식은 대학생들에게 사회구조를 지적하는 역할을 기대한 기성세대에게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김 대표는 "발언자들에게서 교육 본연의 맥락이나 자신의 입시 과정에서 불공정의 요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데 대한 성찰은 찾아볼 수 없었다"면서 "반칙 여부만을 공정성의 기준으로 삼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학생'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발언은 소위 '스카이' 대학생들의 학벌 유지를 위한 집단행동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또 촛불 정부에 건 기대가 좌절된 데 대해 실망감을 드러낸 것이 정치적 편향성으로 의심받자, 발언자들은 후반기로 갈수록 '학생' 대신 '국민'의 정체성을 강조합니다.

이런 변화는 후반기에 연결 중심성이 가장 높은 단어가 '국민'(164회)으로 변하는 것에서도 확인됩니다.

그러면서도 발언자들은 잠재적인 맥락에서는 조국 장관 '지지자'와 차이를 강조하며 '학생'이 '진리'와 '정의'를 추구해왔다는 입장을 통해 사회 변혁과 진리 추구의 주체라는 엘리트주의적 속성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상위권 대학생 분노 배경엔 '부정부패한 대학원'


종합해보면 발언자들의 사고 구조는 다음의 세 가지 이야기로 수렴됩니다. ①'장학금' '의혹'이 '세상' 세태를 '대변'한다 ②'정의'를 바랐는데 그 '가치'를 저버린 '위선'에 '상처'받았다 ③'학생'에게 '논문' 문제는 '부정부패'한 '대학원'의 실상이다

김 대표는 발언자들이 '장학금'과 '논문'을 통해 '세상'과 '대학원'을 비판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조국 사태에서 '위선'의 측면은 그동안 거론됐지만, '장학금' 분배와 '대학원'에 대한 체화된 분노가 촛불집회의 배경이라는 점은 그간 주목받지 않은 대목입니다.

엄밀히 따져보면, 조국 사태에서 공분을 산 '장학금'과 '논문'은 대학이 아니라 대학원에서 발생했고 피해가 있었다면 그 당사자는 대학원생입니다. 그런데도 대학생들이 촛불을 켠 이유는 집회 참가자들은 대학원 진학률이 높은 상위권 대학 소속이고 조국 전 장관이 '교수 부부'인데다, 대학원 등록금이 10년째 인상됐고 '교수 갑질'에 대한 대학 사회의 문제의식이 심화된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촛불집회가 열린 대학들은 국내 대학 중 대학원 진학률이 가장 높은 학교들입니다. 이들 학교의 이공계 일부 학과는 대학원 진학률이 80%에 이릅니다. 대학원에서 발생한 의혹을 학부생들이 자신의 일처럼 여긴 이유입니다.

더욱이 최근 대학에서는 거의 해마다 대학원생에 대한 '교수 갑질'을 고발하는 학생들의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지난 5월 학생총회를 열어 대학원생을 성추행하고 연구실적을 빼앗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A교수에 대해 파면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생 부채 문제를 연구한 문화연구자 천주희 씨는 "대학원은 대학보다 등록금이 비싼 데다, 특히 이공계는 대학원생의 생계가 교수에게 달려있다"고 설명합니다.

"교수와 제자 관계가 위계적이어서 논문의 저자 등재와 인건비 지급 등에서 부당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대학원생들은 문제제기를 했을 때 학계에서 매장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면서 "이는 누적적이고 관례화된 문제여서 대학원생들은 현실을 회피할 수도 없고 개인이 할 수 없는 것도 없어 우울감을 겪게 된다"고 전했습니다.

대학원생의 처우가 교수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서 대학원 등록금은 교육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한국교육개혁전략포럼 정책위원장인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10년간 학부 등록금은 동결되었지만 대학원 등록금은 해마다 상승했다"고 지적합니다.

또 "학부 학생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나마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지만 대학원생들은 그런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다"고 전했습니다.

조국 전 장관의 딸이 고교 시절 제1저자로 등재된 대한병리학회지 논문. 해당 학회는 이를 연구부정행위로 판정하고 등재를 취소했다.
조국 전 장관이 '교수 부부'라는 사실은 대학원생과 예비 대학원생들에게 더 큰 박탈감을 안긴 것으로 보입니다.

김종영 교수는 "조국 교수 부부 딸의 논문 부정행위는 딸에게 특권 교육을 상속하기 위해 학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무시한 것"이라면서, 특히 "황우석 사태로 국내 대학과 학문공동체가 충격을 받고 2007년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규범을 강화한 이후 발생했다는 점에서 대학원생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교수는 "교육부와 대학들도 대학원에 관심이 없고, 한국 대학의 학문적 역량도 무너졌다"면서 "국내 대학원의 현실은 정말 처참할 정도"라고 진단했습니다.

하지만 상위권 대학생들의 대학원에 대한 문제의식은 대학가 촛불집회가 다른 대학들로 확산하지 못한 이유가 됐습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조국 장관 임명 이후 35개 대학 학생회 연대체인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에 공동 입장 표명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열린 토론회에도 서울대 총학생회를 제외한 다른 대학 총학생회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도정근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서울대 학생들은 논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다른 대학과 연대를 이끌어내기에 확장성에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걸 묻는데 저걸 답변하면 화가 난다. 묻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다"

지난 9월 조국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청년층의 호응을 받은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입니다.

조국 사태 이후 정부는 교육 공정성 강화를 위해 고교서열제 폐지와 대입제도 개편 등의 대책을 발표했지만, 가장 먼저 공정성을 문제제기한 대학생을 향한 대책은 마땅히 내놓은 게 없습니다.

김종영 교수는 "고교서열화는 대학서열화의 종속변수이기 때문에, 대입 개선에 매달리는 건 필패 전략"이라고 주장합니다. "학종이든 정시든 3% 내외의 엘리트 대학을 들어가려는 병목 현상은 바뀌지 않는다"면서 이 문제가 "세계 1위의 사교육비와 높은 등록금으로 인한 계급 문제, 명문대 학위를 요구하는 대기업 정규직 채용과 일렬로 배열되어 있다"라고 강조합니다.

피라미드 구조에서 비롯된 병목 현상을 그대로 둔 채 입시의 '형식적 공정성'만 강조해서는 근본적인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김 교수는 "대학 구조 자체를 바꿈으로써 대학을 탈계급화·탈지위화시키고 인간 발달의 다원적 기회를 대학이 제공하는 '실질적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제안했습니다.

물론 분석 결과에서 보듯 대학생들의 공정 개념에는 아쉬운 대목이 있습니다. 어느 연령대보다 세대 내 불평등이 큰 청년 세대의 입장을 상위권 대학생들이 모두 대변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생들의 문제제기가 이대로 묻혀도 괜찮은 것일까요.

청년 연구자인 김선기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은 대학가 촛불집회가 청년 전체에 비해 과잉 대표됐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집회에 나오는 청년들의 참여는 진정한 참여가 아니라거나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식의 논의는 대학생이 정치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할 때 그것을 '선택적 분노'라고 규정 내리는 권력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를 더 보여주는 일일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김 연구원은 "각자 가진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누구나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대목은 지점은 다 선택적일 수밖에 없다"면서 "그 의견이 '선택적 분노'이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묵살하고 비난할 수 있는가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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