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업체에 맡긴 ‘해썹(HACCP)’…쇳조각 안 거르고 곰팡이까지

입력 2019.09.15 (09:00) 수정 2019.09.17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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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상차림용으로, 선물용으로 소·돼지고기 많이들 구매하셨을텐데요. 최근에는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해썹(HACCP) 인증 여부를 확인하는 소비자들도 많아졌습니다. 정부가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만들어진 식품에 부여하는 인증 제도인 만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부가 나서 식품의 안전성을 인증한다고 하니, 엄격한 관리 감독 속에서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해썹 제도의 취지는 식품 원재료 생산부터 최종 소비 단계까지 전 과정에서 업체 '스스로' 위해 요소를 차단하는 관리 시스템을 마련하고 운영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점검과 운영에 있어서 업체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정부는 최소한의 감독 기능만 수행하는 것입니다.


믿고 맡긴 업체들, 자율적으로 잘 관리하고 있을까요? KBS 취재진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함께 해썹 인증을 받은 축산물 가공 업체를 불시 점검했습니다.

2014년부터 6년째 해썹 인증을 받은 서울 마장동의 소고기 가공업체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금속 이물질 관리가 부실했습니다. 칼, 기계에서 나온 미세 쇳조각 등을 걸러주는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던 건데요. 금속을 탐지하면 경고음이 나와야 할 기계가 지름 7mm짜리 스테인리스를 통과시켜도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유명 백화점과 학교 급식에 소, 돼지고기를 납품하는 축산물 가공 업체도 찾아가 봤습니다. 이곳은 금속 검출 장비 전원이 아예 꺼져 있었습니다. 단속 전엔 켜져 있던 기계가 작동 오류로 꺼졌다는 업체 측의 해명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곰팡이가 가득 낀 작업 도마를 쓰는 등 위생 상태도 불량이었습니다.

금속 탐지 기준치를 조작했거나 결함이 있는 장비를 그대로 쓴 것입니다. 업체들이 이처럼 이물질·위생 검사를 일부러 소홀히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취재진이 어렵게 만난 금속 검출기 제조 업체 관계자는 작업의 효율성만 따지는 업체들의 관행이라고 말했습니다. 정해진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물량을 소화해야 하는 업체 측은 까다롭고 번거로운 검사를 최소화하거나 형식적으로 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식품에 금속이 들어갈 일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겠느냐는 안이한 인식도 있었습니다.


업체의 '셀프 점검'도 관리 공백을 만드는 원인입니다. 점검을 받아야 할 대상이 직접 점검을 하고 있으니 꼼수를 부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앞서 잠깐 설명드렸듯이, 해썹 제도는 자율 규제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작업장의 재질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 시설과 설비는 어떻게 세척·소독할 것인가, 식품 속 이물질은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 등 기준을 업체가 직접 결정합니다. 잘 지키고 있는지도 업체가 점검하고 이를 해썹 일지에 기록합니다. 보건당국은 이를 토대로 평가합니다. 정기점검은 1년에 한 차례, 문제가 드러나도 재평가 기회는 두 번이나 주어지니 웬만해선 해썹 인증이 취소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시스템을 잘 갖췄다고 하더라도 이를 사업자들이 엄격하게 충분하게 지키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처럼 하나하나의 안전기준은 사업자들 스스로 지킬 수 있는가 하는게 중요하고 이를 어겼을 때 엄격한 처벌기준이 있어야 이런 피해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우리나라에 해썹 제도가 도입된 건 1995년, 올해로 25년째입니다. 이제 해썹은 소비자들의 구매 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 됐습니다. 업체도 늘었습니다. 해썹 인증을 받은 축산물 업체는 지난 2009년 1,800여 곳에서 2019년 12,000여 곳으로 7배가량 늘었습니다. 시장 규모는 점차 증가하는데 관리 감독은 업체의 자율성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체계,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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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업체에 맡긴 ‘해썹(HACCP)’…쇳조각 안 거르고 곰팡이까지
    • 입력 2019-09-15 09:00:53
    • 수정2019-09-17 01:58:31
    취재후·사건후
명절에 상차림용으로, 선물용으로 소·돼지고기 많이들 구매하셨을텐데요. 최근에는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해썹(HACCP) 인증 여부를 확인하는 소비자들도 많아졌습니다. 정부가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만들어진 식품에 부여하는 인증 제도인 만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부가 나서 식품의 안전성을 인증한다고 하니, 엄격한 관리 감독 속에서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해썹 제도의 취지는 식품 원재료 생산부터 최종 소비 단계까지 전 과정에서 업체 '스스로' 위해 요소를 차단하는 관리 시스템을 마련하고 운영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점검과 운영에 있어서 업체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정부는 최소한의 감독 기능만 수행하는 것입니다.


믿고 맡긴 업체들, 자율적으로 잘 관리하고 있을까요? KBS 취재진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함께 해썹 인증을 받은 축산물 가공 업체를 불시 점검했습니다.

2014년부터 6년째 해썹 인증을 받은 서울 마장동의 소고기 가공업체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금속 이물질 관리가 부실했습니다. 칼, 기계에서 나온 미세 쇳조각 등을 걸러주는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던 건데요. 금속을 탐지하면 경고음이 나와야 할 기계가 지름 7mm짜리 스테인리스를 통과시켜도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유명 백화점과 학교 급식에 소, 돼지고기를 납품하는 축산물 가공 업체도 찾아가 봤습니다. 이곳은 금속 검출 장비 전원이 아예 꺼져 있었습니다. 단속 전엔 켜져 있던 기계가 작동 오류로 꺼졌다는 업체 측의 해명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곰팡이가 가득 낀 작업 도마를 쓰는 등 위생 상태도 불량이었습니다.

금속 탐지 기준치를 조작했거나 결함이 있는 장비를 그대로 쓴 것입니다. 업체들이 이처럼 이물질·위생 검사를 일부러 소홀히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취재진이 어렵게 만난 금속 검출기 제조 업체 관계자는 작업의 효율성만 따지는 업체들의 관행이라고 말했습니다. 정해진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물량을 소화해야 하는 업체 측은 까다롭고 번거로운 검사를 최소화하거나 형식적으로 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식품에 금속이 들어갈 일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겠느냐는 안이한 인식도 있었습니다.


업체의 '셀프 점검'도 관리 공백을 만드는 원인입니다. 점검을 받아야 할 대상이 직접 점검을 하고 있으니 꼼수를 부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앞서 잠깐 설명드렸듯이, 해썹 제도는 자율 규제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작업장의 재질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 시설과 설비는 어떻게 세척·소독할 것인가, 식품 속 이물질은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 등 기준을 업체가 직접 결정합니다. 잘 지키고 있는지도 업체가 점검하고 이를 해썹 일지에 기록합니다. 보건당국은 이를 토대로 평가합니다. 정기점검은 1년에 한 차례, 문제가 드러나도 재평가 기회는 두 번이나 주어지니 웬만해선 해썹 인증이 취소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시스템을 잘 갖췄다고 하더라도 이를 사업자들이 엄격하게 충분하게 지키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처럼 하나하나의 안전기준은 사업자들 스스로 지킬 수 있는가 하는게 중요하고 이를 어겼을 때 엄격한 처벌기준이 있어야 이런 피해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우리나라에 해썹 제도가 도입된 건 1995년, 올해로 25년째입니다. 이제 해썹은 소비자들의 구매 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 됐습니다. 업체도 늘었습니다. 해썹 인증을 받은 축산물 업체는 지난 2009년 1,800여 곳에서 2019년 12,000여 곳으로 7배가량 늘었습니다. 시장 규모는 점차 증가하는데 관리 감독은 업체의 자율성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체계,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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