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대통령에게 묻는다’, 무엇이 불편했나

입력 2019.05.19 (08:01) 수정 2019.06.1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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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저널리즘 토크쇼 J>의 주제는 'KBS '대통령에게 묻는다', 무엇이 불편했나?'이다.

KBS의 특별 대담이 방송된 후 온라인은 뜨거웠다.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취임 2주년을 맞아 특별 대담을 한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방송을 진행한 송현정 기자였다. 송기자의 이름은 이틀 동안 포털사이트 1위를 차지했고,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KBS 시청자 상담실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사흘 동안 1천3백여 건이 접수됐다. "대통령의 소회, 앞으로의 정책 방향 등 허심탄회한 말씀을 듣고 싶었는데, 시청하면서 분노가 일었습니다. 꼭 이래야만 했습니까?” 같이 방송 구성과 진행자의 태도를 성토하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태도 논란, "말 끊고 끼어들어서가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진행자가 대통령의 발언 도중 너무 여러 번 끊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많았다. 또 <“인상 쓰고, 말 끊어” 송현정 기자, ‘문재인 대통령 대담’ 태도 논란 (국민일보, 5월 9일)>등 태도와 관련해 대중들의 지적을 받았다는 기사들이 이어졌다.

'J'의 패널인 독일인 안톤 숄츠 기자는 “생방송 인터뷰는 시간제한이 있기 때문에 유럽, 미국 등의 방송에서도 특히 자신의 이야기를 주로 하고 싶어 하는 정치인의 인터뷰를 하게 될 경우, 진행하는 기자들이 여러 번 상대의 말을 끊는 것은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기자가 인터뷰 도중 말을 끊는 것이 필요한 순간들은 분명히 있다"며 송 기자가 잘못한 게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정준희 교수는 “인터뷰에서 '말을 끊는 것'의 기능을 생각해야 한다. ①내용이 잘 안 들렸거나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 ②틀린 사실을 교정해야 할 경우, ③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것을 바로 잡아야 할 경우, ④더 담백한 언어로 바꾸는 경우 등에 인터뷰이의 말을 끊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KBS 특별 대담의 경우, 후반부로 갈수록 말을 끊는 빈도가 높아질 뿐 아니라, 문 대통령의 답변이 정당하지 못한 느낌을 계속 강화하는 방향으로 갔다. 문 대통령은 정치적 수사가 화려한 사람이 아닌 데다 답변도 짧아, 질문자가 끼어들 필요가 없는 편이다. 따라서 대중들은 '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 같지만, 결국 '전반적으로 뭔가 이상하게 흐르고 있네. 왜 이렇게 효과적이지 않지’라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다양한 시선’을 담은 질문들이었는가”

송 기자는 본격적인 대담 진행에 앞서 "이 프로그램을 보는 분들은 문 대통령을 지지한 분도, 반대한 분, 지지했다 철회한 분, 뽑진 않았으나 지켜보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며 "가능한 다양한 시선을 담은 질문을 드리겠다”고 밝혔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이 지점을 지적했다. “송 기자의 말처럼, 대중들은 KBS 대담이 보수, 진보, 소수자나 소상공인 등 여러 집단에서 궁금한 질문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전반적으로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에서 나올 법한 질문 위주로 프레임이 짜여 있었다. 마치 대통령이 야당의 요구에 대해 어떻게 방어하는지 들어보겠다는 질문을 한다는 느낌이어서 아쉬움이 더 컸다”고 말했다.

정준희 교수는 “노동자와 기업, 좌파와 우파 등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는 가운데 ‘국민이 궁금한 것’을 질문하려면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했으나, 진행자가 말한 ‘국민’ 속에 포함된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 대중은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손석희-노무현 100분 토론 재조명


이번 대담 논란 직후 지난 2006년 손석희 앵커와 故 노무현 대통령이 함께한 'MBC 100분 토론 특집 대담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TCD5Czv2pE

손석희: 노 대통령께서는 제가 알기로는 평소에도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하시는 거로 알고 있는데, 이게 거기에 맞는 얘기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실용적으로 볼 때라도 그것이 실질적으로 전쟁을 막는 수단이라면 미국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군대를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상황인데, 일반적으로 분석하기에는 '그러면 우리도 미국만큼 현실적이고 그렇게 국익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 있겠느냐' 이런 의견이 있단 말이죠.
노무현: 오늘 대담 형식으로 진행한다고 앞에 소개해놓고, 이렇게 꼬치꼬치 따지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조금 논쟁 식으로 한번 해봅시다.
손석희: 예,예
노무현: 우리 손 교수께서는 2사단을 거기에 두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까.
손석희: 아, 제 의견은 여기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노무현: 그러니까 내가 반문하는 것으로써 내 대답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화 중 극히 일부만 텍스트로 살펴봐도, 진행자와 대담자 사이의 묘한 긴장감과 함께 여유와 재미까지 느껴진다. 손석희 앵커는 당시 대담 도중 아주 예민한 주제에 대해 “그런데 조금 불편한 질문 한 가지 더 드리겠습니다", "이것만 좀 확인하고 싶습니다." 등 '끼어들기 질문'을 여러 번 했지만, 당시 질문 태도와 관련된 논란은 없었다.

'J' 고정 패널인 팟캐스트 진행자 최욱 씨는 “SNS가 활성화된 지금 다시 대중들이 평가한다 해도 논란이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대중들이 두 사람에 대한 캐릭터 이해도가 상당히 높은 데다, 중요한 것은 손석희 앵커의 질문 내용은 대통령을 불편하게 하고 있을지 몰라도,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문비어천가' 안 외쳤다는 '좋은 낙인'?

“공식 기자회견이나 비판 언론과의 인터뷰 대신, 정권 입맛에 맞는 매체를 선정한 것은 결국 일방적 정권 홍보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KBS와 취임 2주년 대담을 하게 됐다는 소식을 담은 조선일보 기사의 한 부분이다.


'이번 대담도 KBS의 '문비어천가' 될 것이다’이라는 시선이 실재했다. 지난해 양승동 KBS 사장의 연임 청문회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KBS 9시 뉴스만 틀면 ‘땡문뉴스’"라고 주장하며, 대통령 관련 뉴스가 많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질타했다. 생방송 대담을 4시간 앞둔 시점에 북한의 발사체 발사 소식도 전해졌다. 이번 대담은 여러 가지로 공영미디어 KBS를 향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진행됐다.

정준희 교수는 “KBS의 성과는, 말 그대로 ‘문비어천가’를 외치지 않았다는 확실한 ‘좋은 낙인’을 얻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얻는 방식이 꼭 이랬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환경에서 공영방송은 기본적으로 어느 진영에서든 공격과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은 맞다. 보수 진영에서 ‘문비어천가’라고 외치는 부분도 의식한다면, 굉장히 어려운 부담을 떠안고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질문의 방식이나 내용을 다양하게 구성했다면 어땠을까.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갔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실수였다”라고 지적했다.

“KBS의 '실력 없음'이 드러났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이번 대담을 한마디로 이렇게 평가했다. “대통령에게 듣고 싶은 '큰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지엽적인 문제들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라는 식의 질문이 너무 많았다. 깊이 있는 내용을 듣기보다는, 준비된 질문을 다 해야 한다는 다급한 느낌으로 진행돼, 연출 또한 부족했던 점이 분명히 실망스러웠다”고 밝혔다.

대담은 어떻게 준비됐을까. 논란 이후 지난 15일 KBS 사장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덕재 제작1본부장이 청와대와의 협의 과정, 진행자 선정 경위를 설명했다. 이번 대담은 KBS 제작1본부에서 기획과 연출을 맡아 진행했다.

김 본부장은 “두 달 전쯤, 청와대에 대통령 취임 2주년 대담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제작팀은 여러 국민과 대통령이 직접 대화를 하는 대담 형식을 원했고, 청와대는 가능하면 대통령의 속내를 충분히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견해로 '1대 1’ 대담 형태를 원했다. 오랜 협의를 거쳤는데, 노무현 대통령 당시 청와대 출입을 해 문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는 송 기자가 현재도 국회 팀장을 맡고 있어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임박해서 결정되면서 급하게 준비했다. 아쉬운 것은 긴장한다거나 표정관리를 프로답게 하지 못한 것이고 경험부족, 준비부족도 절감한다”고 밝혔다.

KBS 양승동 사장은 같은 자리에서 “송 기자에게 과도하게 집중이 되고, 내용 자체에 집중되지 않아 안타깝다. KBS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회복해서 거듭나기 위한 성장통으로 생각하겠다”고 밝혔다.


KBS 경영진의 공식 입장에 대해 최욱 씨는 “KBS에서 대표 선수를 뽑는 것인데, ‘경험 부족’, ‘긴장’ 등에 관한 이야기를 책임자가 한다는 것은 시청자의 한사람으로서 아쉽다.”고 말했다. ‘J’ MC 정세진 아나운서는 “대통령과의 대담은 굉장히 촉박하게 결정되는 경우가 흔하다. 2006년 ‘KBS 뉴스 9’ 앵커로 노무현 대통령 인터뷰를 진행한 경험이 있는데 당시 보도국 정치, 문화, 경제 등 모든 부서가 질문을 함께 추리고 단어 하나까지 신경을 많이 썼다. 사실 진행자로서는 주어진 질문 내용 그대로만 하면 아주 쉽다. 그렇지만 ‘여기서 더 깊게 들어가겠다.’ 싶으면 생방송 환경에서 굉장히 어려운 일임에는 분명하다. 이번 대담은 협업 시스템이 완벽하게 발동되지 않은 채 90분 가까이 기자 한 명에게 부담을 다 쥐여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

정준희 교수는 “KBS에 훈련된 대담 전문 인터뷰어가 없다는 문제도 짚어봐야 한다. ‘손석희’라는 수십 년간 단련된 훌륭한 인터뷰이는 ‘손석희가 이렇게 질문하면 뭔가 있지 않겠냐’는 기대를 품게 한다. 손석희라는 진행자가 던지는 질문도 언제든 비판받을 수 있지만, 그는 오랜 인터뷰 경험을 통해 쌓아 올린 권위가 있어 개인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송현정 기자는 그 같은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의 비판들을 견디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기자의 취재 경험과 별개로, 정치, 경제, 사회 분야를 망라해 정확하게 질문하고, 정확하게 진행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가. KBS가 이 대담을 준비해가는 과정에서, 이 같은 결과를 예측했음에도 그대로 진행했다는 것은 지적할 점이다”라고 말했다.

기자와 시민 사이 인식의 차이 드러내

대담 후 기자와 일반 시민의 평가에서 큰 간극이 노출됐다. 대담을 평가하는 언론인의 태도에 질타도 쏟아진 부분이다. SBS 노동규 기자는 <대담 진행자에 대한 공격, 정당한가>라는 제목의 ‘취재파일'에서 “지금이 봉건시대인가, 태도를 들먹여 훈련된 언론인을 공격하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된다”라고 썼다. 국민일보는 <"송현정 기자 태도, 문제였나?" 현직 언론인 7인에게 물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송 기자에 대한 비판이 언론의 취재 환경을 위축시킬까 우려된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이 기사에는 기자들의 인식을 비판하는 댓글 수천 개가 달렸다.

정준희 교수는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인들이 온라인 페이스북 대화 등에서 '대담에 대한 비판들은, 특정 지지자들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것”이라는 식으로 표현한 데 대한 대중들의 실망감이 컸을 것이다. 기자 집단의 직업정신은 비판과 비난과 흠잡기 아닌가? 그러면 적어도 쌍방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기자들은 '비난은 나만 할 수 있고, 나는 비난받으면 안 돼’라는 대단히 불균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1월 6일 KBS뉴스92014년 1월 6일 KBS뉴스9

과거와 비교하는 지적도 나왔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 운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한 정파적 공격을 가하던 언론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어떻게 했었나? 박 대통령의 경우 대담 형태도 아닌, 준비된 대본을 읽는 식으로 발표했는데 그 몇 분짜리 발언을 쪼개고 쪼개서 ‘이 발언을 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다.’ 보도했다. 비판이나 지적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대담에서 상반된 태도를 보였으니, 국민이 느끼기에 간극이 큰 것이다. KBS뿐 아니라 우리 언론이 권력을 찬양했던 과거를 제대로 반성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결여돼있으니 분노가 더 강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지난 2014년 1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대국민 기자회견' 당일 'KBS 뉴스9'는 톱뉴스로 시작해, 5개의 기자회견 관련 리포트를 보도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단으로부터 미리 질문지를 받아 답변하는 형식의 회견이었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다. 오늘 밤 10시 3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되는 44회는 'KBS '대통령에게 묻는다', 무엇이 불편했나?'를 주제로 진행된다.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팟캐스트 MC 최욱,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독일 ARD 안톤숄츠 기자가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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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대통령에게 묻는다’, 무엇이 불편했나
    • 입력 2019-05-19 08:01:33
    • 수정2019-06-17 11:07:51
    취재K
이번 주 <저널리즘 토크쇼 J>의 주제는 'KBS '대통령에게 묻는다', 무엇이 불편했나?'이다.

KBS의 특별 대담이 방송된 후 온라인은 뜨거웠다.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취임 2주년을 맞아 특별 대담을 한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방송을 진행한 송현정 기자였다. 송기자의 이름은 이틀 동안 포털사이트 1위를 차지했고,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KBS 시청자 상담실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사흘 동안 1천3백여 건이 접수됐다. "대통령의 소회, 앞으로의 정책 방향 등 허심탄회한 말씀을 듣고 싶었는데, 시청하면서 분노가 일었습니다. 꼭 이래야만 했습니까?” 같이 방송 구성과 진행자의 태도를 성토하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태도 논란, "말 끊고 끼어들어서가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진행자가 대통령의 발언 도중 너무 여러 번 끊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많았다. 또 <“인상 쓰고, 말 끊어” 송현정 기자, ‘문재인 대통령 대담’ 태도 논란 (국민일보, 5월 9일)>등 태도와 관련해 대중들의 지적을 받았다는 기사들이 이어졌다.

'J'의 패널인 독일인 안톤 숄츠 기자는 “생방송 인터뷰는 시간제한이 있기 때문에 유럽, 미국 등의 방송에서도 특히 자신의 이야기를 주로 하고 싶어 하는 정치인의 인터뷰를 하게 될 경우, 진행하는 기자들이 여러 번 상대의 말을 끊는 것은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기자가 인터뷰 도중 말을 끊는 것이 필요한 순간들은 분명히 있다"며 송 기자가 잘못한 게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정준희 교수는 “인터뷰에서 '말을 끊는 것'의 기능을 생각해야 한다. ①내용이 잘 안 들렸거나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 ②틀린 사실을 교정해야 할 경우, ③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것을 바로 잡아야 할 경우, ④더 담백한 언어로 바꾸는 경우 등에 인터뷰이의 말을 끊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KBS 특별 대담의 경우, 후반부로 갈수록 말을 끊는 빈도가 높아질 뿐 아니라, 문 대통령의 답변이 정당하지 못한 느낌을 계속 강화하는 방향으로 갔다. 문 대통령은 정치적 수사가 화려한 사람이 아닌 데다 답변도 짧아, 질문자가 끼어들 필요가 없는 편이다. 따라서 대중들은 '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 같지만, 결국 '전반적으로 뭔가 이상하게 흐르고 있네. 왜 이렇게 효과적이지 않지’라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다양한 시선’을 담은 질문들이었는가”

송 기자는 본격적인 대담 진행에 앞서 "이 프로그램을 보는 분들은 문 대통령을 지지한 분도, 반대한 분, 지지했다 철회한 분, 뽑진 않았으나 지켜보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며 "가능한 다양한 시선을 담은 질문을 드리겠다”고 밝혔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이 지점을 지적했다. “송 기자의 말처럼, 대중들은 KBS 대담이 보수, 진보, 소수자나 소상공인 등 여러 집단에서 궁금한 질문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전반적으로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에서 나올 법한 질문 위주로 프레임이 짜여 있었다. 마치 대통령이 야당의 요구에 대해 어떻게 방어하는지 들어보겠다는 질문을 한다는 느낌이어서 아쉬움이 더 컸다”고 말했다.

정준희 교수는 “노동자와 기업, 좌파와 우파 등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는 가운데 ‘국민이 궁금한 것’을 질문하려면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했으나, 진행자가 말한 ‘국민’ 속에 포함된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 대중은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손석희-노무현 100분 토론 재조명


이번 대담 논란 직후 지난 2006년 손석희 앵커와 故 노무현 대통령이 함께한 'MBC 100분 토론 특집 대담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TCD5Czv2pE

손석희: 노 대통령께서는 제가 알기로는 평소에도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하시는 거로 알고 있는데, 이게 거기에 맞는 얘기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실용적으로 볼 때라도 그것이 실질적으로 전쟁을 막는 수단이라면 미국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군대를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상황인데, 일반적으로 분석하기에는 '그러면 우리도 미국만큼 현실적이고 그렇게 국익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 있겠느냐' 이런 의견이 있단 말이죠.
노무현: 오늘 대담 형식으로 진행한다고 앞에 소개해놓고, 이렇게 꼬치꼬치 따지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조금 논쟁 식으로 한번 해봅시다.
손석희: 예,예
노무현: 우리 손 교수께서는 2사단을 거기에 두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까.
손석희: 아, 제 의견은 여기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노무현: 그러니까 내가 반문하는 것으로써 내 대답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화 중 극히 일부만 텍스트로 살펴봐도, 진행자와 대담자 사이의 묘한 긴장감과 함께 여유와 재미까지 느껴진다. 손석희 앵커는 당시 대담 도중 아주 예민한 주제에 대해 “그런데 조금 불편한 질문 한 가지 더 드리겠습니다", "이것만 좀 확인하고 싶습니다." 등 '끼어들기 질문'을 여러 번 했지만, 당시 질문 태도와 관련된 논란은 없었다.

'J' 고정 패널인 팟캐스트 진행자 최욱 씨는 “SNS가 활성화된 지금 다시 대중들이 평가한다 해도 논란이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대중들이 두 사람에 대한 캐릭터 이해도가 상당히 높은 데다, 중요한 것은 손석희 앵커의 질문 내용은 대통령을 불편하게 하고 있을지 몰라도,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문비어천가' 안 외쳤다는 '좋은 낙인'?

“공식 기자회견이나 비판 언론과의 인터뷰 대신, 정권 입맛에 맞는 매체를 선정한 것은 결국 일방적 정권 홍보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KBS와 취임 2주년 대담을 하게 됐다는 소식을 담은 조선일보 기사의 한 부분이다.


'이번 대담도 KBS의 '문비어천가' 될 것이다’이라는 시선이 실재했다. 지난해 양승동 KBS 사장의 연임 청문회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KBS 9시 뉴스만 틀면 ‘땡문뉴스’"라고 주장하며, 대통령 관련 뉴스가 많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질타했다. 생방송 대담을 4시간 앞둔 시점에 북한의 발사체 발사 소식도 전해졌다. 이번 대담은 여러 가지로 공영미디어 KBS를 향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진행됐다.

정준희 교수는 “KBS의 성과는, 말 그대로 ‘문비어천가’를 외치지 않았다는 확실한 ‘좋은 낙인’을 얻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얻는 방식이 꼭 이랬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환경에서 공영방송은 기본적으로 어느 진영에서든 공격과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은 맞다. 보수 진영에서 ‘문비어천가’라고 외치는 부분도 의식한다면, 굉장히 어려운 부담을 떠안고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질문의 방식이나 내용을 다양하게 구성했다면 어땠을까.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갔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실수였다”라고 지적했다.

“KBS의 '실력 없음'이 드러났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이번 대담을 한마디로 이렇게 평가했다. “대통령에게 듣고 싶은 '큰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지엽적인 문제들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라는 식의 질문이 너무 많았다. 깊이 있는 내용을 듣기보다는, 준비된 질문을 다 해야 한다는 다급한 느낌으로 진행돼, 연출 또한 부족했던 점이 분명히 실망스러웠다”고 밝혔다.

대담은 어떻게 준비됐을까. 논란 이후 지난 15일 KBS 사장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덕재 제작1본부장이 청와대와의 협의 과정, 진행자 선정 경위를 설명했다. 이번 대담은 KBS 제작1본부에서 기획과 연출을 맡아 진행했다.

김 본부장은 “두 달 전쯤, 청와대에 대통령 취임 2주년 대담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제작팀은 여러 국민과 대통령이 직접 대화를 하는 대담 형식을 원했고, 청와대는 가능하면 대통령의 속내를 충분히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견해로 '1대 1’ 대담 형태를 원했다. 오랜 협의를 거쳤는데, 노무현 대통령 당시 청와대 출입을 해 문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는 송 기자가 현재도 국회 팀장을 맡고 있어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임박해서 결정되면서 급하게 준비했다. 아쉬운 것은 긴장한다거나 표정관리를 프로답게 하지 못한 것이고 경험부족, 준비부족도 절감한다”고 밝혔다.

KBS 양승동 사장은 같은 자리에서 “송 기자에게 과도하게 집중이 되고, 내용 자체에 집중되지 않아 안타깝다. KBS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회복해서 거듭나기 위한 성장통으로 생각하겠다”고 밝혔다.


KBS 경영진의 공식 입장에 대해 최욱 씨는 “KBS에서 대표 선수를 뽑는 것인데, ‘경험 부족’, ‘긴장’ 등에 관한 이야기를 책임자가 한다는 것은 시청자의 한사람으로서 아쉽다.”고 말했다. ‘J’ MC 정세진 아나운서는 “대통령과의 대담은 굉장히 촉박하게 결정되는 경우가 흔하다. 2006년 ‘KBS 뉴스 9’ 앵커로 노무현 대통령 인터뷰를 진행한 경험이 있는데 당시 보도국 정치, 문화, 경제 등 모든 부서가 질문을 함께 추리고 단어 하나까지 신경을 많이 썼다. 사실 진행자로서는 주어진 질문 내용 그대로만 하면 아주 쉽다. 그렇지만 ‘여기서 더 깊게 들어가겠다.’ 싶으면 생방송 환경에서 굉장히 어려운 일임에는 분명하다. 이번 대담은 협업 시스템이 완벽하게 발동되지 않은 채 90분 가까이 기자 한 명에게 부담을 다 쥐여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

정준희 교수는 “KBS에 훈련된 대담 전문 인터뷰어가 없다는 문제도 짚어봐야 한다. ‘손석희’라는 수십 년간 단련된 훌륭한 인터뷰이는 ‘손석희가 이렇게 질문하면 뭔가 있지 않겠냐’는 기대를 품게 한다. 손석희라는 진행자가 던지는 질문도 언제든 비판받을 수 있지만, 그는 오랜 인터뷰 경험을 통해 쌓아 올린 권위가 있어 개인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송현정 기자는 그 같은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의 비판들을 견디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기자의 취재 경험과 별개로, 정치, 경제, 사회 분야를 망라해 정확하게 질문하고, 정확하게 진행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가. KBS가 이 대담을 준비해가는 과정에서, 이 같은 결과를 예측했음에도 그대로 진행했다는 것은 지적할 점이다”라고 말했다.

기자와 시민 사이 인식의 차이 드러내

대담 후 기자와 일반 시민의 평가에서 큰 간극이 노출됐다. 대담을 평가하는 언론인의 태도에 질타도 쏟아진 부분이다. SBS 노동규 기자는 <대담 진행자에 대한 공격, 정당한가>라는 제목의 ‘취재파일'에서 “지금이 봉건시대인가, 태도를 들먹여 훈련된 언론인을 공격하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된다”라고 썼다. 국민일보는 <"송현정 기자 태도, 문제였나?" 현직 언론인 7인에게 물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송 기자에 대한 비판이 언론의 취재 환경을 위축시킬까 우려된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이 기사에는 기자들의 인식을 비판하는 댓글 수천 개가 달렸다.

정준희 교수는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인들이 온라인 페이스북 대화 등에서 '대담에 대한 비판들은, 특정 지지자들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것”이라는 식으로 표현한 데 대한 대중들의 실망감이 컸을 것이다. 기자 집단의 직업정신은 비판과 비난과 흠잡기 아닌가? 그러면 적어도 쌍방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기자들은 '비난은 나만 할 수 있고, 나는 비난받으면 안 돼’라는 대단히 불균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1월 6일 KBS뉴스9
과거와 비교하는 지적도 나왔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 운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한 정파적 공격을 가하던 언론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어떻게 했었나? 박 대통령의 경우 대담 형태도 아닌, 준비된 대본을 읽는 식으로 발표했는데 그 몇 분짜리 발언을 쪼개고 쪼개서 ‘이 발언을 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다.’ 보도했다. 비판이나 지적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대담에서 상반된 태도를 보였으니, 국민이 느끼기에 간극이 큰 것이다. KBS뿐 아니라 우리 언론이 권력을 찬양했던 과거를 제대로 반성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결여돼있으니 분노가 더 강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지난 2014년 1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대국민 기자회견' 당일 'KBS 뉴스9'는 톱뉴스로 시작해, 5개의 기자회견 관련 리포트를 보도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단으로부터 미리 질문지를 받아 답변하는 형식의 회견이었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다. 오늘 밤 10시 3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되는 44회는 'KBS '대통령에게 묻는다', 무엇이 불편했나?'를 주제로 진행된다.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팟캐스트 MC 최욱,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독일 ARD 안톤숄츠 기자가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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