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마약치료 의사의 추천 “중독자와 회복자가 함께…치료공동체 ‘N.A’로”

입력 2019.06.27 (17:16) 수정 2019.07.0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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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의 대가가 만만치 않은 거죠."

천영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인천참사랑병원에서 마약 중독 환자 치료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천 원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 운이 좋았어요. 왜냐면, 저도 20, 30대를 지나면서 엉뚱한 짓도 해보고 객기도 부려보고 술도 마시고 유흥업소도 가보고 했지만, 한 번도 제 옆에는 그때 끔찍한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없었거든요. 근데 그때 제 친구가, 친한 선배가, 술 마시고 막 노는 상태에서 "너 이거 해봐" 라고 줬다면, 저도 아마 객기를 부렸다면 해버렸을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

그 점에선 제가 운이 좋은 거죠. 제 인생의 장면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었던 거고, 병원에 오시는 분들에겐 있었던 거니까. 호기심에 한번 마약에 손을 대면 영구적으로 그 덫에 걸려버린다는 거예요."


인천참사랑병원은 마약 환자를 치료하는 국내 몇 안 되는 병원 중 하나입니다. 2층 개방병동과 3층 폐쇄병동에서 입원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외래 환자도 상담을 받습니다. 병원의 역할은 급성의 중독 환자가 약에서 깰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해주고,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 '중독을 끊겠다'는 동기를 환자에게 심어주는 것입니다.

약물에 대한 갈망이 심한 마약 환자의 특성상, 의료진은 치료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개방병동의 한 간호사는 "자발적인 의지를 갖고 오는 환자가 아니라 구속을 피하기 위해서 오는 환자들도 있다"며 "이 환자들은 외부와 연락해서 약을 가지고 들어오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급성 마약 중독자의 경우엔 일단 폐쇄 병동에서 외부세계와 차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입니다.

폐쇄병동에서 환자가 일정 기간 약을 끊고 갈망을 억누를 수 있을 정도가 되면, 개방병동으로 옮겨지고 상담과 활동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치료는 주로 상담으로, 단약에의 의지를 다지고 피해망상, 환각 등을 줄여가게 됩니다.

"회복자만이 진정으로 중독자를 도울 수 있다."

그럼 그 이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천 원장은 "지역사회에서 중독자 치료공동체가 정착하고, 중독자 상담 센터가 갖춰져서 하루하루 단약(斷藥)을 이어가도록 도와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치료공동체'는 무엇일까요. 거창한 이름이지만, 알고 보면 그냥 중독자와 회복자의 '모임'입니다. 한 필로폰 중독 환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여기 병원에 다니면서 처음 알았는데, N.A(Narcotics Anonymous, 익명의 약물 중독자들) 모임이라는 게 있어요. 마약 중독자와 회복자가 함께 얘기하는 거거든요. 처음 갔을 때는 '이걸 말해도 될까' 하는 불안함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회복자와 중독자가 함께 이야기를 하고 그동안 겪었던 것, 그리고 회복자들은 어떤 이겨내 가면서 생기는 노하우나 요령, 이런 부분을 이야기하니까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모임에서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실제 N.A에서 중독을 치료한 회복자들은 "회복자만이 중독자를 진정으로 도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매일 매일 약에 대한 갈망과 싸우기 위해선, 그 길을 먼저 갔던 선배의 도움이 절실한 것이죠. 역으로, 단약 중인 회복자도 새롭게 모임에 참석한 중독자를 보면서 단약에 대한 다짐을 되새길 수 있습니다.

마약을 한 사람은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마약은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중대한 범죄입니다. 하지만 투옥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는 마약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중독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중독자와 회복자의 치료공동체가 확대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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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7 17:16:59
    • 수정2019-07-01 08: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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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의 대가가 만만치 않은 거죠."

천영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인천참사랑병원에서 마약 중독 환자 치료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천 원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 운이 좋았어요. 왜냐면, 저도 20, 30대를 지나면서 엉뚱한 짓도 해보고 객기도 부려보고 술도 마시고 유흥업소도 가보고 했지만, 한 번도 제 옆에는 그때 끔찍한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없었거든요. 근데 그때 제 친구가, 친한 선배가, 술 마시고 막 노는 상태에서 "너 이거 해봐" 라고 줬다면, 저도 아마 객기를 부렸다면 해버렸을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

그 점에선 제가 운이 좋은 거죠. 제 인생의 장면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었던 거고, 병원에 오시는 분들에겐 있었던 거니까. 호기심에 한번 마약에 손을 대면 영구적으로 그 덫에 걸려버린다는 거예요."


인천참사랑병원은 마약 환자를 치료하는 국내 몇 안 되는 병원 중 하나입니다. 2층 개방병동과 3층 폐쇄병동에서 입원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외래 환자도 상담을 받습니다. 병원의 역할은 급성의 중독 환자가 약에서 깰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해주고,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 '중독을 끊겠다'는 동기를 환자에게 심어주는 것입니다.

약물에 대한 갈망이 심한 마약 환자의 특성상, 의료진은 치료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개방병동의 한 간호사는 "자발적인 의지를 갖고 오는 환자가 아니라 구속을 피하기 위해서 오는 환자들도 있다"며 "이 환자들은 외부와 연락해서 약을 가지고 들어오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급성 마약 중독자의 경우엔 일단 폐쇄 병동에서 외부세계와 차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입니다.

폐쇄병동에서 환자가 일정 기간 약을 끊고 갈망을 억누를 수 있을 정도가 되면, 개방병동으로 옮겨지고 상담과 활동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치료는 주로 상담으로, 단약에의 의지를 다지고 피해망상, 환각 등을 줄여가게 됩니다.

"회복자만이 진정으로 중독자를 도울 수 있다."

그럼 그 이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천 원장은 "지역사회에서 중독자 치료공동체가 정착하고, 중독자 상담 센터가 갖춰져서 하루하루 단약(斷藥)을 이어가도록 도와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치료공동체'는 무엇일까요. 거창한 이름이지만, 알고 보면 그냥 중독자와 회복자의 '모임'입니다. 한 필로폰 중독 환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여기 병원에 다니면서 처음 알았는데, N.A(Narcotics Anonymous, 익명의 약물 중독자들) 모임이라는 게 있어요. 마약 중독자와 회복자가 함께 얘기하는 거거든요. 처음 갔을 때는 '이걸 말해도 될까' 하는 불안함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회복자와 중독자가 함께 이야기를 하고 그동안 겪었던 것, 그리고 회복자들은 어떤 이겨내 가면서 생기는 노하우나 요령, 이런 부분을 이야기하니까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모임에서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실제 N.A에서 중독을 치료한 회복자들은 "회복자만이 중독자를 진정으로 도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매일 매일 약에 대한 갈망과 싸우기 위해선, 그 길을 먼저 갔던 선배의 도움이 절실한 것이죠. 역으로, 단약 중인 회복자도 새롭게 모임에 참석한 중독자를 보면서 단약에 대한 다짐을 되새길 수 있습니다.

마약을 한 사람은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마약은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중대한 범죄입니다. 하지만 투옥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는 마약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중독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중독자와 회복자의 치료공동체가 확대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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