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주삿바늘 찔리면 물에 씻어라?’ 병원 비정규직은 누가 보호?

입력 2019.06.26 (15:41) 수정 2019.06.2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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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현재의 국립대병원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2011년 사건을 다시 들췄습니다. 8년여 세월 동안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서입니다.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서기화씨. 병실 청소 중에 환자가 썼던 주삿바늘에 손을 찔렸습니다.

주삿바늘은 별도의 통에 버리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어두운 바닥에 굴러다녔습니다. 그걸 주우려다 옆에 숨어있던 또 다른 바늘에 찔렸습니다.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의 청소 장면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의 청소 장면

찔리기도 깊이 들어가서 이렇게 뺐는데도 안 빠져나와

안전장갑 없었습니다. '바늘 뽑고, 피 짜내고, 흐르는 물에 씻으라'고 교육 받은 게 전부. 에이즈 환자라는 얘기 듣고 머리가 핑 돌았습니다.

독한 약 먹어가며 감염검사 결과 기다린 2주는 생지옥이었습니다. 주삿바늘 없는 부서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하청업체 소장은 '입사 1년도 안 된 사람이 무슨 말이냐'며 소리 질렀습니다.

청소노동자 서기화씨 “어떤 병을 앓는 환자인지 알려달라고 했더니 환자 인격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고 해요”청소노동자 서기화씨 “어떤 병을 앓는 환자인지 알려달라고 했더니 환자 인격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고 해요”

감염은 피했지만, 마음의 병이 남았습니다. 내내 눈물 나고 서러웠습니다. 아직도 약 없으면 못 잡니다. 병원은 사과 안 했고 약값은 전액 서 씨 부담입니다.

서 씨는 생각합니다. 내가 정규직이었다면 환자정보도 미리 알고, 안전장갑도 받고, 직원혜택으로 서울대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나와 주삿바늘 사이, 일회용 비닐장갑 한 장

'어어.. 괜찮아요? 아휴 그러지 마세요!'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을 취재할 때 속으로 수백 번 외쳤습니다.

'여사님'들은 손등 훤히 비치는 얇은 비닐장갑에 의지해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주사기와 이름 모를 각종 의료장비, 피 묻은 거즈 등의 의료폐기물을 손으로 꽉꽉 눌러 담았습니다.

주사기 가득한 쓰레기통도 얇은 장갑 하나에 의지해 비웁니다.주사기 가득한 쓰레기통도 얇은 장갑 하나에 의지해 비웁니다.

체액이나 피 묻은 뾰족한 폐기물들이 비닐봉지와 종이상자를 뚫고 나옵니다. 그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랍니다. 얇은 비닐장갑은 사실상 '방어력 제로'입니다.

병원에 안전장갑을 달라고 했더니 하청업체 직원이니까 하청업체에 얘기하라고 합니다. 하청업체에 얘기했더니 수익이 안 나서 장갑 줄 돈이 없다고 합니다.

결국, 간호사들 쓰라고 둔 일회용 의료장갑을 눈치껏 집어씁니다. 그나마 처음엔 병원이 금지했지만, 지금은 묵인해줍니다.

주말까지 일해 월 200만 원...6개월짜리 고용계약 되풀이

마스크도 일회용이지만 온종일 씁니다. 병동 옮길 때마다 갈아줘야 하지만 언감생심. 자신들 건강은 물론 혹시나 자신들이 병을 옮기고 다니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피나 체액 튀는 걸 막아줄 앞치마는 사치입니다.

서울대병원에서만 올해 6차례 청소노동자 찔림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다른 국립대병원도 사정은 비슷합니다.서울대병원에서만 올해 6차례 청소노동자 찔림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다른 국립대병원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안전만 문제는 아닙니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6개월짜리 고용계약을 되풀이합니다. 미래가 극도로 불투명합니다. 노조를 기웃거리기만 해도 온갖 핍박이 쏟아집니다. 급여는 딱 최저임금. 새벽 4시에 집에서 나오는 생활을 주말까지 해야, 간신히 수당 합해 월 200만 원 받습니다.

서울대병원뿐만 아니라 전국의 국립대병원이 비슷한 상황입니다. 병원에서 일하다가 오히려 병 얻게 생겼습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꿈만 같은 얘기 또는 그냥 꿈?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찾았습니다. 취임 후 첫 외부일정이었습니다. "임기내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습니다. 공항공사 비정규직 직원 일부는 울었습니다.

국립대병원 비정규직들은 그야말로 "꿈만 같은 얘기"였다고 회상합니다. 특히 정부가이드라인에 따라 생명·안전 연관업무에 종사하는 자신들은 빨리 정규직이 될 줄 알았습니다.

대통령 약속 2년 하고도 한 달. 전국 14개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5천여 명 중에 정규직이 된 사람은 딱 6명입니다. 6명은 전부 강릉원주대치과병원 직원입니다. 서울대병원과 부산대병원, 전남대병원 등 나머지 국립대병원은 아무도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았습니다.

"기존 정규직들이 불공평"...자회사 고용하겠다는 서울대병원

국립대병원들은 서울대병원이 어떻게 하는지만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의료 간판인 서울대병원이 하는 대로만 하면 괜찮을 거란 계산이겠죠.

서울대병원은 비정규직 직원의 직접고용을 거부했습니다. 인건비가 올라가서 기존 직원의 임금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기존 정규직들이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게 이유입니다. 그래서 자회사 세울 테니 거기 정직원이 되라고 합니다. 자회사와 하청업체가 뭐가 다르냐는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이제야 인간답게 대우 받는구나 했더니"...말 그대로 희망고문

국립대병원 비정규직들은 청와대 앞에 천막을 치고 시위 중입니다. 대통령 약속대로 빨리 정규직 해달라고 합니다. 의사만큼 월급 많이 달라는 것 아닙니다. 그저 최소한의 인간 대접 해달라는 겁니다.


청와대 앞 천막에서 만난 칠곡경북대병원 청소노동자 신순금 씨는 "대통령 약속을 듣고 이제야 인간답게 대우를 받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시간만 끌고 해결을 안 해주니 말 그대로 희망고문이다"라며 울먹거렸습니다.

결국, 이들은 오늘(26일) 하루 일손을 놓았습니다. (경북대병원은 이틀) 올해 2번째 파업입니다.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뿐만 아니라 설비와 주차, 경비 등 병원 내 다른 비정규직들도 동참했습니다.

민주노총은 다음 달 3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총파업을 예고했습니다.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들고 시위 중인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들고 시위 중인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

보도 나가자 지도·점검...과연 이번에는?

9시뉴스 보도가 나간 뒤 고용노동부는 보도설명자료를 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령에 따르면 사업주는 혈액감염 우려가 있는 모든 정규직·비정규직에게 보호구를 지급해야 한다, 의료기관 산업보건감독을 통해 지도·점검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부디 이번에는 법과 현실의 괴리가 좁혀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의료현장에서 왜 정규직 전환이 필요한지도 잘 헤아려주길 바랍니다.

[연관기사] [앵커의 눈] 일상화된 공포…서울대 병원만 ‘찔림사고’ 한 달 한 번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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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주삿바늘 찔리면 물에 씻어라?’ 병원 비정규직은 누가 보호?
    • 입력 2019-06-26 15:41:00
    • 수정2019-06-26 15:44:24
    취재후·사건후
2019년 현재의 국립대병원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2011년 사건을 다시 들췄습니다. 8년여 세월 동안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서입니다.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서기화씨. 병실 청소 중에 환자가 썼던 주삿바늘에 손을 찔렸습니다.

주삿바늘은 별도의 통에 버리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어두운 바닥에 굴러다녔습니다. 그걸 주우려다 옆에 숨어있던 또 다른 바늘에 찔렸습니다.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의 청소 장면
찔리기도 깊이 들어가서 이렇게 뺐는데도 안 빠져나와

안전장갑 없었습니다. '바늘 뽑고, 피 짜내고, 흐르는 물에 씻으라'고 교육 받은 게 전부. 에이즈 환자라는 얘기 듣고 머리가 핑 돌았습니다.

독한 약 먹어가며 감염검사 결과 기다린 2주는 생지옥이었습니다. 주삿바늘 없는 부서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하청업체 소장은 '입사 1년도 안 된 사람이 무슨 말이냐'며 소리 질렀습니다.

청소노동자 서기화씨 “어떤 병을 앓는 환자인지 알려달라고 했더니 환자 인격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고 해요”
감염은 피했지만, 마음의 병이 남았습니다. 내내 눈물 나고 서러웠습니다. 아직도 약 없으면 못 잡니다. 병원은 사과 안 했고 약값은 전액 서 씨 부담입니다.

서 씨는 생각합니다. 내가 정규직이었다면 환자정보도 미리 알고, 안전장갑도 받고, 직원혜택으로 서울대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나와 주삿바늘 사이, 일회용 비닐장갑 한 장

'어어.. 괜찮아요? 아휴 그러지 마세요!'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을 취재할 때 속으로 수백 번 외쳤습니다.

'여사님'들은 손등 훤히 비치는 얇은 비닐장갑에 의지해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주사기와 이름 모를 각종 의료장비, 피 묻은 거즈 등의 의료폐기물을 손으로 꽉꽉 눌러 담았습니다.

주사기 가득한 쓰레기통도 얇은 장갑 하나에 의지해 비웁니다.
체액이나 피 묻은 뾰족한 폐기물들이 비닐봉지와 종이상자를 뚫고 나옵니다. 그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랍니다. 얇은 비닐장갑은 사실상 '방어력 제로'입니다.

병원에 안전장갑을 달라고 했더니 하청업체 직원이니까 하청업체에 얘기하라고 합니다. 하청업체에 얘기했더니 수익이 안 나서 장갑 줄 돈이 없다고 합니다.

결국, 간호사들 쓰라고 둔 일회용 의료장갑을 눈치껏 집어씁니다. 그나마 처음엔 병원이 금지했지만, 지금은 묵인해줍니다.

주말까지 일해 월 200만 원...6개월짜리 고용계약 되풀이

마스크도 일회용이지만 온종일 씁니다. 병동 옮길 때마다 갈아줘야 하지만 언감생심. 자신들 건강은 물론 혹시나 자신들이 병을 옮기고 다니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피나 체액 튀는 걸 막아줄 앞치마는 사치입니다.

서울대병원에서만 올해 6차례 청소노동자 찔림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다른 국립대병원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안전만 문제는 아닙니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6개월짜리 고용계약을 되풀이합니다. 미래가 극도로 불투명합니다. 노조를 기웃거리기만 해도 온갖 핍박이 쏟아집니다. 급여는 딱 최저임금. 새벽 4시에 집에서 나오는 생활을 주말까지 해야, 간신히 수당 합해 월 200만 원 받습니다.

서울대병원뿐만 아니라 전국의 국립대병원이 비슷한 상황입니다. 병원에서 일하다가 오히려 병 얻게 생겼습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꿈만 같은 얘기 또는 그냥 꿈?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찾았습니다. 취임 후 첫 외부일정이었습니다. "임기내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습니다. 공항공사 비정규직 직원 일부는 울었습니다.

국립대병원 비정규직들은 그야말로 "꿈만 같은 얘기"였다고 회상합니다. 특히 정부가이드라인에 따라 생명·안전 연관업무에 종사하는 자신들은 빨리 정규직이 될 줄 알았습니다.

대통령 약속 2년 하고도 한 달. 전국 14개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5천여 명 중에 정규직이 된 사람은 딱 6명입니다. 6명은 전부 강릉원주대치과병원 직원입니다. 서울대병원과 부산대병원, 전남대병원 등 나머지 국립대병원은 아무도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았습니다.

"기존 정규직들이 불공평"...자회사 고용하겠다는 서울대병원

국립대병원들은 서울대병원이 어떻게 하는지만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의료 간판인 서울대병원이 하는 대로만 하면 괜찮을 거란 계산이겠죠.

서울대병원은 비정규직 직원의 직접고용을 거부했습니다. 인건비가 올라가서 기존 직원의 임금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기존 정규직들이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게 이유입니다. 그래서 자회사 세울 테니 거기 정직원이 되라고 합니다. 자회사와 하청업체가 뭐가 다르냐는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이제야 인간답게 대우 받는구나 했더니"...말 그대로 희망고문

국립대병원 비정규직들은 청와대 앞에 천막을 치고 시위 중입니다. 대통령 약속대로 빨리 정규직 해달라고 합니다. 의사만큼 월급 많이 달라는 것 아닙니다. 그저 최소한의 인간 대접 해달라는 겁니다.


청와대 앞 천막에서 만난 칠곡경북대병원 청소노동자 신순금 씨는 "대통령 약속을 듣고 이제야 인간답게 대우를 받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시간만 끌고 해결을 안 해주니 말 그대로 희망고문이다"라며 울먹거렸습니다.

결국, 이들은 오늘(26일) 하루 일손을 놓았습니다. (경북대병원은 이틀) 올해 2번째 파업입니다.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뿐만 아니라 설비와 주차, 경비 등 병원 내 다른 비정규직들도 동참했습니다.

민주노총은 다음 달 3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총파업을 예고했습니다.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들고 시위 중인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
보도 나가자 지도·점검...과연 이번에는?

9시뉴스 보도가 나간 뒤 고용노동부는 보도설명자료를 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령에 따르면 사업주는 혈액감염 우려가 있는 모든 정규직·비정규직에게 보호구를 지급해야 한다, 의료기관 산업보건감독을 통해 지도·점검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부디 이번에는 법과 현실의 괴리가 좁혀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의료현장에서 왜 정규직 전환이 필요한지도 잘 헤아려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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