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3·1운동 계보도’ 속 숨은 주역들…왜 잊힌걸까

입력 2019.03.01 (22:01) 수정 2019.03.01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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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탐사보도부가 일본 현지에서 발굴한 '3.1운동 계보도'는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가 3.1운동 직후인 1919년 3월 22일 작성한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3.1운동이 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하는 자료입니다.
취재진은 계보도 속 서훈을 받지 못한 인물들에 집중했습니다. 국가보훈처에서도 관련 자료가 부족하다고 답을 준 15명, 이들의 행적에 대해 들여다봤습니다.

[연관기사] [탐사K] 총독부가 만든 ‘3·1운동 계보도’ 단독 발굴

“할아버지 사진 이번에 처음 봤어요.”


학생판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주익' 선생은 고려대학교(옛 보성전문학교)에서 학적부와 졸업앨범, 사진 등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종친회의 족보를 통해 후손을 확인했고, 인터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손자인 주격림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함경도에서 남쪽으로 피란하느라 호적이나 자료 같은 것을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에게 주익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셨고, 이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주격림 할아버지가 5대 독자여서 다른 일가친척들도 없으니 그 책임감이 더 강했다고 합니다. 고향인 함경도에 있을 할아버지의 흔적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가족끼리 모이면 늘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취재진이 고려대에서 찾은 주익 선생의 사진과 자료들....후손들은 모두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증손녀인 주진령 씨는 사진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주익 할아버지의 서훈 신청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경기 이천 지역에서 3.1운동을 이끈 이강우 목사의 후손도 만났습니다. 막내딸이신 이경애 할머니, 올해 95세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지만, 단편적인 모습들을 조금씩 털어놨습니다. 늘 독립운동과 목회활동하느라 집에 안 계셨고, 간혹 보면 엄하게 자신을 대하셨다고 기억했습니다. 취재진이 찾은 자료들을 보시면서 오랜 세월 잊고 있던 아버지를 다시 떠올릴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목사의 손녀들도 큰 선물이 됐다며, 가족들이라도 잊지 않고 할아버지의 희생을 기억하겠다고 했습니다.

역사 속 ‘숨은 주역’들 재조명 필요

취재진이 모든 인물들에 대해 추적을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배재학당 출신 김영호 선생 등 단서를 아예 찾지 못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약 두 달 간 취재해보니 대부분 흔적들이 단편적이지만 곳곳에 남아있었습니다. 이들은 왜 우리 역사에서 이렇게 사라졌을까요.

취재진이 추적한 15명은 보훈처의 말대로 1차 자료가 거의 미비했습니다. 당장 인터넷을 통해 각종 자료를 모아봐도 이들의 출생과 사망년도는커녕 사진 한 장 구할 수 없었습니다. 막막함에 여러 전문가에게 자문했더니, 이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실 정도는 연구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관련 자료가 많지 않아 사실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인물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들에 대한 자료가 산발적이지만 곳곳에 남아있었습니다. 졸업한 학교에 생년월일과 주소, 사진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후손도 남아있습니다. 마음먹고 찾고자 한다면 분명히 자료들을 모을 수 있었을 겁니다.

물론, 우리 역사 속에서 잊힌 독립운동가들은 비단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해외로 도피한 독립운동가도 많고, 광복과 한국전쟁, 굴곡의 역사를 지나오며 제대로 자료 같은 것을 보전하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새로운 독립운동가들을 찾아야 하는 보훈처의 입장에서도 수백, 수천 명의 인물을 평가해야 되다 보니 적극적으로 인물별 자료를 찾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정부는 지난해 서훈 수여 규정을 바꿨습니다. 예전엔 행적이 일부 불분명한 경우 서훈을 주지 않았는데 이제는 행적이 불분명하더라도 친일 등 분명한 결격사유가 확인되지 않으면 포상을 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겠다는 의지로 보입니다.

취재진은 계보도를 입수한 뒤 약 두 달간 취재한 자료들을 계보도와 함께 보훈처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이분 중 몇 분이 서훈을 받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더는 기존처럼 인적사항 미상이나 확인불가로 보류해두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최소한 이번 보도를 통해 이들이 역사적 평가를 받은 계기는 마련된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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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3·1운동 계보도’ 속 숨은 주역들…왜 잊힌걸까
    • 입력 2019-03-01 22:01:53
    • 수정2019-03-01 22:02:00
    취재후·사건후
KBS 탐사보도부가 일본 현지에서 발굴한 '3.1운동 계보도'는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가 3.1운동 직후인 1919년 3월 22일 작성한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3.1운동이 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하는 자료입니다.
취재진은 계보도 속 서훈을 받지 못한 인물들에 집중했습니다. 국가보훈처에서도 관련 자료가 부족하다고 답을 준 15명, 이들의 행적에 대해 들여다봤습니다.

[연관기사] [탐사K] 총독부가 만든 ‘3·1운동 계보도’ 단독 발굴

“할아버지 사진 이번에 처음 봤어요.”


학생판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주익' 선생은 고려대학교(옛 보성전문학교)에서 학적부와 졸업앨범, 사진 등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종친회의 족보를 통해 후손을 확인했고, 인터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손자인 주격림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함경도에서 남쪽으로 피란하느라 호적이나 자료 같은 것을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에게 주익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셨고, 이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주격림 할아버지가 5대 독자여서 다른 일가친척들도 없으니 그 책임감이 더 강했다고 합니다. 고향인 함경도에 있을 할아버지의 흔적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가족끼리 모이면 늘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취재진이 고려대에서 찾은 주익 선생의 사진과 자료들....후손들은 모두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증손녀인 주진령 씨는 사진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주익 할아버지의 서훈 신청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경기 이천 지역에서 3.1운동을 이끈 이강우 목사의 후손도 만났습니다. 막내딸이신 이경애 할머니, 올해 95세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지만, 단편적인 모습들을 조금씩 털어놨습니다. 늘 독립운동과 목회활동하느라 집에 안 계셨고, 간혹 보면 엄하게 자신을 대하셨다고 기억했습니다. 취재진이 찾은 자료들을 보시면서 오랜 세월 잊고 있던 아버지를 다시 떠올릴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목사의 손녀들도 큰 선물이 됐다며, 가족들이라도 잊지 않고 할아버지의 희생을 기억하겠다고 했습니다.

역사 속 ‘숨은 주역’들 재조명 필요

취재진이 모든 인물들에 대해 추적을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배재학당 출신 김영호 선생 등 단서를 아예 찾지 못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약 두 달 간 취재해보니 대부분 흔적들이 단편적이지만 곳곳에 남아있었습니다. 이들은 왜 우리 역사에서 이렇게 사라졌을까요.

취재진이 추적한 15명은 보훈처의 말대로 1차 자료가 거의 미비했습니다. 당장 인터넷을 통해 각종 자료를 모아봐도 이들의 출생과 사망년도는커녕 사진 한 장 구할 수 없었습니다. 막막함에 여러 전문가에게 자문했더니, 이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실 정도는 연구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관련 자료가 많지 않아 사실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인물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들에 대한 자료가 산발적이지만 곳곳에 남아있었습니다. 졸업한 학교에 생년월일과 주소, 사진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후손도 남아있습니다. 마음먹고 찾고자 한다면 분명히 자료들을 모을 수 있었을 겁니다.

물론, 우리 역사 속에서 잊힌 독립운동가들은 비단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해외로 도피한 독립운동가도 많고, 광복과 한국전쟁, 굴곡의 역사를 지나오며 제대로 자료 같은 것을 보전하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새로운 독립운동가들을 찾아야 하는 보훈처의 입장에서도 수백, 수천 명의 인물을 평가해야 되다 보니 적극적으로 인물별 자료를 찾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정부는 지난해 서훈 수여 규정을 바꿨습니다. 예전엔 행적이 일부 불분명한 경우 서훈을 주지 않았는데 이제는 행적이 불분명하더라도 친일 등 분명한 결격사유가 확인되지 않으면 포상을 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겠다는 의지로 보입니다.

취재진은 계보도를 입수한 뒤 약 두 달간 취재한 자료들을 계보도와 함께 보훈처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이분 중 몇 분이 서훈을 받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더는 기존처럼 인적사항 미상이나 확인불가로 보류해두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최소한 이번 보도를 통해 이들이 역사적 평가를 받은 계기는 마련된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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