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계약직은 지원서류 직접 내라…AI가 없어서?

입력 2019.05.19 (10:00) 수정 2019.05.1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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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공공기관 채용 서류, 유독 계약직만 "무조건 직접방문"
"많은 것 바라지도 않아, 단지 이메일로라도 받게 해달라는 것뿐"
전국 공공기관 계약직 18만 명.. 수십만 명이 채용서류 챙겨 헤매

지금 구직 중이라면, 서류 접수가 어떤 일인지 잘 아실 겁니다. '빈 문서 1'을 켜두고 밤을 새우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요. 자기소개서를 다 쓰고 나면 그래도 수월합니다. 미리 스캔해 둔 각종 증명서 사본을 채용 페이지를 통해 올린 뒤 클릭 몇 번만 하면 서류 접수는 끝납니다.

하지만 당신이 공공기관 계약직에 지원한다면? 아직 몇 단계가 남았습니다. 일단 지원서를 출력하고, 각종 증명서의 원본들을 챙긴 뒤, 지원하는 기관의 채용 담당자를 직접 찾아가야 합니다. 대부분 공공기관에서는 계약직 직원을 뽑을 때 여전히 '직접 방문'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 계약직 공고. 상당수가 ‘직접 방문’으로 접수 방법을 제한하고 있습니다.공공기관 계약직 공고. 상당수가 ‘직접 방문’으로 접수 방법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 "AI가 없어서 계약직 서류는 못 받겠어요."

일반 사기업은 대부분 홈페이지 혹은 이메일을 이용해 지원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 역시 정규직 직원은 이미 구축된 채용 사이트를 활용합니다. 그런데 왜 유난히 '공공기관', '계약직'은 직접 방문 접수를 고수하는 걸까요?

현재 초단기간 계약직 직원을 뽑고 있는 서울시 산하 한 공공기관은 "의지가 있는 사람을 뽑기 위해서"라고 답했습니다. 서류를 내러 직접 올 정도로 하고 싶은 사람들을 거르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채용 담당자는 그냥 한번 넣어보고 '안 되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안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요즘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왜 이메일 접수가 안 되냐고 묻자 뜬금없는 대답이 나옵니다. "4차 산업혁명이어도 저희가 AI가 없잖아요. AI가 있으면 받아서 바로 하면 되는데.."

또 다른 관계자는 관행을 탓했습니다. 부서 단위로 필요할 때마다 적은 인원을 뽑다 보니 채용 과정이 체계적이지 않고 공고를 낼 때도 표준 서식조차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별문제의식 없이 타 부서의 공고나 예전에 올렸던 공고를 재활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현재 계약직 직원을 뽑고 있는 서울시 산하 한 공공기관은 “의지가 있는 사람을 뽑기 위해” 직접 방문으로 제한한다고 말했습니다.현재 계약직 직원을 뽑고 있는 서울시 산하 한 공공기관은 “의지가 있는 사람을 뽑기 위해” 직접 방문으로 제한한다고 말했습니다.

■ 공공기관 계약직 18만여 명.. "언제까지 단지 서류를 내기 위해 길거리를 헤매야 하나요?"

이런 상황을 우려해 채용공정화법도 "기관 홈페이지나 이메일로 채용서류를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채용 절차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구직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의무 규정도 아니고 벌칙이나 과태료 부과 대상도 아닙니다.

국민권익위가 작년 11월 의결한 권고도 있습니다. 직접방문과 우편, 팩스, 인터넷 등 다양한 방식을 마련해야 하고, 직접 방문만으로 제한하는 것은 금지라는 겁니다. 이와 더불어 증빙자료는 최소한으로 제출하도록 하고 사본으로도 제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이 권고는 경력직 공무원 응시자에 대한 것으로, 비슷한 채용 절차를 밟는 공공기관 계약직 근로자는 여전히 사각지대입니다.

공공기관 계약직 수십 군데에 원서를 낸 한 구직자는 말합니다. "단지 채용 원서를 넣기 위해 1시간씩 걸리는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내가 왜 이런 소중한 시간에, 공부할 시간을 뺏기면서, 단지 원서 접수를 하기 위해 돌아다녀야 하나 서글펐습니다."

구직자들이 더 서글프지 않기 위해 정말 인공지능이 필요한 걸까요? 단지 공고에 이메일 주소만 기재하면 되는 일인데 말입니다. 전국의 공공기관 계약직 근로자 수는 2017년 기준으로 18만여 명. 최근엔 채용 경쟁률이 수십 대 일에 달한다고 하니 구직자 수를 헤아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계약직 구직자가 길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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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계약직은 지원서류 직접 내라…AI가 없어서?
    • 입력 2019-05-19 10:00:14
    • 수정2019-05-19 10:02:46
    취재후·사건후
공공기관 채용 서류, 유독 계약직만 "무조건 직접방문"<br />"많은 것 바라지도 않아, 단지 이메일로라도 받게 해달라는 것뿐"<br />전국 공공기관 계약직 18만 명.. 수십만 명이 채용서류 챙겨 헤매
지금 구직 중이라면, 서류 접수가 어떤 일인지 잘 아실 겁니다. '빈 문서 1'을 켜두고 밤을 새우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요. 자기소개서를 다 쓰고 나면 그래도 수월합니다. 미리 스캔해 둔 각종 증명서 사본을 채용 페이지를 통해 올린 뒤 클릭 몇 번만 하면 서류 접수는 끝납니다.

하지만 당신이 공공기관 계약직에 지원한다면? 아직 몇 단계가 남았습니다. 일단 지원서를 출력하고, 각종 증명서의 원본들을 챙긴 뒤, 지원하는 기관의 채용 담당자를 직접 찾아가야 합니다. 대부분 공공기관에서는 계약직 직원을 뽑을 때 여전히 '직접 방문'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 계약직 공고. 상당수가 ‘직접 방문’으로 접수 방법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 "AI가 없어서 계약직 서류는 못 받겠어요."

일반 사기업은 대부분 홈페이지 혹은 이메일을 이용해 지원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 역시 정규직 직원은 이미 구축된 채용 사이트를 활용합니다. 그런데 왜 유난히 '공공기관', '계약직'은 직접 방문 접수를 고수하는 걸까요?

현재 초단기간 계약직 직원을 뽑고 있는 서울시 산하 한 공공기관은 "의지가 있는 사람을 뽑기 위해서"라고 답했습니다. 서류를 내러 직접 올 정도로 하고 싶은 사람들을 거르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채용 담당자는 그냥 한번 넣어보고 '안 되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안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요즘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왜 이메일 접수가 안 되냐고 묻자 뜬금없는 대답이 나옵니다. "4차 산업혁명이어도 저희가 AI가 없잖아요. AI가 있으면 받아서 바로 하면 되는데.."

또 다른 관계자는 관행을 탓했습니다. 부서 단위로 필요할 때마다 적은 인원을 뽑다 보니 채용 과정이 체계적이지 않고 공고를 낼 때도 표준 서식조차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별문제의식 없이 타 부서의 공고나 예전에 올렸던 공고를 재활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현재 계약직 직원을 뽑고 있는 서울시 산하 한 공공기관은 “의지가 있는 사람을 뽑기 위해” 직접 방문으로 제한한다고 말했습니다.
■ 공공기관 계약직 18만여 명.. "언제까지 단지 서류를 내기 위해 길거리를 헤매야 하나요?"

이런 상황을 우려해 채용공정화법도 "기관 홈페이지나 이메일로 채용서류를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채용 절차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구직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의무 규정도 아니고 벌칙이나 과태료 부과 대상도 아닙니다.

국민권익위가 작년 11월 의결한 권고도 있습니다. 직접방문과 우편, 팩스, 인터넷 등 다양한 방식을 마련해야 하고, 직접 방문만으로 제한하는 것은 금지라는 겁니다. 이와 더불어 증빙자료는 최소한으로 제출하도록 하고 사본으로도 제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이 권고는 경력직 공무원 응시자에 대한 것으로, 비슷한 채용 절차를 밟는 공공기관 계약직 근로자는 여전히 사각지대입니다.

공공기관 계약직 수십 군데에 원서를 낸 한 구직자는 말합니다. "단지 채용 원서를 넣기 위해 1시간씩 걸리는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내가 왜 이런 소중한 시간에, 공부할 시간을 뺏기면서, 단지 원서 접수를 하기 위해 돌아다녀야 하나 서글펐습니다."

구직자들이 더 서글프지 않기 위해 정말 인공지능이 필요한 걸까요? 단지 공고에 이메일 주소만 기재하면 되는 일인데 말입니다. 전국의 공공기관 계약직 근로자 수는 2017년 기준으로 18만여 명. 최근엔 채용 경쟁률이 수십 대 일에 달한다고 하니 구직자 수를 헤아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계약직 구직자가 길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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