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 나비가 ‘태풍 떼’를 부르다

입력 2019.10.16 (14:10) 수정 2019.10.1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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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반도에서는 새로운 기록이 세워졌습니다. 7개의 태풍이 북상해 우리나라에 직접 상륙하거나 영향을 줬는데, 태풍 '사라'가 찾아왔던 1959년 이후 가장 많았습니다. 특히 9월 태풍이 이례적이었습니다. 북서태평양 태풍 감시 구역에서 발생한 6개의 태풍 가운데 3개가 우리나라로 올라와 1904년 관측 이후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올해는 북태평양 고기압 7월 하순부터 발달


지난 14일과 15일, 제주에 위치한 기상청 태풍센터는 올해 태풍 영향이 이렇게 많았던 원인을 분석해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일단 한반도 주변의 기압계를 보면 6월부터 7월 중순까지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북동쪽에 자리잡은 상층 찬 공기가 주기적으로 내려오면서 오히려 여름답지 않은 날씨가 이어지기도 했죠.

북태평양 고기압은 7월 하순부터 발달하기 시작했고 예년보다 북쪽으로 확장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동안 태풍 '다나스'가 7월 20일 북상했고 8월 들어 '프란시스코'와 '레끼마' '크로사'가 줄줄이 올라왔습니다.

9월 들어 열려버린 '태풍 길', 역대 최다 태풍 영향

여기서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9월 들어서는 더욱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남쪽부터 열대 태평양까지 해수면 온도가 29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은 겁니다. 북태평양 고기압은 북서쪽으로 확장해 일본 열도에 걸쳐있는 모습을 계속 유지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일본 열도 아래로 수축해야 하는데도 말이죠.


그 사이에 9월 2일 필리핀 서쪽에서 발생한 태풍 '링링'이 우리나라 서해상으로 북상했고 9월 중순 '타파'와 9월 하순 '미탁'까지 3개의 태풍이 더 영향을 주게 됐습니다. 기상청은 일단 필리핀 동쪽 해상의 수온이 예년보다 최대 1.5도 높아서 고수온이 유지된 것을 원인으로 들었습니다.

필리핀 부근에서 대류 활동이 활발해지며 여기서 상승한 공기가 일본 부근에서 하강해 북태평양 고기압을 강화시켰다는 설명입니다. 그 결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예년보다 북서쪽으로 강하게 확장해 가을까지도 태풍의 길을 열어준 겁니다.


인도양 '원격상관'으로 북태평양 고기압 강화

여기에 한 가지 더 심층적인 분석이 나왔습니다. 최정희 기상청 기후예측과 주무관은 한반도 서쪽의 인도양에서 올해는 9월까지 대류활동이 활발했던 점이 의미심장하다고 말했습니다. 보통 인도 몬순은 여름철에 나타나는 현상인데 올해는 가을에도 인도양의 대류활동이 강했고 이로 인한 상승기류가 동아시아 부근에서 하강하면서 북태평양 고기압의 강화와 지속에 기여했다는 분석입니다.

인도양 부근의 파랗게 보이는 지역(아래)에서 대류활동이 활발해 동아시아에 붉게 보이는 북태평양 고기압(위)이 강하게 발달했다.인도양 부근의 파랗게 보이는 지역(아래)에서 대류활동이 활발해 동아시아에 붉게 보이는 북태평양 고기압(위)이 강하게 발달했다.

우리나라의 여름 날씨와 태풍 북상에 인도양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은 조금 낯설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기후에서 이러한 현상을 '원격 상관'이라고 부르는데 적도 동태평양의 수온이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엘니뇨·라니냐 현상으로 전세계에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도양에서 나비가 날자 태풍이 무더기로 발생한 이른바 '나비 효과'라 볼 수 있습니다.

최정희 주무관은 지난해 기록적인 여름 폭염이 나타났을 때도 인도양에서 대류활동이 활발했다며 그 결과 동아시아 티벳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장시간 강한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매년 날씨가 똑같을 수 없듯 시기적으로 언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한해는 폭염을, 다른 한해는 태풍을 불러오는 겁니다. 지난해와 올해 모두 동서 방향으로 중위도에 안정된 고압대가 늘어선 가운데 장기간 정체 상태가 이어진 데에는 온난화의 영향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최 주무관은 올해의 경우 가을에도 북태평양 고기압이 수축하지 않을 조짐이 보이긴 했지만, 통계적으로 태풍이 적은 시기이기 때문에 3개의 태풍이 올라올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를 겪은 만큼 앞으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면 좀 더 정확한 태풍 예보가 가능해질 거라고 했습니다. 아직 연구가 시작 단계이긴 하지만 인도양의 영향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반복된 만큼 이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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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양 나비가 ‘태풍 떼’를 부르다
    • 입력 2019-10-16 14:10:57
    • 수정2019-10-16 14:19:57
    취재K
올해 한반도에서는 새로운 기록이 세워졌습니다. 7개의 태풍이 북상해 우리나라에 직접 상륙하거나 영향을 줬는데, 태풍 '사라'가 찾아왔던 1959년 이후 가장 많았습니다. 특히 9월 태풍이 이례적이었습니다. 북서태평양 태풍 감시 구역에서 발생한 6개의 태풍 가운데 3개가 우리나라로 올라와 1904년 관측 이후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올해는 북태평양 고기압 7월 하순부터 발달


지난 14일과 15일, 제주에 위치한 기상청 태풍센터는 올해 태풍 영향이 이렇게 많았던 원인을 분석해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일단 한반도 주변의 기압계를 보면 6월부터 7월 중순까지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북동쪽에 자리잡은 상층 찬 공기가 주기적으로 내려오면서 오히려 여름답지 않은 날씨가 이어지기도 했죠.

북태평양 고기압은 7월 하순부터 발달하기 시작했고 예년보다 북쪽으로 확장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동안 태풍 '다나스'가 7월 20일 북상했고 8월 들어 '프란시스코'와 '레끼마' '크로사'가 줄줄이 올라왔습니다.

9월 들어 열려버린 '태풍 길', 역대 최다 태풍 영향

여기서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9월 들어서는 더욱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남쪽부터 열대 태평양까지 해수면 온도가 29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은 겁니다. 북태평양 고기압은 북서쪽으로 확장해 일본 열도에 걸쳐있는 모습을 계속 유지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일본 열도 아래로 수축해야 하는데도 말이죠.


그 사이에 9월 2일 필리핀 서쪽에서 발생한 태풍 '링링'이 우리나라 서해상으로 북상했고 9월 중순 '타파'와 9월 하순 '미탁'까지 3개의 태풍이 더 영향을 주게 됐습니다. 기상청은 일단 필리핀 동쪽 해상의 수온이 예년보다 최대 1.5도 높아서 고수온이 유지된 것을 원인으로 들었습니다.

필리핀 부근에서 대류 활동이 활발해지며 여기서 상승한 공기가 일본 부근에서 하강해 북태평양 고기압을 강화시켰다는 설명입니다. 그 결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예년보다 북서쪽으로 강하게 확장해 가을까지도 태풍의 길을 열어준 겁니다.


인도양 '원격상관'으로 북태평양 고기압 강화

여기에 한 가지 더 심층적인 분석이 나왔습니다. 최정희 기상청 기후예측과 주무관은 한반도 서쪽의 인도양에서 올해는 9월까지 대류활동이 활발했던 점이 의미심장하다고 말했습니다. 보통 인도 몬순은 여름철에 나타나는 현상인데 올해는 가을에도 인도양의 대류활동이 강했고 이로 인한 상승기류가 동아시아 부근에서 하강하면서 북태평양 고기압의 강화와 지속에 기여했다는 분석입니다.

인도양 부근의 파랗게 보이는 지역(아래)에서 대류활동이 활발해 동아시아에 붉게 보이는 북태평양 고기압(위)이 강하게 발달했다.
우리나라의 여름 날씨와 태풍 북상에 인도양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은 조금 낯설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기후에서 이러한 현상을 '원격 상관'이라고 부르는데 적도 동태평양의 수온이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엘니뇨·라니냐 현상으로 전세계에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도양에서 나비가 날자 태풍이 무더기로 발생한 이른바 '나비 효과'라 볼 수 있습니다.

최정희 주무관은 지난해 기록적인 여름 폭염이 나타났을 때도 인도양에서 대류활동이 활발했다며 그 결과 동아시아 티벳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장시간 강한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매년 날씨가 똑같을 수 없듯 시기적으로 언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한해는 폭염을, 다른 한해는 태풍을 불러오는 겁니다. 지난해와 올해 모두 동서 방향으로 중위도에 안정된 고압대가 늘어선 가운데 장기간 정체 상태가 이어진 데에는 온난화의 영향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최 주무관은 올해의 경우 가을에도 북태평양 고기압이 수축하지 않을 조짐이 보이긴 했지만, 통계적으로 태풍이 적은 시기이기 때문에 3개의 태풍이 올라올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를 겪은 만큼 앞으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면 좀 더 정확한 태풍 예보가 가능해질 거라고 했습니다. 아직 연구가 시작 단계이긴 하지만 인도양의 영향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반복된 만큼 이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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